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홀은 크기가 어마어마하지만, 대신에 그곳은 회의가 없을 때에는 텅 비어있다. 따라서 공기의 메아리가 시시각각 울리는 차갑고 싸늘한 중앙 홀은 신비감이 충만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중앙 홀에는 다양한 색상연출이 가능한 조명장치들도 있어서, 홀 전체를 자줏빛이나 푸른색 같은 강렬한 색깔로 가득 채울 수도 있다. 중앙 홀의 맨 윗쪽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Anima의 전용 의자에는 커다란 보석들이 박혀있는데, 이 형형색색의 보석들은 천장에 달린 조명장치에서 나오는 빛줄기들을 사방으로 굴절시킴으로써 디스코 조명볼같은 효과를 연출한다.
중앙 홀 밑에는 의원들의 안전을 위한 보안 검색대가 있고, 그 밑에층에는 필요에 따라 보안 검색대에 추가 인력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는 경찰서가 있다. 의원들은 회의에 참가할 때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누구도 중앙 홀에 폭탄이나 흉기를 가져가서 테러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보안 검색대만에 중앙 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에 의원들은 이곳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이유로, Psyche의 집무실은 본인의 개인 비서들의 사무실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고, Anima의 최종 회의실은 중앙 홀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다. 이처럼 건물을 이루는 층들의 대부분은 특별한 루트를 통해야만 입장할 수 있으며, 일부에게만 접근이 허용되어 있다).
보안 검색대와 경찰서 밑에는 의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며 토론/토의를 벌일 수 있는 또다른 거대한 홀이 10층 가량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중앙 홀만큼 크지만, 그 대신에 중앙 홀같이 차갑고 중세적인 느낌을 풍기지는 않는다. 이곳은 ‘휴식 홀’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말 그대로 의원들의 휴식을 위한 푹신한 고리형태의 소파들과, 커피머신과, 푹신한 카펫으로 둘러싸인 벽/바닥/천장과, 천장을 따라 고리모양을 이루고 있는 은은한 베이지빛 형광등과, 칠판 테이블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휴식 홀의 한가운데에는 꽈배기처럼 허리가 배배 꼬인 에메랄드빛의 거대한 금색 축음기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는 은은한 클래식 곡들이 항상 흘러나오고 있다. 음침하고 신비감이 감도는 중앙 홀과는 정 반대로, 이곳 휴식 홀은 굉장히 따뜻한 인상을 준다.
휴식 홀 밑의 80층 가량의 공간은 각각 층마다 80명이나 되는 의원들의 개인 사무실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앙 홀에서의 회의가 없을 때면 보통 의원들은 자신들의 사무실로 돌아가, 다음 건의안 작성을 위한 자료수집 또는 연구에 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서재는 굉장히 학구적인 느낌을 띄는데, 그러한 느낌을 증폭시키는 요소들 중 하나는 사무실마다 하나씩 있는 커다란 마호가니 재질의 책장이고, 또 하나는 책상 위에 놓여진 두뇌본이다. 두뇌본은 현실세계의 지구본처럼, 뇌 속의 지도를 하나의 구체 모형 위에 그려놓은 것이라 보면 된다. 대체적인 모습은 마치 정신분석학자들 중 종교적인 색체가 짙은 누구누구가 손수 그린 만다라와 유사하다. Psyche의 집무실과 의원들의 사무실이 다른 점은 바로 경치에 있다. Psyche가 일하는 곳은 100층이 넘는 높이에 있어서, 따스한 햇살과 탁 트인 풍경이 주를 이룬다. 또한 Psyche의 집무실을 이루는 벽의 반 이상은 반투명하면서도 노르스름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강렬한 햇살은 이 두꺼운 유리창에 여과되어 은은한 황옥빛깔로 집무실을 가득 채운다. 이 따스한 햇살의 풍경은 마치 초가을이 한창인 드넓은 황야 위에 누우면 늦은 오후에 볼 수 있는 노을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반면에 잠재의식에서 일하는 의원들의 사무실에 설치되어 있는 창문들은 매우 작다. 이들 창문들은 가늘고 길게 쭉 찢어져서 햇살이 들어올 공간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유리 자체가 두꺼운 붉은색 스테인드글라스이기 때문에 가장 화창한 날에도 은은한 붉은 노을만이 연출된다. 그러나 대신에 의원들의 사무실 내부 (특히 책상 위)에는 다양한 형태의 작은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로 사무실들은 인공적인 밝기로 가득 차 있다.
