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의 한복판에는 실험용으로 지어진 지하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은 지상 1층, 지하 16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건물의 놀라운 특징은 바로 층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오로지 지상에 존재하는 1층만이 외부의 시간을 공유할 뿐, 지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시간의 속도는 점점 더 왜곡됨을 알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하 1층은 지상보다 2배 느리게 시간이 흐르고, 지하 2층은 1층보다 2배 느리게 흐르며, 지하 3층은 2층보다 2배 느리게 흐른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면, 맨 마지막 층인 지하 16층은 지상보다 총 65536배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셈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지하 16층에서 하루동안 머물러 있는다면, 그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약 6개월이 지나 있는 것이다.
각 층을 통과할 때는, 계단이나 엘리베이터가 아닌 일종의 MRI 스캐너같이 생긴 원통형 기기를 아주 빠른 속도로 통과해야 한다. 이는 층을 오르내리는 사람의 신체가 부분별로 다른 속도의 시간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몇몇 사람들이 거금을 들여서라도 (또는 다른 큰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이 건물을 드나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에게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오랜 시간동안 유령이 되어있을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암살이나 체포를 피하기 위해 피신 온 자들도 있고,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이 개선될 만큼의 긴 시간이 지날 때까지 기다리려는 자들도 있으며, 때로는 단순히 먼 미래가 보고 싶어서 온 자들도 있다. 무슨 이유에서든지, 이들은 하나같이 가깝거나 먼 미래로 시간여행을 하길 원하는 자들이다.
다만 이 놀라운 시간여행 기능은 건물의 가장 깊숙한 위치에 있는 엔진이 작동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엔진실은 건물의 외벽을 따라 난 가느다란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입장할 수 있는데, 이곳은 사실상 지하 17층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을 이루는 두꺼운 중금속 벽의 외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상과 동일한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이 엔진이 작동하고 있기에 이 지하건물의 각 층은 서로 2배씩 다른 속도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엔진이 작동을 멈춘다면 건물의 모든 층은 바로 그 시점부터 지상과 동일한 속도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엔진이 꺼지는 것은 그리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갑작스러운 작동정지는 건물 내부의 그 누구에게도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그저 이들이 체험하고 있던 "시간여행"을 한동안 멈춰놓을 뿐이다. 정말로 우려할 만한 문제는 바로 엔진이 "반대로" 작동할 때이다. 이때는 건물을 이루는 각 층의 시간속도 차이가 2배씩 반대방향으로 뒤바뀌어 버리게 된다. 예컨대, 지하 2층은 1층보다 2배 "빠르게" 시간이 흐르고, 지하 3층은 2층보다 2배 "빠르게" 시간이 흐르며, 이런 식으로 지하 16층은 지상보다 총 65536배 "빠르게" 흐르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우선, 엔진이 이렇게 반대로 작동하고 있는 상태에서 (지상 시간으로) 하루가 지났다고 상상해 보자. 지상에서는 오직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는 지하 16층에 있던 사람에게는 6개월이 지난 것과도 같은 셈이다. 만약에 건물을 이루는 각 층의 출입이 자유자재였다면, 엔진이 반대로 작동되기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지상으로 올라올 것이다. 지상에서는 잠깐뿐인 순간도 그들 입장에서는 꽤나 긴 시간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각 층으로의 출입은 오로지 엔진실에서만 허용할 수 있다. 건물 내부의 모든 개인은 엔진실에 미리 "몇번째 층에 언제 들어가고 언제 나올지"에 대한 예약을 해야 하고, 오로지 그 예약된 시점에만 원하는 층에 출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지하 16층에서 지상시간으로 4년동안 머물러 있을 것으로 엔진실에 예약을 해 놓으면, 그는 무조건 지하 16층에서 지상시간으로 4년동안 머물러 있다가 밖으로 나와야 한다. 만약에 엔진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는다면, 지상시간으로 4년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8일에 불과할 테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에 엔진이 반대로 작동한다면, 지상에서 단 하루의 시간만 흘러도 그에게는 생존이 불가능한 세월인 6개월이 지나가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