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과 콩나무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콩줄기가 간신히 구름을 뚫었다는 것은 그것이 다 자랐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그 정도의 높이라면 태양빛을 더욱더 강렬하게 받기 때문에 더 잘 자라는 것이 정상이다. 더이상 자기 위에 광합성을 방해할 장애물이 없기 때문에 기후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당연한 이유 때문에 콩줄기는 계속해서 자라났다. 비록 주변의 토양은 황무지로 변했겠지만 말이다.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은 여태껏 인류인 듯 싶었지만, 지금은 아마도 이 콩나무가 아닐까 한다. 성장이 계속됨에 따라 놈의 뿌리는 점점 더 깊이 지구 속을 파고 들어갔고, 수백만 갈래로 뻗어나가는 그 흉측한 촉수들은 주변의 물과 영양분을 억척스럽게 빨아들였다. 더군다나 그 굵고 긴 줄기를 지탱하기 위해 뿌리들도 굵고 길어졌는데, 이는 사방의 흙을 들쑤셔서 평지를 산으로, 강을 진흙탕으로 뒤바꾸어 놓곤 했다. 콩줄기에 달린 거대한 앞사귀들은 그 밑에 거대한 그림자들을 드리웠으며, 이는 주변 일대의 식물들의 성장을 철저히 가로막았다.
콩나무는 정말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자라났다. 물론 무작정 위로만 자랄 수는 없었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기압은 떨어지고 온도는 내려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비록 이런 사실을 몰랐던 어린시절의 그는 우주공간을 무한히 뻗어나가며 주변 행성들을 자신의 줄기로 덩굴처럼 휘감겠다는 허황된 꿈을 품었었지만 말이다.
구름 위로 높이 치솟은 콩나무는 이제 무작정 위로만 자랄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모험심이 강한 그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로지 햇빛에만 의존하며 진공의 망망대해를 헤엄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옆으로 자라기 시작했다. 구름층보다는 낮되 햇빛은 잘 드는 그런 높이에서 말이다. 그는 자신의 단단하고 곧은 줄기를 휘어뜨려서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만들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나무보다 곱절은 뻣뻣한 콩줄기는 전혀 꺾어질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콩나무는 고심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자라 온 방식을 후회했다. 그는 최대한 하늘높이 치솟을 생각만을 했을 뿐, 현실적인 미래를 고려한 선택은 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과거가 한심스러웠지만 이젠 다 지난 일이었다. 이제부터라도 고개를 숙인 채 옆으로, 그리고 아래로 자라며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는 고개를 90도에 가깝게 꺾어서 옆으로 자라기 시작했고, 곧 멀리서 볼때 그의 모습은 ‘ㄱ’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구름 위를 옆으로 가로지르며 뻗어가는 그의 줄기는 상당히 낯설면서도 정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그가 계속 옆으로 자라나자 기존의 수직으로 뻗은 줄기도 조금씩 옆으로 꺾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머지 않아 콩줄기는 하나의 완벽한 곡선이 되어 있었고, 그 곡선은 그가 옆으로 계속 자람에 따라 점점 더 옆으로 길어지고 완만해졌다.
몇년의 세월이 흘렀다. 콩나무는 마침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옛날의 모습을 버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옆으로 기어가며 자라는 법을 터득했다. 그는 그의 육중한 콩줄기를 땅 위에 눕힌 채 옆으로 자라며 지구의 이곳저곳을 떠돌았고, 이제는 지구 전체를 뒤덮은 굵직한 뿌리들은 여전히 그에게 양분을 조달해 주었다. 콩나무는 비록 하늘을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가 지구를 정복했다는 사실은 당연해 보였다.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도 그의 단단하고 굵은 줄기에 흠집을 낼 엄두를 못냈다. 만약 어떤 독한 놈이 줄기를 잘랐다 할 지라도, 잘린 부분은 아물면서 새로운 줄기로 자라날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목숨을 빼앗을 적수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몇백년의 세월이 흘렀다. 콩나무의 줄기는 바다를 제외한 지구의 모든 땅을 뒤덮었다. 심지어는 극지방과 사막마저도 말이다. 그의 뿌리는 육지나 바다를 가리지 않고 땅 속 깊이 침투하며 온 지구를 뒤덮었고, 그가 기름진 땅에서 모든 좋은 영양소들을 탈취한 탓에 주변의 거의 모든 식물들은 멸종을 면치 못했다. 온 지구를 뒤덮은 그는 하나의 거대한 덩굴과도 같았다. 햇빛은 그의 우람한 잎사귀들이 독차지했고, 물과 미네랄은 그의 뿌리가 독차지했다.
간혹 그의 줄기를 파먹은 동물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종들은 대부분 작은 벌레들이거나 아주 독특하게 진화한 초식 짐승들이었다. 콩나무의 단단한 줄기를 먹어서 소화시키려면 우선 날카로운 이빨이 있어야 했고, 콩나무 특유의 독에 내성이 있어야 했으며, 섬유소를 분해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런 독한 부류의 생물들은 지구상에 거의 없었고, 그 때문에 대부분의 동물 종들은 멸종했다.
