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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의 경계

Author: Youngjin Kang

Date: Winter 2012

인터넷처럼 수많은 웹페이지들이 털뭉치처럼 얽히고 설킨 가상의 구조물은 쉽게 시각화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터넷 세상을 지도에 그려야 한다면, 아마도 커다란 섬 하나가 적합할 것이다. 그냥 조그만 무인도 말고, 마다가스카나 아이슬란드같이 꽤 큰 규모의 섬 말이다. 그 정도 크기의 땅덩어리라면 지구상의 모든 인터넷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온갖 문서들, 사진들, 동영상들, 게시글들, 덧글들, 메시지들, 홈페이지들, 그리고 프로그램들의 상관관계들을 도식화하는 데에 충분할 것이다. 다만 인터넷을 이루는 모든 정보들을 섬의 아무 곳에나 위치시켜 버리면 너무 정신없고 지도의 의미를 상실하니까, 정보를 종류별로 분류해가면서 그에 맞는 위치에 표시하는 것이 가장 좋다. 지금부터 대략적인 인터넷 섬의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자.

일단 섬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분화구가 있다. 그렇다, 이 섬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섬이다. 분화구 속에서는 용암이 끊으면서 연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 용암은 정부의 극비문서 또는 데이터베이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접근이 제한된다. 분화구의 맨 윗쪽, 즉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용암 속으로 떨어질 위치나 그 주변에는 정부가 보안을 위해 만든 방화벽들과 비밀리에 운영하는 사이트들이 있다. 이곳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화산의 중간쯤 높이까지 내려가면 드디어 두꺼운 산악용 코트를 입은 등산객들이 몇몇 보인다. 그들은 곳곳에 띄엄띄엄 지어진 오두막집이나 철제건물에서 휴식을 취하곤 하는데, 이곳들은 정부가 일반인에게 공개한 일부 문서들을 보관해 놓은 곳이다. 따라서 몇몇 관심이 있는 자들만 방문할 뿐, 대부분의 나머지 사람들은 정부문서들을 들여다 보는 데에 흥미가 없기 때문에 굳이 산의 중간높이까지 등산을 하는 수고는 하지 않는다. 화산의 중턱에서 점점 더 고도가 낮은 곳으로 걸어 내려가면 드디어 일반인들도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이들 사이트들은 산의 비교적 낮은 위치에 빽빽이 건설되어 있는 초원 위의 건물들로, 이들 주변의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는 버스같은 대중교통 시설이 통하는 도로가 이어져 있다. 이들은 바로 정부에서 관리하는 행정/복지 사이트들로 (주소가 Gov로 끝난다), 일반인들의 쉬운 접근과 정보열람을 위한 편의시설들로 이루어져 있다.

산에서 완전히 내려가면 숲이 나타날 것이다. 숲들은 산의 주변을 이루는 조그만 언덕들 위에 조성되어 있는데, 이들 숲을 이루는 커다란 침엽수들 사이사이에는 꽤 호화찬란한 고딕 풍의 대저택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으리으리한 건축물들은 바로 시민단체나 개인이 주최하는 캠페인, 정부에서 지원하는 문화사업 진흥프로그램, 또는 국가/민족에 관련된 수많은 지역사회들을 대표하는, 다소 정치적인 목적의 소모임 사이트들이다 (주소는 Org로 끝난다). 일반인들의 접근은 정부에서 직접 관리하는 사이트들에 비해 낮은 편이지만, 몇몇 단골손님이나 회원들은 자주 드나드는 편이다. 자, 이제 숲으로 이루어진 고상한 언덕들을 벗어나 좀더 내려가면 드디어 평지가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격자모양의 도로들과, 상/하수도 시설들과, 댐과, 발전소들과, 쓰레기 매립지들과, 재활용센터들을 비롯한 도시의 기반이 되는 시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공터가 많지만, 중간중간에는 띄엄띄엄 값비싼 게스트 하우스들과 호텔들이 위치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곳들은 주로 유명한 예술가들이나 디자이너들, 발명가들, 연예인들, 작가들, 영화감독들과 같이 명망있는 개인들이 전문 웹디자이너를 고용해서 값비싼 호스팅 비용을 지불하며 관리하는 개인홈페이지들이다. 방문객들은 매일 폭주한다.

