흔히 웹 1.0이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의 인터넷은 일방적인 정보의 전달이 주를 이루는 웹페이지 들의 모임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당시에도 개인이 직접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검색엔진에 등록할 수는 있었지만, 요즘처럼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나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탬플릿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자체적인 제작이 쉽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검색기능 및 데이터베이스의 연동기능도 지금처럼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기껏 홈페이지를 제작해 검색엔진에 등록을 한다 쳐도 검색을 통해 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의 수는 현저히 적었다. 한마디로 2000년대 초반까지는 개인이 인터넷상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통해 활발히 교류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King World News: https://kingworldnews.com/back-to-basics-is-web-1-0-making-a-comeback/)
그러던 와중에 혜성처럼 등장한 게 바로 웹상에서 구동되는 육성시뮬레이션 게임들이었다.
웹 육성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사이버 공간 속에 자신만의 펫(애완동물)을 기르며, 때때로 남들과 펫 관련 정보/아이템을 공유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그때 당시에 육성게임은 이미 유저들간의 활기찬 쌍방향 소통을 장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비디오게임의 장르가 남성 위주인 액션, 레이싱, 전략 쪽으로 편중되어 있던 와중에, 육성이라는 장르는 게임에 큰 관심이 없던 여성 소비자들을 웹이라는 쉬운 경로로 끌어들여 성공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Apex Web Gaming: https://apexwebgaming.com/details/Anoua/)
특히 2000년대 초반에서 후반까지 사이버 육성게임은 10대 여학생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동시에 2가지 이상의 육성게임 서비스에 가입을 한 채 그에 관련된 블로그, 카페 활동까지 하며 왕성한 커뮤니티 활동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팸" 이라는 단위의 자체적인 커뮤니티들을 형성 했는데, 여기서 "팸" 이란 온라인 게임에서의 팀 단위인 길드와 비슷하면서도 그 규모가 훨씬 더 큰 일종의 "여학생 사교모임" 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팸 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들은 소위 "언니"라 불리우는 나이 좀 있는 여학생들이었는데, 이들은 스스로를 "은월언니"나 "비월언니"와 같은 가명으로 일컬었다. 또한 팸에 가입한 각각의 회원인 "팸원"은 스스로를 곤쥬(공주)라 칭하며 본인의 육성게임 사이트 속 프로필을 공주의 성처럼 예쁘장하게 (외계어도 최대한 많이 섞어서) 꾸미곤 했다. 물론 자신의 팸과 언니를 찬양하는 문구도 빼놓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https://sites.google.com/site/popularsiteswiki/unique-services/naver/jr-naver)
팸원들의 결속력은 굉장하다고 볼 수 있었다. 예컨대 누군가가 팸의 언니를 모욕하는 일이 있으면, 이 소식을 들은 모든 팸원들은 그 사람의 블로그나 미니홈피, 또는 프로필에 찾아가 단체로 "우리 xx언니한테 사과해라" 라고 하며 시위를 벌이곤 했다. 또한 팸과 팸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모든 팸원들이 대동단결하여 서로의 팸에 "새로고침 공격"(주: 서버에 반복적으로 웹 요청을 보내 서버를 마비시키는 행위), 게시글 도배, 댓글 도배 등의 각종 테러를 일으키면서 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