선명한 초록빛의 콩줄기는 이리저리 비비 꼬이며 지구를 뒤덮었다. 이제 콩나무는 물 속 환경에 적응함으로써 바다를 횡단할 야심마저 품었다. 그는 지구의 주인이었고, 지구는 그의 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라고, 자라고, 또 자랐다. 이쯤되면 뿌리가 그 많은 영양분을 충당하지 못할까 걱정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 여유는 충분했다. 바다 전체를 떠받치는 토양을 뒤덮은 뿌리는 충분한 물과 미네랄을 빨아들여 콩줄기에게로 보냈다.
그러던 중 콩나무는 자신에게 임종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점점 자라나는 것이 힘겨워졌고, 대지의 물을 빨아들이는 것이 힘겨워졌기 때문이다. 그는 성장을 멈춘 채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그의 몸으로 뒤덮인 지구의 표면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이제 그와 지구는 한 몸이었고, 그가 늙어서 노쇠해지자 지구도 노쇠해졌다. 황혼을 맞이한 콩나무는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지구를 감싸안은 채 힘들게 물과 공기를 호흡했다.
콩나무는 자신에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리곤 그는 자신의 젊은날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처음 하늘을 향해 자라나던 그는 푸릇푸릇하고 곧은 줄기를 뽐내며 지평선을 수직으로 가르고 있었다. 스스로가 바벨탑이 되어 저 하늘 너머의 미지의 땅에 손을 뻗길 원했다. 머지않아 그는 그런 자신의 목적이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늙은이가 된 그는 더이상 잃을 게 없었다. 젊은 날의 허무맹랑한 꿈 따위에 모든 것을 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콩나무는 다시금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 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더이상 예전의 혈기왕성함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목숨 그 자체를 걸고 도전한다는 사실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그는 다시 옛날처럼 수직으로 줄기를 뻗뻗하게 세운 채로, 하늘을 향해 자랐다. 기압과 온도가 낮아질 때까지, 구름층을 뚫을 때까지, 하늘색이 점점 짙어질 때까지, 그리고 하늘의 별들이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일 때까지, 그는 자라고, 자라고, 또 자랐다.
그는 예전과 달리 자신의 몸이 훨씬 무거워졌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지막 여정이 될지도 모르는 지금 이 순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라났다. 지구 전체가 말라 비틀어질 정도로 가능한 한 모든 물과 자원을 빨아들이며 그는 위로 전진했다. 노을빛이 희미하게 깃든 몽롱한 하늘을 통과하자, 암흑 아래 펼쳐진 푸르고 하얀 지평선이 사방에 드러났다. 그는 줄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와 공기의 희박함에 숨이 멎을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계속 자라났다.
주변의 지평선이 점점 더 곡선의 형태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하늘은 완전한 암흑의 세계가 되어 있었다. 곳곳에 위치한 하얀 점들만이 그가 지금 우주의 한복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그는 무한한 공간을 향한, 그리고 죽음 너머를 향한 모험을 하고 있었다.
그는 위를 향해 하염없이 자라났고, 동시에 죽어갔다. 그의 줄기와 뿌리들은 점점 말라 비틀어졌고, 그의 잎사귀들은 시들었으며, 그에 따라 더이상 충분히 햇볕을 받지 못한 그는 더이상 못 자라게 되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최후의 날이 오고 말았다. 더이상 생명활동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 콩나무에게서는 초록빛이 사라졌다. 그의 몸이 온통 누래지자 지구도 누래졌다. 그가 시들자 지구도 시들었다. 이리저리 엉키며 대지를 뒤덮었던 콩줄기는 이제 대지 위에서 고약한 악취를 뿜으며 썩기 시작했다. 우주공간을 향해 뻣뻣하게 굳어있던 줄기는 밑부분이 썩어 문드러지자 바짝 마른 채로 대기권을 가르며 지상 위로 쓰러졌다. 거센 공기의 저항 때문에 불이 붙었다.
수분을 빼앗긴 채 건조해진 줄기의 일부는 불이 붙어 타들어갔고, 물에 젖은 줄기의 일부는 땅 속으로 썩어 들어가 거름이 되었다. 그렇게 지구는 누런 빛을 띄며 콩나무의 죽음을 애도했다.
콩나무는 죽기 직전에 이런 꿈을 꾸었다. 그는 우주공간을 가로지르며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추위를 피해서 태양을 향해 자라나던 그는 금성을 발견했다. 그는 줄기를 휘감으며 금성을 감쌌다. 그의 우람한 줄기는 금성의 찌는 듯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계속 자라났고, 곧 그는 수성에 도달했다. 그는 또 한번 줄기를 휘감으며 수성을 감싸안았다. 햇빛을 잔뜩 머금은 수성의 강렬한 열기가 그의 몸을 덥혔다. 그는 자라고 또 자라서 마침내 태양의 주변까지 도달했다. 그의 줄기에 매달린 잎사귀들은 밝은 초록빛을 띄며 햇빛을 받아들였고, 그는 더할나위 없는 쾌감에 휩싸였다.
태양은 그를 불렀고, 콩나무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자라나며 태양의 품 속에 파고 들어갔다. 처음에는 붉은 기운이 그를 감쌌고, 그 다음에는 노란 기운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얀 기운이 그를 감쌌다. 그것들은 그에게 영생을 부여할 생명의 아우라들이었다. 태양 속으로 들어간 콩나무는 사방에 펼쳐진 흰 공간 속에서 모든 것들과 뒤섞이고, 모든 것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은 태초부터 태양의 일부였고, 지금 이 순간 다시 태양의 일부가 되는 것이란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