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예방하기 위해 악귀를 쫓는 의식을 행해야 한다면, 왜 굳이 전문가를 불러야 할까? 요즘같이 발전된 과학시설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에 굿을 수동으로 하는 것은 너무나도 번거롭고 구시대적이다. 만약에 사악한 귀신들을 쫓는 데에 필요한 요소들이 항상 일정하게 정해져 있다면, 굳이 무속인이 집에 들르지 않아도 혼자서 귀신들을 몰아내 주는 가전제품도 나올 법하다. 일명 “악귀청정기”가 그것이다. 이 획기적인 신제품은 공기청정기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한가지 다른 점이라면 내부가 필터 대신에 전자석들로 채워져 있다. 이 전자석들은 전류의 흐름을 이용하여 주변 일대에 고유의 자기장을 형성하는데, 이 자기장이 바로 집 안에 침입한 귀신들을 창밖으로 내쫓는 역할을 한다.
자, 일단 침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악몽의 주 원인은 보통 침실 밑의 땅 속에 흐르는 수맥에 있다. 지하에는 그냥 물분자들만 흐르는게 아니라, 물에 녹아있는 이온들도 덩달아 흐른다. 이온들은 중성이 아니기 때문에 전하를 조금씩 띄고 있는데, 이 때문에 이온들이 수맥을 따라 이동하면 전하의 움직임으로 인해 그 주위에 자기장이 형성된다. 수맥에 의해 형성된 자기장은 그 위의 침실 속에서 수면을 취하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 예컨대 원래 침실 안에 흐르는 지구의 자기장은 북쪽을 가리켜야 하는데, 수맥에 의해 자기장이 왜곡되어서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자기장은 인간의 공간감각에 혼돈을 주고, 그에 따라 악몽의 발현을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수맥이 만들어내는 자기장은 악귀라고 볼 수 있고, 악귀에 시달린다는 것은 왜곡된 자기장으로 인해 뇌가 혼란을 느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귀신의 존재유무는 자기장의 왜곡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아까 말한 “악귀청정기”는 바로 인공적으로 자기장을 형성해, 수맥에 의해 왜곡된 자기장을 다시금 정상적인 지구의 자기장으로 바로잡는 것이다. 한마디로 외부에서 들어온 귀신을 퇴치하기 위한 “면역귀신”을 만드는 기기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터무니없는 사이비과학에 불과하다. 수맥의 흐름이 자기장을 왜곡시켜봤자 얼마나 왜곡시키겠는가? 또, 그 정도의 왜곡 따위로 악몽을 꿀 정도면 평소 집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들은 어째서 꿈자리에 별다른 영향을 안 미친단 말인가? 수맥 때문에 악귀에 시달려서 악몽을 꾼다는 건 헛소리다. 차라리 일기예보를 보면서, 오늘 밤의 풍량과 강수량이 꿈자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점쳐보는게 훨씬 과학적이다. 적어도 그러한 기상현상들은 잠자는 동안 귓가에 시끄러운 소음이라도 들려줘서 악몽을 유발할 테니 말이다.
다만 이 “악귀청정기”의 목적은 실질적인 기능에 있지 않다. 사람들은 이 제품을 이용함으로써 악몽이 씻은듯이 사라졌다고 증언한다. 이는 악귀청정기가 정말로 효력을 발휘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악몽은 정신활동이다. 따라서 정신력 하나만으로도 악몽을 퇴치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약에 플라시보 효과로라도 고객들을 악몽의 위협으로부터 안심시킬 수 있다면, 이는 그들로 하여금 악몽을 안 꾸게 할 큰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악귀청정기를 작동시킬 때 나는 나지막한 “웅” 소리, 그리고 몇차례의 미세한 정전기같은 스파크 소리들은 그들에게 잠들기 전에 “이 기계만 있으면 당신은 악몽을 꾸지 않을 테니 안심하세요” 라고 말해주는 자장가와도 같다. 사용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언제나 악귀청정기의 전원을 킨다 (악귀청정기에는 언제나 희미한 빛을 발하는 무드조명이 부착되어 있어서, 칠흙같은 어둠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자들을 안심시켜 준다). 그런 다음 그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악귀청정기의 전원을 끄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무런 악몽도 없는 상쾌한 밤잠을 잔 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