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은 두뇌활동에 있어서의 모든 직접적인 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리는 곳이기 때문에, 건물의 맨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의식이라는 행정부의 각 하위부서들이 맨 윗층들을 차지하고 있다. 예컨대 옥상 바로 밑의 층에는 ‘시각정보부’가 있어서, 이곳에서는 옥상의 망원경으로 관측한 시각정보들을 다루고 있다. 직원들은 전송받은 시각정보에 에러가 있으면 수정작업을 하고, 지나치게 상식에 어긋나는 시각정보가 있으면 아예 잘라내어 버리는 작업을 한 다음 밑으로 전송한다. 바로 밑에층에는 ‘청각정보부’가 있다. 이곳의 직원들은 옥상에 설치된 안테나를 통해 전달받은 소리신호를 바탕으로 소리정보를 메시지화 한 다음, 시각정보부의 직원들처럼 약간의 수정작업을 거쳐 밑으로 전송한다. 청각정보부의 밑에층에는 비슷한 방식과 구조를 가진 ‘후각정보부’가 잇고, 그 밑에는 ‘미각정보부’가 있으며, 또 그 밑에는 ‘촉각정보부’가 있다. 촉각정보부 밑에는 ‘반사작용부’와 ‘조건반사부’가 있는데, 반사작용부의 직원들은 전달받은 신체적 정보들만을 바탕으로 행동을 결정하는 반면에, 조건반사부의 직원들은 신체적 정보들 뿐만 아니라 잠재의식으로부터 전송받은 정보들도 함께 모아 판단함으로써 행동을 결정한다.
이렇게 7개의 부서들은 인간이 느끼는 온갖 감각들과, 그 감각들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들을 도맡고 있다.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7개의 층들은 각각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이렇게 무지개의 각 색깔들로 장식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영혼의 입구” 와 같은 뉘앙스의 상징적 의미가 담겨있다. 무지개색 층들 바로 밑에는 대통령, 즉 Psyche의 집무실이 위치하고 있다. Psyche는 우리가 흔히 “의지대로 행동한다”고 부르는 모든 행위를 도맡아 한다. 그는 하루종일 책상에 앉은 채로, 정부의 다른 모든 기관들이 제출한 문서들 (예를 들자면 탄원서, 보고서, 통계자료 등등…)을 하나하나 읽어야 한다. 또한 그는 잠재의식에서 제안한 행동계획들을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기각해야 하는데, 이를 결정하려면 그야말로 모든 정보를 다 참조하여 세심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만약에 경솔한 선택을 하면 무의식의 판사들이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Psyche의 행위를 규탄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잠재의식의 제안이 타당하다면 Psyche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는 뜻의 사인을 하고 제안서를 건물의 맨 윗쪽, 즉 옥상으로 보낸다.
옥상에는 엔지니어가 한 명 있는데, 그는 대통령이 내린 모든 명령을 즉각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옥상의 한가운데에 앉은 채로 밑에서 올라오는 명령들을 문서형태로 받아 본다. Psyche의 사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는 밤하늘의 올바른 방향에 안테나를 겨냥해 명령내용과 일치하는 주파수의 전파를 쏘아 올린다. 날아간 전파가 하늘을 강타하면, 인간의 몸은 해당 전파신호에 상응하는 몸동작을 한다. 예컨대 전파가 내린 명령은 “왼팔을 들어 올려라” 혹은 “오른쪽 검지발가락을 까딱하라”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명령들이 모여야만 복잡한 생활양식이 만들어진다.
Psyche의 집무실 밑으로는 약 24층의 사무실들이 있다. 이 사무실들은 Psyche의 개인 비서들의 것인데, 이들 비서들은 Psyche에게 보낼 뇌 속의 온갖 정보들을 최대한 단순명료하게 요약해 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뇌를 다스리는 정부에서는 각 부서마다 하루에 7000장이 넘는 자잘한 문서들을 작성해서 Psyche의 집무실로 보낸다. 그러나 Psyche 한 사람이 그 많은 문서들을 다 참조해 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100이 넘는 비서들이 중간에 그 많은 문서들을 일일히 살펴보면서, 그 중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죄다 추려낸 다음 Psyche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Psyche가 대표를 맡고 있는 행정부, 즉 ‘의식’의 층들이었다. 이제부터는 Anima가 대표를 맡고 있는 잠재의식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까도 말했듯이, 건물의 꼭대기에서부터 약 32층 가량은 의식이 차지하고 있다. 의식은 뇌 속에서 만들어진 온갖 문서들을 읽어본 다음, 그것들을 바탕으로 신체에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는 일을 한다. 의식 바로 밑에는 잠재의식이 있는데, 잠재의식 또한 여러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Psyche의 비서들이 일하는 사무실들 바로 밑에는 Psyche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된 제안서를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편집실이 있는데, 이곳 편집실의 멤버들 중 대다수는 문법체크, 철자체크 등을 비롯한 온갖 오류수정을 담당하는 편집자들이다. 이들의 세심한 편집을 걸친 제안서는 윗층에서 일하고 있는 Psyche의 비서들 중 한 명에게로 전송되고, 그 비서는 제안서를 최대한 간결하게 요약한 다음 Psyche에게로 보낸다.
