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비슷한 어느 한 행성에는 총 7가지의 계절들이 있다 (일명: 무지개계절). 지구가 거대한 무지개 속을 가로지르듯이, 각 계절마다 하늘색이 빨,주,노,초,파,남,보 순으로 바뀌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새해와 함께 시작하는 첫 계절인 “빨강 계절”에는 온 세상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나뭇잎들은 마치 단풍잎처럼 검붉어지고, 정원에는 온통 붉은색 꽃들만이 피며, 거의 2달에 가까운 시간동안 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에는 하늘에 붉은 노을만이 펼쳐진다. 내리는 비는 빨간색 미생물이 섞여있기 때문에 핏빛이며, 지표면도 마치 화성처럼 붉게 빛난다. 심지어는 아지랑이도 빨간색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곧바로 “주황 계절”이 찾아온다. 이 계절은 빨강 계절보다는 좀 더 따뜻하지만, 대신에 공기는 좀더 건조하다. 주황 계절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온 세상이 주황색으로 물든다. 지표면은 마치 사막의 모래언덕처럼 염분많은 체다치즈 색깔을 띄고, 하늘은 마치 치즈맛 치토스 과자처럼 누리끼리한 색을 띄며, 나뭇가지에 열리는 모든 과일들은 죄다 주황색이 그득한 귤과의 것들이다.
약 2달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세번째 계절인 “노랑 계절”이 찾아온다. 이 시기에는 (물론 예상 했겠지만) 온 세상이 노란색으로 물든다. 숲은 온통 은행나무들처럼 노란색 단풍으로 물들고, 들판에는 노란 곡식들과 노란 꽃들이 만발하며, 하늘은 노란빛의 노을로 가득 차고, 땅 속에서 캐내는 석유의 색도 노란색으로 변하며, 하얀색 빛을 내뿜어야 할 형광등들도 노란빛을 내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초록 계절”이 찾아온다. 이 때부터는 공기중의 습도가 조금씩 오르지만, 대신에 기온은 내려간다. 초록 계절 동안에는 숲이 온통 녹색으로 물든다. 녹색 풀들이 가장 왕성하게 자라나며 온 지표면을 뒤덮고, 돌멩이들과 아스팔트, 시멘트로 이루어진 벽/바닥들은 온통 초록색 이끼로 뒤덮인다. 하늘의 구름들은 마치 야광을 띄는 것처럼 희미한 연두색을 내뿜으며, 사방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밀림의 정글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시기에는 잡초가 워낙 농장을 시도때도 없이 뒤덮기 때문에 제초제를 애용해야 한다 (참고로 제초제의 색깔도 초록색이다).
다음엔 물론 “파랑 계절”이다. 파랑 계절이 찾아오면 날씨가 급격하게 추워지면서 싸늘한 바람이 강하게 불기 시작하는데, 이 때문에 감기에 걸리는 사람이 많다. 이 시기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푸른 빛이 되어 창백하게 빛난다. 하늘은 눈부신 청록색을 희미하게 띄고, 지표면은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삽화그림처럼 코발트 블루 색을 띄며, 나뭇잎과 나뭇가지들은 다소 짙은 푸른색을 띈다. 또한 이 계절 동안에는 지상에 사는 모든 인간과 동물의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변한다.
그 다음에 오는 “남색 계절”은 7계절들 중에서 가장 추운 계절이다. 이 시기에는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며, 지상의 모든 것들은 암흑 속에서 짙은 남색만을 띄게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완전한 어둠 속에서 오로지 남색만이 우리의 눈에 보인다고 해도 무방하다. 사방에는 오로지 남색의 형체들만이 어룽거릴 뿐이다. 전구를 켜도 희미한 남색 불빛만이 나올 뿐, 따스하고 강렬한 노란 빛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빛이라는 것 자체의 존재가 남색 계절의 지배 하에 매우 낮은 레벨로 차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색 계절이 끝나면 드디어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보라 계절”이 찾아온다. 이 계절은 앞서 말한 다른 계절들처럼 이름 그대로의 색을 세상에 선사한다. 예상 했겠지만, 이 시기에는 온 천지가 보라색으로 가득 찬다. 하늘은 연보랏빛으로 빛나고, 지상은 짙은 보랏빛으로 빛나며, 밤에는 보라색 별들이 하늘을 장식한다. 다만 보라 계절만의 특이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날씨가 너무나도 뒤죽박죽이라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빨,주,노,초,파,남의 계절들은 각자 고유의 날씨를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노랑 계절은 따뜻하고, 파랑 계절은 춥고,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보라 계절은 날씨의 변동이 너무나도 심해서 도저히 한 마디로 묘사할 수가 없다. 아주 더울 때도 있고, 아주 추울 때도 있으며, 아주 건조할 때도 있고, 아주 습할 때도 있다. 또한 비가 억수로 퍼부을 때도 있고, 천둥번개가 마구 내리칠 때도 있으며, 하늘에 거대한 무지개가 뜨거나 구름이 한 점도 없는 날도 있다. 눈이 내릴 때도 있고, 우박이 내릴 때도 있고, 진눈깨비가 내릴 때도 있으며, 모래폭풍이나 황사 또는 안개로 온 세상이 가득 찰 때도 있다. 하늘이 지나치게 어둡거나 밝은 때도 있으며, 바람이 너무 안 불거나 아니면 너무 세게 불 때도 있다. 종류가 천차만별인 이 모든 날씨들은 보라 계절에 적어도 5번 이상은 불어닥친다. 왜냐하면 보라 계절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날씨라는 것이 거의 반나절 단위로 바뀌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바뀌지 않는 것은 세상을 뒤덮고 있는 색깔 (보라색) 뿐이다.
보라계절이 끝나갈 시기인 연말에는 모두들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새해가 시작되기 열흘 전인 12월 21일부터 31일까지는 지상에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는 강력한 자외선 광선이 지상을 뒤덮기 때문이다. 이 열흘 동안에는 모든 이들이 자외선을 피하기 위해 집 안에서 커튼을 모두 닫고, 냉장고와 서랍장에 축적해 놓은 식량들로 버티며 산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쥐 죽은듯이 열흘동안 집 안에 잠복해 있는다. 이 시기에는 지상의 모든 나무들도 잎사귀를 땅으로 떨구고, 풀들은 줄기를 구부림으로써 흙 속에 숨으며, 야생동물들은 숲속의 깊은 그늘 또는 자신들만의 굴 속에 숨어 산다. 열흘간의 강력한 자외선의 근원은 바로 격렬한 날씨변화로 인해 하늘의 한복판에 형성된 플라즈마 구름 때문이다. 플라즈마 구름은 어마어마한 온도로 주변의 모든 공기 분자들의 핵과 전자를 분리시켜서 수프로 만들어 버린다. 엄청난 열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이 플라즈마 덩어리는 시도때도 없이 엄청난 자외선을 만들어내고, 이 현상은 10일동안 지속된다.
새해가 찾아오면 다시 “빨강 계절”이 찾아오게 되고, 그러면 대기현상이 굉장히 불안정하던 보라 계절과는 달리 안정적인 기류가 하늘을 뒤덮게 된다. 그러면 활발하게 활동하던 플라즈마 구름은 빨강 계절의 미지근한 날씨 때문에 곧 힘을 잃고 소멸해 버리며, 이에 따라 10일동안 지속되던 자외선 광선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집 안의 커튼을 걷어붙이고 밖으로 나와 생활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