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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원

Author: Youngjin Kang

Date: Spring 2013

영혼원은 모두에게 관람이 허락된 일종의 “귀신 박물관”이다. 다만 흔히 말하는 “귀신의 집”처럼 관객들을 놀래키기 위해 온갖 변장과 특수효과를 동원하는 저렴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영혼원은 마치 공동묘지처럼 진짜 영혼들이 깃들어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무속인들은 귀신들을 유리와 철창으로 된 케이지 속에 가둬놓은 채로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사육한다. 일반인들은 귀신을 못 보기 때문에 그저 무속인들이 “여기에 귀신이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는 케이지만을 응시할 뿐이다. 무속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교대근무를 하며, 주술과 정신력을 이용해 귀신들을 케이지에서 못 벗어나도록 만든다. 만약에 귀신들 중 하나가 우리에서 탈출하여 관람객 중 한 명을 빙의시키면 사태가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을 사육사들이 관리한다면, 영혼원의 귀신들은 무속인들이 관리한다.

귀신들에도 종류가 있다. 단순히 물귀신, 처녀귀신과 같은 종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태와 이동방식 등을 이목저목 따져서 체계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각각의 귀신은 영혼이라는 핵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데, 핵 주변에는 총 7개까지의 아우라의 층들을 가질 수 있다. 또한 각각의 층은 7가지 중에서 한가지 종류의 아우라를 가지는데, 아우라의 종류는 무지개의 각 색깔로 분류된다. 예컨대 [빨,주,노,초,파,남,보]가 그것이다. 마치 원자 핵들 주변에 전자의 층들이 있는 것처럼, 귀신들도 종류에 따라 고유의 아우라 층을 지닌다. 일단 가장 가벼운 귀신인 “수신”은 주변에 빨간색 아우라 한 층만을 가지고 있다. 가장 바깥쪽의 아우라 층이 빨간색이기 때문에 이 귀신은 겉에서 보면 가장 작고 빨갛다. 두번째로 가벼운 귀신인 “헬신”은 주변에 주황색 아우라 한 층을 가지고 있다. 이 귀신은 가장 바깥쪽의 아우라 층이 주황색이기 때문에 주황색의 빛깔을 띄고 있다.

자, 이제 주기율표의 원소들처럼 귀신들도 일종의 패턴을 가지고 그 종류가 분류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수신과 헬신 다음에는 “리신”이라는 귀신이 있는데, 이 귀신은 노란색 아우라 한 층을 가지고 있다. 리신 다음에는 “베신”이라는 귀신이 있는데, 이 귀신은 초록색 아우라 한 층을 가지고 있다. 그 다음 귀신은 파란색 아우라 한 층을 가지고 있고, 또 그 다음 귀신은 남색 아우라 한 층을 가지고 있으며, 한 주기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7번째 귀신은 (“비활성귀신”이라고도 불린다) 보라색 아우라 한 층을 가지고 있다. 아우라의 층들은 각기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는데, 빨간색 층이 가장 가볍고 보라색 층이 가장 무겁다. 여하튼 이 7번째 귀신 다음에는 새로운 주기에 따라 또 한 무리의 귀신들이 분류된다. 8번째 귀신은 보라색 아우라 한 층은 그대로 간직하되, 그 겉표면에 빨간색 아우라 한 층을 더 가지고 있다. 겉의 아우라 층이 빨간색이기 때문에 이 귀신은 언뜻 보면 “수신”과 같은 색인 빨간색이지만, 안쪽에 보라색 아우라 층을 추가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게는 훨씬 더 많이 나간다. 그 다음 귀신은 보라색 아우라 층 하나와 주황색 아우라 층 하나를 가졌고, 또 그 다음 귀신은 보라색 아우라 층 하나와 노란색 아우라 층 하나를 가졌으며,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서 또 하나의 주기가 끝나는 지점인 14번째 종류의 귀신은 보라색 아우라 층 2개를 가지고 있다. 이쯤 되면 아우라 층이 7종류를 걸쳐서 보라색이라는 완전체가 될 때마다 새로운 아우라 층이 하나씩 추가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 15번째 귀신은 보라색 아우라 층 2개와 빨간색 아우라 층 하나를 가지고 있고, 16번째 귀신은 보라색 아우라 층 2개와 주황색 아우라 층 하나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계속 아우라 층들을 축적하며 나아가다 보면 49번째 귀신이 나오는데, 이 귀신이 바로 자연계에 존재하는 귀신들 중 가장 무거운 귀신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귀신은 총 7개의 보라색 아우라 층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귀신들은 앞서 말한 1번에서 49번 사이의 번호로 그 종류를 판별할 수 있다. 이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귀신의 종류가 총 49가지라는 뜻이다. 영혼원에서 일하는 무속인들은 폐가나 우물가에서 채집해 온 영혼들의 무게와 색상을 측정한 뒤, 측정값에 따라 채집한 영혼들을 1번에서 49번까지의 번호로 그 종류를 결정한다. 종류가 다른 영혼들은 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속인들은 종류판별이 끝난 영혼들을 재빨리 격리된 케이지들 인에 종류별로 따로따로 분리시켜 놓는다. 따라서 영혼원을 방문한 손님들이 가장 쉽게 목격하는 것들이 바로 1번에서 49번까지의 숫자가 붙은 커다란 청록색 유리 상자들이다. 화학으로 치면 한가지 원소만을 담아놓은 화학약품통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영혼원에서 볼 수 있는 구경거리가 49가지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49가지 종류의 귀신들은 그야말로 자연에서 채집한 순수한 영혼들로, 이들은 누군가의 자아분열 또는 자연현상에 의해 탄생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귀신들이다. 이들 귀신들은 단세포생물같은 기본적인 생명체나 미립자들의 육신을 빌려서만 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동물, 식물, 인간과 같은 복잡한 유기체들의 육신을 차지하고 있는 영혼들은 1번에서 49번까지의 귀신들의 복잡한 결합체이다. 귀신과 귀신 사이의 결합여부는 그들의 가장 바깥쪽 아우라 층의 색상이 같냐 안 같냐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1번과 8번 귀신은 서로를 맞딱뜨리면 십중팔구 서로 결합한다. 왜냐하면 8번 귀신은 1번 귀신보다 보라색 아우라 층을 하나 더 가지고 있긴 하지만, 결국은 둘 다 가장 바깥쪽 아우라 층이 빨간색이기 때문이다. 가장 바깥층의 색상이 똑같은 귀신들은 서로 결합하여 쌍귀신이 된다. 그러한 결합체는 또다른 귀신을 만나서 더 큰 귀신 결합체가 되고, 또다른 귀신을 하나 더 만나서 더 커지고… 그런 식으로 무지막지하게 커지다 보면 귀신결합체는 마침내 길이 60센티미터에 두께는 0.7센티미터나 되는 거대한 영혼덩어리가 된다. 이 정도 규모의 영혼은 전자기장처럼 하나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필드가 되어서, 주로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육신 속에 척추를 타고 들어가 뇌를 조종한다. 우리가 흔히 “인간의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10의 12제곱에 육박하는 엄청난 수의 자연계의 영혼들이 결합한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이다. 뇌를 조종하는 궁극적인 힘은 바로 이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지속적인 파동에서 나오며, 뇌가 죽으면 영혼의 구조물은 빠져나가 공기중을 떠돌다가 다른 영혼들이랑 충돌하면서 조금씩 파괴된다.