보통은 문서를 편집할 때 그냥 종이에 적힌 것을 수정액으로 지우고 다시 쓴다. 그러나 문서의 핵심내용 자체를 완전히 뜯어 고치려면 특별한 금속모형을 사용해야 한다. 보통 다른 곳에서 전송된 문서를 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아까 필자는 층마다 구체모양의 광학적 장치가 2개씩 있고, 각각의 장치에는 ‘입력’과 ‘전송’이라는 두가지 버튼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가지 깜빡하고 안 말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구체의 양 옆에는 ‘인쇄’ 버튼과 ‘스캔’ 버튼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 광학적 장치들은 빛을 이용해 메시지를 암호적인 형태로 수신/전달할 줄 알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빛의 메시지를 종이문서로, 또는 종이문서를 다시 빛의 메시지로 형변환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현재 아무런 활동도 안 하고 있는 광학적 장치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일단은 ‘입력’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러면 구체의 윗쪽 부분에서 빛줄기들이 쏟아져 나와 아랫쪽 곡면을 강타함으로써 메시지의 수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상태에서는 메시지의 내용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누가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 레이저 포인트들의 암호를 하나하나 해독하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겠는가? 따라서 메시지를 읽으려면 그 암호화된 메시지를 종이 위에 글자로 프린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능은 바로 장치의 왼쪽에 부착된 얇은 인쇄기 위에 달린 ‘인쇄’ 버튼을 누름으로서 실감할 수 있다. 버튼을 누르면 구체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레이저 신호 하나하나가 광자회로의 알고리즘에 따라 글자로 변형되어 복사용지 위에 인쇄된다. 그렇게 인쇄된 사본은 뇌 속에서 일하는 정부요원들이라면 누구는 쉽게 읽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메시지를 바로 글로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는 없다. 메시지를 읽으려면 반드시 사본을 인쇄해야만 한다. 종이낭비가 아니냐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정과 보완작업을 손쉽게 하려면 결국 복사본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어차피 각 층에는 불필요해진 문서들을 태워서 잿더미로 만들어주는 화세식 쓰레기통이 하나씩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종이더미에 파묻힐 염려는 없다 (더군다나 그렇게 태워진 재는 간단한 가공과정을 거쳐서 새롭게 복사용지로 태어난다. 이처럼 어느 정도는 재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인쇄된 메시지는 맨 처음 읽혀지고, 그 다음에는 수정작업이 이루어진다. 보통은 수정액을 사용해서 해당 부분을 지우고 그 자리에 다른 글자를 기입하는 식이다. 물론 빛줄기들로 채워진 구체의 뚜껑을 직접적으로 열어서, 그 속에 금속모형을 넣고 빛 신호들을 왜곡시킴으로써 메시지 전체를 송두리째 뒤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아주 다급하거나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발생하지 않는다. 수정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문서를 다른 곳으로 전송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광학적 장치의 오른쪽을 보면 종이를 넣는 가느다란 틈새가 난 우체통 같은 것이 하나 있고, 그 옆에는 ‘스캔’ 버튼이 달려있다. 틈새에 종이를 넣은 다음 버튼을 누르면, 틈새 속에 들어간 종이는 스캔되어서 광자회로에 의해 글자 하나하나가 해석된다 (수정액으로 지운 부분 위에 쓴 손글씨도 포함해서 말이다). 해석과정이 끝나면 구체의 윗쪽 반구에서 쏟아져 내려오던 빛줄기들은 이 새롭게 스캔된 문서의 내용대로 재구성되고, 그에 따라 아랫쪽 반구는 새롭게 수정된 내용의 메시지를 빛으로 받고 있는 상태가 된다. 그 상태에서 장치 앞면에 있는 ‘전송’ 버튼을 누르면 수정된 메시지는 광섬유를 타고 다른 층의 구체로 이동한다. 만약에 문서를 수정하지 않은 채로 스캔을 했거나, 혹은 문서를 수정했어도 그걸 스캔하지 않으면 빛의 메시지는 바뀌지 않은 채로 남아있고, 따라서 그런 상태에서 ‘전송’ 버튼을 누르면 본래의 메시지는 전혀 수정되지 않은 상태로 다른 구체에게 전달된다. “입력 – 인쇄 – 수정 – 스캔 – 전송” 으로 이루어진 이 5가지의 스텝은 아주 중요하다.