80층에 달하는 의원들의 사무실들 밑에는, 의원들의 개인 비서들이 일하는 10층 가량의 사무실들이 있다. 하나의 사무실에서는 총 8명의 비서들이 함께 일하기 때문에, 대체로 사무실은 각 면이 두꺼운 칸막이로 나뉘어진 정팔각형 모양을 띈다. 고전적인 느낌을 풍기는 의원들의 사무실들과는 달리, 비서들의 사무실은 굉장히 현대적이고 사무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바닥은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악당들의 우주선 바닥 재료로나 쓰일 법한 어두침침한 금속제 타일들로 뒤덮여 있고, 칸막이들은 마치 쓰레기 수거차의 한쪽 몸체를 뜯어내어 만든 것처럼 지저분한 이물질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거무칙칙하고 녹이 잔뜩 슨 쇳덩어리이며, 책상들은 광택이 흐르는 평평한 스테인리스 판을 검은색 철제 다리들이 X라도 교차하며 지탱하고 있는 접이식이다. 천장에는 덮개를 씌우지 않은 직선형 형광등들이 환하게 켜져 있고, 벽은 창문이 전혀 없지만 불투명한 유리같은 재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벽 전체가 스스로 발광하는 하나의 희미한 조명이다), 전체적으로 이들의 사무실들은 사이버틱한 느낌을 준다. 이들 비서들의 인원 수는 의원들과 같이 총 80명인데, 한 명의 비서당 한 명의 의원 밑에서 일한다. 비서들이 하는 일은 주로 의원들의 자료수집을 돕는 것이다. 예컨대 의원들 중 누군가가 특정한 통계자료를 구하려 한다면, 그의 개인 비서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해당 자료를 구해서 그의 사무실에 전송시켜 주는 것이다.
그 밑의 5층은 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공간으로, 이곳은 잠재의식과 무의식의 교차점임과 동시에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온갖 정보들의 행로를 감시하는 기관이다. 이들 5층은 밖에서 봤을 때 건물의 지상 5층에서 지상 1층까지를 차지하고 있다. 육지의 바로 위에 있는 것이다. 각 층마다 하는 역할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부터는 층 단위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지상 5층은 비서들의 사무실 바로 밑으로, 이곳은 밑에서 위로 운반되는 모든 문서들을 감시하는 곳이다. 잠재의식의 의원들이 특정 정보를 요청하면, 비서들은 그 정보를 찾기 위해 건물의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무의식으로 내려간다. 무의식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은 비서들은 찾아낸 자료의 사본 (이러한 사본들은 단순한 메시지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광학적 장치를 통한 전송이 불가능하다. 비서가 직접 물질적으로 운반해야 한다)을 가지고 다시 계단을 따라 자신들의 사무실로 돌아가는데, 사무실까지 도달하려면 도중에 지상 5층에 있는 검사소를 통과해야 한다. 이곳에서 비서들은 자신들이 무의식에서 수집한 모든 자료들을 검사관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검사관들은 비서들이 소지한 정보들 중에서, 잠재의식으로 전달되는 것이 금지된 것들은 죄다 압수하고 난 뒤 그들을 통과시킨다. 압수한 정보의 사본들은 죄다 불태워 버린다. 