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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의 공화국 - 1

Author: Youngjin Kang

Date: Winter 2012

사람의 신체를 하나의 국가라고 본다면, 대부분의 결정을 내리는 그의 뇌는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세포 하나하나마다 사무직 종사자들과 공무원들이 자리를 차지해 일하고 있는 그런 정부 말이다. 그들은 세포와 세포 사이의 수많은 연결망들을 이용해 전화를 하며 업무를 처리한다. 그들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으며,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서 일하고 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그들은 오로지 정부만을 위해 하루종일 새장처럼 생긴 우리 안에 갇혀있어야 하는, 거의 부품과 동일시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품’들을 사용하는 자들은 바로 정부기관 내부에서 일하는 소수 앨리트들이다.

뇌가 하나의 거대한 바다와 하늘로 이루어진 자연공간이라고 가정해 보자. 하늘은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바다와 하늘 둘 다 뇌라는 공간을 반반씩 차지하고 있다. 한마디로 하늘의 높이와 바다의 깊이는 거의 엇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의 한복판에는 땅이 불쑥 솟아올라서, 마치 노르웨이의 해안가를 연상시키는 거친 절벽들로 이루어진 섬을 하나 이루고 있다. 섬 위에는 기다란 원기둥 모양의 건축물이 지어져 있는데, 그 건물은 지상으로는 120층 이상, 지하로는 약 1000층까지 달하는 어마어마한 높이를 자랑한다. 건물의 외관은 마치 매끈한 콘크리트로만 만든듯이 밋밋한 회색이며,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있는 가느다란 세로모양의 틈새들만이 거기에 무늬를 더해주고 있다. 건물의 옥상에는 천채망원경처럼 생긴 장치가 있다. 이 장치는 눈이 전달하는 시각정보를 포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시각정보는 하늘의 별자리들을 통해 암호적인 형상으로 나타난다. 암호를 실시간으로 해독하면서 사람의 눈이 보는 영상을 동시에 감상할 줄 아는 자는 Ego뿐이다).

건물 지하의 맨 끝층에는 용광로가 차지하고 있다. 이 용광로는 정신활동의 궁극적인 척도가 되는 원형(Archetype) 들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플라즈마같은 혼돈의 소용돌이로, 이 속에서는 이따금씩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모형이 저절로 형성되어 떠오른다 (예컨대 정십이면체, 삼각뿔,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럴 때마다 정부의 요원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모형을 건져내어 과학자들에게 전달해주고, 과학자들은 금속모형들을 잘 모셔다가 다양한 실험을 행해 봄으로써, 그 모형이 정신활동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알아내어 정부에 보고한다. 그러면 정부는 모형을 회수해서 중앙 금고 안에 잘 모셔놓은 다음, 필요할 때마다 그런 식으로 저장된 모형들 중 하나를 문제해결을 위한 열쇠로 사용한다. 어떻게 금속모형 하나가 뇌 속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좋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간단하게 말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뇌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두뇌활동은 이진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코드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참고로 이진수들은 항상 한 쌍씩 특별한 명칭을 가지고 붙어다닌다. 예컨대 00은 “Na”라고 불리는 코드이고, 11은 “Ha”라고 불리는 코드이며, 01은 “Ma”, 10은 “Pa”라고 불리는 코드들이다 (Na는 없음을 뜻하고, Ha는 있음을 뜻하며, Ma는 음기 (여성)을, Pa는 양기 (남성)을 뜻한다). 이렇게 네가지 종류의 이진수 쌍들은 또 서로 모이며 더 큰 쌍을 이루는데, 예를 들어서 0011은 Naha (무에서 유, 즉 탄생을 뜻함), 1100은 Hana (유에서 무, 즉 소멸을 뜻함) 등등… 총 4자릿수로 이루어진 코드들은 제각기 기본적인 형태의 동사를 상징한다. 이 4자리 코드들은 또 서로 결합해 8자리의 코드들을 이루고, 그 8자리의 코드들은 또 결합해 16자리의 코드들을 이룬다 (16자리쯤 되면 단순한 개념이 아닌, 꽤나 복잡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이진수들이 몇번씩이고 거듭하여 쌍을 짓다 보면 총 128개의 자릿수들로 이루어진 코드가 된다. 이 거대한 코드가 바로 하나의 온전한 “생각”, 즉 하나의 문서파일이며, 정부의 요원들은 보통 이것을 메시지라고 부른다. 인간세계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메시지를 종이 위에 쓰거나 디스크에 입력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이곳의 일꾼들은 수정구처럼 생긴 광학적 장치를 통해 메시지를 받아들이거나 전송하고, 또 변경한다. 이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 광학적 장치는 완벽한 구체의 형상을 띄고 있는데. 알고 보면 이것이 윗쪽 반구와 아랫쪽 반구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윗쪽 반구는 뚜껑처럼 열어서 아랫쪽 반구와 분리시킬 수 있다. 여기서 윗쪽 반구는 아랫쪽 반구에게 메시지를 전송하는 역할을 하고, 아랫쪽 반구는 전송된 메시지를 받아서 다른 장치로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장치의 외부에는 ‘입력’과 ‘전송’이라는 두 개의 버튼이 달려있는데, ‘입력’을 누르면 윗쪽 반구의 내부 표면에서 레이저 빛줄기들이 발사되어 아랫쪽 반구의 내부 표면에 다다른다. 여기서 빛줄기들이 도달하는 위치가 바로 메시지를 이루는 각각의 자릿수들이고, 그 빛줄기들을 받아들이는 아랫쪽 구체는 입력장치의 역할을 한다. 위에서 내려온 빛줄기들이 아래를 비추고 있는 상태에서 ‘전송’버튼을 누르면, 아랫쪽 반구는 현재 자신이 전송받고 있는 빛줄기들을 각각의 위치에 연결된 광섬유들을 통해 외부로 전송한다. 만약에 메시지의 내용을 변경하고 싶다면 ‘전송’버튼을 누르기 전에 금속으로 된 기하학적 모형을 구체의 한가운데에 위치시켜서 레이저들의 방향을 왜곡시키면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기하학적 모형’이란 바로 아까 말했던, 용광로 속에서 저절로 탄생한다는 그 모형들을 말하는 것이다. 정부요원들은 메시지를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다르게 프로그래밍하기 위해, 금고 속에 잘 모셔두었던 금속모형들 중 하나를 골라 종종 사용하곤 한다.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때로는 메시지가 두뇌 전체에 안좋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기 떄문이다. 예컨대 충격적인 기억이나 막연한 두려움과 같이 마음의 건강에 해가 될만한 생각 (메시지)이 뇌를 돌아다니고 있다면, 정부요원들 입장에서는 그러한 해로운 메시지를 비슷하지만 무해한 다른 메시지로 변경시키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기억하지는 못하는 이유이다. 머릿속에서의 정보의 왜곡은 각각의 메시지들의 왜곡에서부터 시작한다.

