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지하에 도시를 짓는다면 어떨까? 그냥 지하건물 수준이 아니라, 아주 깊숙한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정도의 도시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도시는 세로로 뻗은 기다란 빨대의 형상을 해야 할 것이다. 안 그랬다가는 위에서 가해지는 막중한 흙의 무게에 눌려 붕괴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하도시는 아마도 약 지하 수만 층까지 뻗어있는 아주 좁지만 긴 초고층건물이 될 것이다. 그럴려면 땅을 아주, 아주, 아주 깊숙히 파야 할 것이다. 대신에 세로로 길기 때문에 땅을 파는 규모는 그닥 안 커도 될 듯하다.
지하도시는 한 층당 하나의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자면 지하 24층은 주거구역이 될 수도 있고, 상업구역이 될 수도 있으며, 산업구역, 농업구역, 또는 유흥구역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상업구역이 된다고 해서 거대한 대형마트나 도떼기 시장을 기대하면 안 된다. 각 층의 규모는 작기 때문에 24시간 편의점 정도만이 들어설 수 있다.
지하도시는 그야말로 하나의 좁다란 터널과도 같다. 다만 그 터널은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며,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들이 차지하고 있어 격리된 공간을 조성한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칸이 안 나뉘어져 있었다면 지하도시는 하수구로 통하는 맨홀처럼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랬다면 도시에 사는 시민 모두는 벽에 둥지를 짓고 등산용 밧줄을 맨 채로 생활했을 테지만, 다행히도 고소공포증을 유발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불투명한 색으로 제작된 바닥은 단단하게 벽과 결합하여 시민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사람들은 나선형 계단으로 각 층을 오고 내리는데, 거동이 불편한 몇몇 이들은 승강기의 설치를 원한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우선 승강기를 하나 설치할 때마다 부담해야 하는 막중한 전력 소모량을 충당할 길이 없고, 게다가 시민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고 승강기를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0개는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시청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다. 시민들이 단체로 몰려와 시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주 좁고 복잡한 계단으로만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이렇게 하면 경찰 혼자서도 한 명씩 차근차근 상대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경비원 고용에 인건비를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도시의 시민들은 어디든 들르려면 계단을 적어도 몇층씩은 오고 내려야 한다. 그렇기 떄문에 편의시설들은 최대한 종류별로 뿔뿔이 흩어져 있고, 주거구역들은 그 사이사이에 끼여있다. 예컨대 ‘병원-연립주택-연립주택-경찰서-연립주택-연립주택-음식점-연립주택-연립주택-병원-연립주택-연립주택’ 이런 식으로 말이다. 농장이나 발전소같은 시설들은 집이나 편의시설 없이 따로 약 100층씩 모여있다. 지하 1층부터 시작해서 약 20층 정도는 주거시설과 편의시설이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 100층은 농장과 발전소. 그 다음의 20층은 또다시 주거시설과 편의시설, 또 그 다음의 100층은 농장과 발전소 – 이런 식으로 사람이 사는 곳이 20층씩,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100층씩 번갈아 배치되면서 총 수만 층에 육박하는 거대한 지하도시를 이룬다. 오르 내려야 하는 계단의 수를 생각했을 때, 지하 1~20층에 사는 주민들은 대체로 지하 120~140층에 사는 주민들과 거의 왕래를 안 한다. 물론 다리근육의 힘이 좋거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보통 이곳 지하도시의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과 비슷한 다른 지역을 방문하기 위해서 100층 이상의 계단을 왕복하지는 않는다. 일부러 운동을 위해서라도 100층 쯤은 한번쯤 오고 갈 수도 있지 않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지하에서만 살아서 그런지 돌아다니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더군다나 불필요하게 계단을 오르내리는 행위는 소음공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일종의 민폐로 간주된다.
지하인들은 지상 사람들처럼 아무런 생산적인 결과물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 그들은 시간이 날 때면 발전소에 설치된 인력발전기를 두 발로 돌리면서 전기를 생산하는데, 일정한 양의 바퀴수를 돌릴 때마다 동전이 하나씩 자판기처럼 떨어진다. 이건 그야말로 아주 느린 (그러나 공평한) 슬롯머신인 셈이다.
지하도시의 시민들은 가끔씩이라도 주변의 약 200층 반경의 다른 시민들과 교류를 한다. 그 정도의 거리는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면 큰 무리없이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의 1000층 가깝게 떨어진 거리를 왕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곳에는 숙박업이 없기 때문에 외박의 개념이 모호하다. 따라서 가려면 당일치기로 가야 하는데, 그 누구도 몇백층의 계단을 밟으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런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도 못 느낀다. 지하도시의 경치나 시설은 다 거기서 거기인데 무슨 호기심이 발동한단 말인가?). 그러다 보니 이 지하도시는 수많은 고립된 마을들로 나뉘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엔 장거리 통신기술이 지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몇백층 정도의 간격을 두고 살아가는 주민들은 서로 평생동안 얼굴 한번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어떠한 결과가 발생하겠는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이들의 언어도 달라지고, 문화도 달라지고, 지적 수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장기간 고립을 통해서 하나의 도시 안에서는 수많은 문화권과 인종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지하 10층에 사는 시민들이 거의 유인원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 지하 59860층에 사는 시민들은 놀라운 기술력을 이용해 지구의 중심부에서 수영을 즐길지도 모른다. 앞으로 지하도시의 길이가 얼마나 더 길어질지는 모른다. 그것은 전적으로 지하의 맨 끝층에 사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기로 결정하냐 안 하냐에 달려있다 (어차피 시청 측에서는 지하도시가 그렇게 깊숙히까지 자라났다는 사실을 눈치챌 방도가 없다).
물론 지하인들 중에서 지적으로 많이 퇴보한 자들은 다른 층들의 시민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침략전쟁을 벌인다. 예컨대 층과 층 사이의 나선형 계단에서 기사들이 칼을 들고 접전을 벌이는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시민들은 아예 층과 층 사이의 입구를 두꺼운 콘크리트로 막아 버린다. 고립에 의한 산소부족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단은 살고 보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