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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물들의 저승

Author: Youngjin Kang

Date: Summer 2013

우리가 아는 "저승"은 오로지 생명들만을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인간이나 기타 다른 동물들은 죽으면 제각각 저승이라는 사후세계에 가서 카르마를 청산하지만, 생물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을 위한 저승은 없다. 예컨대 길바닥에 버려진 돌멩이를 위한 천국도 없고, 벽난로의 잿더미를 위한 지옥도 없으며, 물 끓이는 주전자를 다음 생으로 이끌어 줄 염라대왕도 없다. 죽음 뒤의 세상조차 외면해 버리는 이 불쌍한 무생물들은 누가 구원해 주어야 하는가? 아예 영혼조차 없는 존재로 취급당하는, 소위 말하는 "사물"들의 운명을 책임져 줄 존재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무생물들을 위한 저승"이다. 이곳은 지구 내부의 아주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거대동굴로, 내부의 온도가 굉장히 높기 때문에 입장할 때는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거의 도자기를 굽는 화덕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거운 이곳은 아예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도 발을 못 들여놓는 곳일 뿐만 아니라, 저승의 문턱을 지키는 문지기들이나 기타 모든 직원들이 죄다 단단한 암석들 뿐인 곳이기도 하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들을 위한 저승"에서는 온갖 종류의 신들과 천사들, 악마들, 그리고 영혼들이 사방을 맴돌며, 새롭게 저승으로 들어온 영혼들을 심판한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생물의 육체적 힘을 상징하는 유연한 움직임의 영혼들은 온데간데 없고, "도대체 이게 진짜 돌인지 아니면 영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꼼짝달싹도 안 하는 돌덩어리들로 이루어진 곳이 이곳이다.

지구 상에서 굴러다니는 "살아있는 사물들"과, 무생물들의 저승 속에 있는 "죽은 사물들"을 구분하는 방법이 한가지 있다. 그건 바로 해당 사물이 시원한 공기를 쐬며 단단하게 굳은 채로 있는지 (= 살아있는지), 아니면 아주 뜨거운 곳에서 녹을락 말락 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지 (= 죽어있는지) 를 구분하는 것이다. 무생물들의 저승은 워낙에 뜨거운 곳이기 때문에, 일단 그곳에 발을 들여놓은 사물들은 죄다 "죽은 사물들"이라고 정의해도 좋을 듯 싶다. 다만 인간들이 만들어낸 용광로나 화덕 안에 있는 사물들 또한 "죽은 사물들"이기는 하다. 따라서 이러한 시설물들은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낸 "인공저승"과도 같으며, 이는 죽은 생물들을 다시 살려내는 또다른 인공저승을 발명하기 전에 탄생한 일종의 프로토타입과도 같다고 보면 된다.

인간의 손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은 모든 사물들, 예컨대 도자기나 철제 도구들, 가구들, 생활용품들과 같은 "인공적인 사물들"은, 인간에 의해 버림받는 순간 "무생물들을 위한 저승"으로 자동 소환된다. 소환되어 버린 사물들은 어차피 버려진 것들이니까, 인간 입장에서는 그냥 쓰레기의 양이 줄었다고 생각될 뿐, 별 신경도 안 쓸 것이다. 그냥 기껏해야, "어? 예전에 내가 쓰던 몽당연필이 어디로 사라졌지?" 라며, 순전히 소유자는 자신의 부주의를 실종의 근거로 댈 뿐이다. 그것이 실제로 저승으로 순간이동을 했을 거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저승에 온 사물들은 그 종류가 정말이지 가지각색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생물들을 위한 저승"으로 소환된 사물들은 장식용 돌을 제외하고는 죄다 인간에 의해 창조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의해 창조되지 않은 사물들 - 예컨대 돌멩이 같은 것들 - 은, 소환되는 대신에 그냥 영겁의 세월에 거쳐 땅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 저승까지 도달한다). 그 중에는 연필도 있고,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도 있으며, 햄버거 포장용 종이도 있다. 그러나 저승에 발을 내딯는 순간, 이들은 죄다 비슷비슷한 모습을 한 광물들로 변해버리고 만다. 뜨거운 온도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연필이나 종이, 목재, 플라스틱 따위는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들로 바뀌어 버리고, 철제 용품이나 전자제품들은 반쯤 흐느적거리며 녹아내려 질퍽거리는 똥같은 모양이 되며, 도자기는 끝을 매끄럽게 다듬은 찰흙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줄지어 저승에 입장한 이들에게는 모두 기회라는 것이 한번씩 주어지는데, 그건 바로 지상에 살고 있는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새로운 형태로 다시 창조해 주도록 텔레파시로 유도하는 것이다. 만일에 이 일에 실패한다면, 그 사물은 기회를 영원히 잃고 "마그마의 강"에 던져져서 용암의 일부로 둔갑해 버리고 만다. 환생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