영혼원의 무속인들이 하는 일은 원시영혼들을 종류별로 모으는 것 말고도 많다. 예컨대 그들은 실험실에서 총 49가지나 되는 종류의 원시영혼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보면서 비교적 단순한 영혼결합체들을 만들어보고, 이에 따른 관측결과를 기록하면서 “영혼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비율과 양으로 만났을 때 어떤 모양과 확률로 결합하는지”를 하나하나 계산해 나간다. 그들은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거대한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모으고 있으며, 그들의 목표는 장차 기계만을 이용해서 인간의 영혼을 인공적으로 창조해 내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이 육신의 잔해들을 모아서 인간을 창조한 반면에, 이들 무속인들은 영혼들을 모아서 인간의 영혼을 창조하려 하는 셈이다.

영혼원을 둘러보다 보면 동물그림이 표지로 붙은 조그만 유리병들의 진열장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진열된 각각의 유리병들은 죽은 동물의 영혼체를 담고 있다. 예컨대 쥐 그림이 붙은 유리병 속에는 죽은 쥐의 영혼이 갇혀있으며, 까마귀 그림이 붙은 유리병 속에는 죽은 까마귀의 영혼이 갇혀있다. 이것들은 무속인들이 실험실에서 실제로 동물을 죽임과 동시에 곧바로 뇌에서 뽑아낸 영혼들이다. 안 그러고 그냥 동물을 죽인 뒤 영혼이 나오도록 기다렸다가 공기중에서 채집하면, 주변을 날아다니던 원시영혼들에 의해 기존의 영혼체가 조금은 손상되기 때문이다. 뽑아낸 영혼들은 아무런 다른 영혼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밀폐된 유리병 속에 가두어져서 표본처럼 보관된다. 영혼은 밀폐된 공간 안에 있기 때문에 분해될 일도 없으며, 다른 영혼과 결합할 염려도 없다. 쥐의 영혼은 계속해서 쥐 영혼의 형태로, 까마귀의 영혼은 계속해서 까마귀 영혼의 형태로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점은, 제 아무리 복잡한 동물 또는 인간의 영혼체라 하더라도 결국 분해하면 49가지의 자연 속 원시영혼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들은 죄다 이 49가지의 원시영혼들로만 이루어져 있고, 모든 물질들에는 오로지 이 49가지의 원시영혼들만이 깃들어져 있다. 그러나 무속인들 중 몇몇은, “영혼을 둘러싼 아우라의 층이 총 8개에 육박하는 50~56번 영혼들도 자연계에 존재한다”는 괴이한 이론을 내놓았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우라의 층이 8개 이상인 귀신들은 워낙에 진동운동을 할 때의 진폭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을 비롯한 대부분의 영혼결합체들은 50~56번 영혼들을 진동시켰을 때 발생하는 영혼파 (영혼의 파동)를 이용해 다른 영혼결합체들과 소통한다는 것이다. 다만 50~56번 영혼들은 그 수가 아주 적기 때문에 실험상의 관측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 외에도 무속인들은 “아우라의 층들이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형성되는” 저승의 귀신들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저승의 귀신들은 이승의 귀신들과는 다르게 아우라의 층들이 형성되는 순서가 반대라서 (이 말은 즉, 이승의 귀신들에게는 가장 바깥쪽의 아우라 층인 것이 저승의 귀신들에게는 가장 안쪽의 아우라 층이라는 말이다), 육안으로 봤을 때는 1번에서 6번까지의 귀신들만 구분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온통 보라색 빛을 띄기 때문에 무게측정으로만 종류를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