이런 작업들이 바로 Psyche의 개인 비서들과 잠재의식의 편집자들이 온종일 하는 일이다. 그들은 시시각각 구체를 통해 입력되는 메시지들을 종이로 프린트해 하나하나 검토하고, 고칠 게 있으면 고친 문서들을 스캔하며, 스캔된 내용에 따라 수정된 메시지의 값을 다음 구체로 전송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편집자들이 일하는 편집실 바로 밑에는 최종 회의실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대표자인 Anima와 그녀의 직속 부하들이 잠재의식의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Psyche에게 제출하기 위해 작성된 제안서들을 다른 각종 정보들과 대조해 보며 검토한 후, 해당 제안서가 정말 Psyche에게 보낼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한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제안서들은 Psyche에게로 배달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기각되어 불태워져 버릴 수도 있다.
최종 회의실 밑에는 잠재의식의 대표적인 활동인 “제안서 작성”이 이루어지는 ‘중앙 홀’이 있다. 중앙 홀은 워낙에 크기 때문에 건물의 약 10층 가량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위/아래, 그리고 양 옆으로 웅장한 왕실분위기의 안락의자들이 벽을 따라 부착되어 있다 (의자가 부착되지 않은 부분의 벽은 대부분 푸르스름한 중세 풍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중앙 홀은 전체적으로 지극히 고전적인 성당같은 느낌을 준다). 제안서 작성에 관련된 회의는 하루에 한번씩 이루어지는데, 회의가 시작될 때마다 잠재의식의 모든 의원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의자 위에 앉는다. 총 80명의 의원들은 한명씩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자신들이 나름대로 준비한 건의안의 대략적인 요약을 낭송한다. 만약에 그 요약판 건의안이 4명 이상의 다른 의원들에게 찬성표를 받는다면 해당 의원은 후에 건의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발언권을 얻는다.
80명 모두가 한마디씩 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약 10개 가량의 건의안들이 제안서의 후보로 명단에 오른다. 그러면 그 10개 건의안들을 제시한 10명의 후보 의원들은 한 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사무실에서 준비해 온 자료들을 조리있게 잘 정리하여 모두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프레젠테이션의 화면은 홀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불투명한 검은색으로 바뀌면서 그 위에 형성되는데, 때문에 모두들 모든 방향에서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똑똑히 볼 수 있다. 각 후보는 약 10분의 프레젠테이션 시간을 할당받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건의안의 내용을 신속하고도 위트있게 설명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나면 해당 건의안이 마음에 드는 후보들은 찬성표를 던지는데, 이때는 20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져야만 후보의 건의안이 통과한다. 만약에 20명 미만이 표를 던진다면 건의안은 누락되고, 20명 이상이 표를 던진다면 건의안은 제안서로 작성될 기회를 얻는다.
10명의 후보들이 프레젠테이션을 돌아가며 하고 나면 최종적으로는 약 4명 정도가 뽑힌다. 그들이 제시한 4개의 건의안들은 즉석에서 전문 작문가들에 의해 제안서로 작성되는데, 그렇게 작성된 제안서들은 그걸 제시한 의원에게 우선적으로 보여진다. 의원 본인이 제안서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 제안서는 다른 모든 의원들 앞에 보여진다. 만약에 그 어떤 의원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해당 제안서는 회의의 대표자인 Anima의 사인을 받은 뒤 광학적 장치에 스캔되어 최종 회의실로 전송된다 (회의가 끝나고 의원들이 해산하면 Anima는 최종 회의실로 돌아가서 부하들과 함께 제안서들을 최종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