평지를 따라 산을 등지고 계속 나아가다 보면, 도시의 생산/경제활동의 주축을 이루는 산업지구와 상업지구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쉬운 물자운반을 위한 고속도로들과 철도들이 보이기 시작하며, 곳곳에서는 회사나 개인단위의 기업체들이 운영하는 고객지원용 사이트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이들 사이트들의 주소는 Com으로 끝난다). 이들을 방문하는 손님들의 대부분은 고객들이며, 사이트들은 주로 환불, 보상, 상품소개, 주문제작 등을 비롯한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들을 실행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따라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면 곧 도시의 심장부, 즉 번화가인 다운타운이 보일 것이다. 이곳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웹사이트들이 밀집된 곳이다. 곳곳에는 도시 안에서의 쉬운 이동을 위한 택시들 (검색엔진)이 있고, 무료 영화관 (동영상사이트)과 갤러리 (사진사이트)가 있으며, 도심 속의 거주민들을 위한 고층 아파트들 (블로그), 길거리 광장들 (커뮤니티 사이트들), 음침한 골목길들 (다소 불건전한 커뮤니티 사이트들), 문화센터나 헬스클럽들 (회원제 커뮤니티 사이트들), 카지노나 당구장들 (유료 온라인게임 사이트들), 다방과 레스토랑들 (유료 채팅방들), 등등….. 사람들이 평소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사이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사이트들은 주로 인터넷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들에 의해 운영되고, 때문에 다양한 교통수단들 (링크)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도심에서 벗어나면 한적한 외각이 등장하는데, 이곳은 주로 조그만 조립식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주택들의 대부분은 방문객이 거의 없는 조용한 개인 홈페이지들로, 한때는 도시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교외로 밀려난 곳이다. 이곳의 사이트들은 주로 자기소개, 일기장, 생활 속의 간단한 몇몇 정보들 등의 소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개인에 의해서만 관리되고 있다. 오늘날의 아파트 (블로그)만큼 성능좋은 냉/난방 시스템이나 가까운 편의시설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도심 속의 아파트로 이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더 외각으로 나가면 유흥가들이 가득 찬 음침한 구역이 등장하는데, 이곳에는 각종 불법 파일공유 사이트들, 욕설이 난무하는 게시판들로 가득 찬 익명 커뮤니티 사이트들, 사이비종교나 각종 미신 신봉자들의 친목 사이트들, 한물 간 유머사이트들, 자칫하면 버그를 옮기는 광고사이트들,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당할 만한 수위의 불건전한 컨텐츠들을 담고 있는 사이트들 등이 널려있다. 이곳의 골목길들은 제대로 치워지지 않은 쓰레기와 오물들 때문에 악취가 진동하며, 밤에는 요란한 소음과 간판불빛으로 번쩍인다. 이곳에서 더 변두리로 나가면 다시 한적한 구역이 등장한다. 도시의 매연은 더이상 눈에 띄지 않고, 사방은 한적한 농장들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건물들은 종종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마구간들과 조그만 단독주택들 (웹 계정, 웹 컨텐츠 제공 사이트들)이 전부이다. 밭들 사이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나아가다 보면 드디어 섬의 가장자리인 해안가가 나온다. 자, 이제 인터넷 세계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것을 발견할 순간이 도래하였다. 이 해안가는 바로 인터넷의 경계선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이 아닌 새로운 요소가 개입되는 곳이다.

파도가 줄기차게 방파제를 때리는 그곳에는 작은 항구가 있고, 그 주변에는 등대가 하나 있는데, 그곳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해 운영되는 미지의 사이트이다. 그 사이트는 그 어떤 인간의 개입이나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도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새로운 종류의 기이한 자료들을 업로드하는데, 그 중에는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지만 인간이 사용할만한 언어라고는 보기 힘든 괴상망측한 문맥의 글들, 웹 상에서 검색되는 온갖 사진들을 조합해 만든 듯한 이상한 그림파일들, 웹 상에서 떠도는 동영상들을 토막내어 편집한 다음 괴상한 잡음을 섞어 만든 듯한 비디오파일들이 수두룩하게 링크되어 있다. 이들 자료들 중 그 어느 것에도,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누군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흔적은 없다. 그래서 이 신비의 사이트를 발견한 사람들은 이곳을 “유령의 사이트”라고 부른다. 인간이 아닌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설계하고 관리하는 미스터리한 웹사이트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도대체 이 사이트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곳은 언제부터 인터넷에 존재하기 시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