정확히 어떤 정보의 유출을 금하냐에 관한 법률은 무의식의 대표자인 Ego가 정하며, 잠재의식이나 의식의 그 어떤 관계자들도 이에 대해 반박할 자격이 없다. “무의식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모든 정보는 무의식의 소유다” 라고 뇌 헌법에 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상 5층이 무의식의 지적 재산 소유권을 지켜주기 위한 기관이라면, 4층은 만일 잠재의식이 쿠데타를 일으킬 경우를 대비해서 항상 군대가 버티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잠재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질서유지를 위해 항상 주변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3층에서 1층까지는 기억을 해석/정리하는 곳들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1~3층은 육지의 바로 위에 위치한 공간이기 때문에 정부요원들이 자유자재로 건물 외부를 드나들 수 있는 곳이다. 1~3층은 하나의 거대한 로비로, 이곳에는 건물의 바깥인 육지/바다와 통하는 거대한 황금빛 회전문들이 설치되어 있다. 로비의 한쪽 벽에는 거대한 아날로그식 시계가 달려있고, 한복판에는 바깥에서 수집한 기억들을 종류별로 모아 그것들을 문서화하는 장치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들이란 바로 건물의 바깥에서 모은 돌덩어리들을 뜻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우리한테는 다양한 감각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각정보들이 뇌 속의 하늘에서는 기상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의 옥상에서는 안테나와 망원경 등을 포함한 장비들로 항상 하늘의 상태를 체크하고, 이를 기반으로 뇌의 주인이 현재 몸으로 뭘 느끼는지를 시시각각 알아낸다. 그러나 아무리 성능이 좋은 첨단장비들을 이용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몸이 느끼는 모든 감각들을 기상관측만을 통해 죄다 관측할 수는 없다. 건물의 옥상, 즉 의식의 사령부에서 관측하는 감각들은 오로지 통증이나 악취, 향기, 짠맛, 쓴맛, 굉음 등과 같은 강렬한 것들만을 포함한다. 미세한 감각정보들은 워낙에 기상현상에 미세하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옥상에서 온전히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대신에 이 모든 세세한 정보들은 하나하나 모여서 구름이 되고, 구름은 조금씩 뭉쳐서 비가 되어 지상에 떨어지며, 비 속에 녹아있던 이온들은 흙이나 바다로 스며 들어가서 결정체들을 이룬다. 그리고 그렇게 굳어 이루어진 결정체들, 즉 돌덩어리들은 바로 평소에 뇌가 감지한 미세한 감각정보들, 즉 미세한 ‘기억들’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 결정체들을 1~3층의 로비 한가운데에 있는 기계에 넣고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해당 기억이 약 어느 시점에 몸의 어느 부위에서 있었던 어떤 종류의 감각신호를 반영하는지를 알려준다. 이를 아는 무의식의 광부들과 어부들은 시시때때 교대근무를 하며 건물 밖으로 나가 곡괭이질을 하며 땅 속에서, 그리고 바닷속에서 기억의 결정체들을 캐내어 건물 안으로 가져온다. 기기의 도움을 받아 해석된 결정체는 실질적인 문서자료가 되며, 이 문서자료는 무의식의 소유이기 때문에 무의식의 주요 본부가 자리잡고 있는 지하 깊숙한 곳으로 운반된다.
1층 밑으로 펼쳐진 약 100층 가량의 어두침침한 높이의 공간은 하나의 길쭉한 광산으로, 이곳에서는 광부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땅굴을 파며 그 속에 묻혀있는 자잘하고 희미한 기억의 결정체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지하 1층에서 지하 100층까지 뻗어있는 이 길쭉한 지역은 굉장히 어두침침하며, 중앙은 텅 비어있다. 왜냐하면 중앙에는 결정체들을 운반하는 거대한 승강기들이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캐낸 기억들은 지상 1~3층의 로비로 가서 화학적 해석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문서자료들은 잘 포장된 채로 승강기에 실려 지하 100층보다 낮은 깊숙한 곳으로 운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