금속모형의 표면은 워낙에 매끈하고 거울과 같아서 완벽하게 레이저를 반사시킨다. 따라서 금속모형을 이루는 각 면들이 무슨 위치에 무슨 방향을 이루고 있냐에 따라 메시지가 변경되는 방식도 달라진다. 이는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꽤 특이한 기술임에 틀림없다. 보통 우리에게 있어서 메시지를 변경한다는 행위는 수동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지운 다음 다시 쓰거나, 아니면 메시지를 정해진 규칙에 따라 수정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나 뇌 속에서 일하는 요원들에게 있어서 “프로그래밍”이란 바로 기하학적 모형을 이용해 빛의 방향을 바꾸는 행위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빛이 바로 정보이고, 그 빛을 왜곡시키는 모든 장애물은 그 빛을 “프로그래밍”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컴퓨터가 전자회로 위의 전류의 흐름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이들의 광학적 장치는 허공에서의 빛줄기의 움직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셈이다. 금속모형이 구체의 한가운데에 위치될 수 있는 이유는 구체 내부에 강력한 전자석들이 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힘으로 인해 금속모형은 구체의 정 중앙에서 가만히 둥둥 떠있는 것이 가능하다. 요약하자면, 메시지를 받아서 변경시킨 다음 다른 곳으로 전송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입력’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윗쪽 반구에서 빛줄기들이 쏟아져 나와 아랫쪽 반구를 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에 메시지 내용이 뇌에 해롭다고 생각된다면, 알맞은 금속모형을 구체 한가운데에 위치시켜서 빛들을 방향을 왜곡시킨다. 그 상태에서 ‘전송’버튼을 누르면 변경된 내용의 메시지가 아랫쪽 반구에 달린 광섬유들을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메시지들의 수정/전달과정은 정부의 각 기관을 돌아가며 이루어진다 (각 기관은 섬의 한복판에 세워진 기다란 회색빌딩 속의 각 층에 자리잡고 있다. 광학적 장치는 층 단위로 한 쌍씩 존재하며, 이들은 위아래로 앨리베이터처럼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메시지를 위로 전달하는 데에 필요하고, 또 하나는 메시지를 아래로 전달하는 데에 필요하다). 메시지들이 무슨무슨 기관을 어떤 순서로 통과하는지를 알려면 우선 정부빌딩의 대략적인 구조를 알아야 한다. 우선 두뇌의 정부는 크게 3개의 권력들로 나뉘어져 있다 (미국이 창시한 삼권분립 제도와 비슷하다). 행정을 담당하는 “의식”이 있고, 의회처럼 법을 규정하는 “잠재의식”이 있으며, 대법원처럼 법을 해석하고 심판하는 “무의식”이 있다. 이 세 기관들은 각각 한명씩 대표자들을 가지고 있다. 의식의 대표는 Psyche라고 불리는 자인데, 그는 체크무늬 바지와 면 와이셔츠를 입고 그 위에 분홍색의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는 한 초췌한 청년이다. 잠재의식의 대표는 Anima라고 불리는 한 나이 든 여성으로, 그녀는 풍성하고 기름진 곱슬머리에 짙은 눈화장을 한 채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치마를 입고 있다. 무의식의 대표는 Ego라고 불리는 자로, 그는 두꺼운 직사각형의 밤색 금속테 안경을 쓴 채 먼지 낀 회색 정장을 입고 있는 백발의 노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