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기원을 북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 일대라고 가정한다면,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양쪽 끝이야말로 세상의 경계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기 이전의 세계관에 기준해서 말이다). 그 “양쪽 끝”이란 지도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밀집해 사는 곳 중에서 세계의 가장 변두리에 위치한 지점들은 바로 아일랜드와 일본이다. 아일랜드는 세계의 서쪽 끝에 위치해 있는 나라고, 일본은 세계의 동쪽 끝에 위치한 나라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태양이 떠오르는 시점인 “아침”으로 줄곧 연관지어지고, 아일랜드는 해가 지는 시점인 “저녁”으로 연관지어진다. 일본은 해의 출발지점인 것이고, 아일랜드는 해의 종착역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 아일랜드와 일본 둘 다 비슷한 색깔, 즉 하얀 바탕에 붉은 무늬를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하얀 바탕에 X자 모양의 붉은 문양을 그려넣고 있고, 일본은 하얀 바탕에 원모양의 붉은 문양을 그려넣고 있다. 이 두 깃발들은 비록 모양은 다를지 모르지만, 굉장히 비슷한 색의 조합을 이룬다. 두 나라가 유라시아 대륙의 양쪽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둘이 미학적인 면에서 서로를 모방할 정도로 깊은 문화적 교류가 있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는 정말 순전히 우연이라든가, 아니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공통된 미적 감각이 지리적 환경에 따라 표출되었을지도 모른다 (두 나라 모두 섬나라들이고, 옆으로는 드넓은 대양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라).
먼저 아일랜드와 일본의 국기들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를 색다르게 해석해 볼 수 있다. 먼저 일본의 국기가 하나의 원이고, 아일랜드의 국기가 하나의 X자라는 점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화살표 표시들이 기억나는가? 우리는 뭔가가 다른 무언가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나타낼 때 화살표를 그리곤 한다. 벡터를 그릴 때도 화살표를 사용하고, 무슨무슨 값이 다른 어떤 값에 수렴한다는 것을 나타낼 때도 화살표를 사용하며, 운전자들에게 무슨 방향으로 가라고 지시하는 표지판에도 화살표를 사용한다. 다만 화살표를 사용할 때의 한계는, 바로 화살표를 그리는 공간이 평면이라는 데에 있다. 이런 차원적 한계 때문에 우리는 위, 아래, 왼쪽, 오른쪽을 가리키는 화살표들은 그릴 수 있지만 앞이나 뒤를 가리키는 화살표들은 그릴 수 없다. 이런 화살표 특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언제부턴가 수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새로운 종류의 “화살표”를 도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두가지 종류의 동그라미들이었는데, 하나는 한가운데에 동그란 점이 찍힌 형태를 띄고 있고, 또 하나는 한가운데에 X자가 그려진 형태를 띄고 있다. 동그란 점이 찍힌 동그라미는 “앞”을 가리키는 화살표이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가 종이 위에 이 무늬가 그려진 것을 정면으로 바라본다면, 이 화살표는 종이의 윗면을 수직으로 뚫고 나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관통해 지나간다. 그와 반대로 X자가 찍힌 동그라미는 “뒤”를 가리키는 화살표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종이 위에서 이 무늬를 본다면, 이 화살표는 종이의 뒷면을 수직으로 뚫고 나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에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 기다란 선으로 표현하던 기존의 화살표들이 x와 y축에 속해 있었다면, 이 새로운 두가지의 화살표들은 z축에 속함으로써 3차원 공간을 가리킬 수 있게 해준 셈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아일랜드의 국기는 X자이고 일본의 국기는 원모양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사용되는 2가지의 새로운 화살표 문양들과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일랜드 국기의 X자는 바로 종이의 뒤를 가리키는 화살표를 상징하고, 일본 국기의 원모양은 바로 종이의 앞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상징하는 것이다. 세계를 하나의 화살이라고 가정한다면, 일본은 화살의 맨 앞쪽, 즉 사냥감을 찔러죽일 화살촉의 끝부분에 속하는 셈이다. 실제로 화살촉의 끝부분이 대체로 동그란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원모양은 “앞을 바라보는 화살표”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와 반대로, 아일랜드는 화살의 맨 뒷쪽, 즉 화살을 잘 날아가게 해주는 깃털들의 끝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실제로 화살을 이루는 깃털들의 X자 모양의 단면이 화살의 뒤를 잘 나타내기 때문에 “뒤를 바라보는 화살표”가 된 것이다.
결국 세계가 하나의 화살이라면, 일본은 세계의 앞면, 아일랜드는 세계의 뒷면에 속하는 셈이다. 일본은 지금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는 종이의 평면상에 위치해 있고, 아일랜드는 그 종이의 뒷면에 위치해 있다. 종이의 앞면과 뒷면 사이에는 바로 종이 그 자체를 섬유조직들이 있는데, 그 마이크로 단위의 미세한 조직들이 바로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들이다. 그 외에 종이가 아닌 다른 공간들, 즉 종이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각각 태평양과 대서양이다.
세계를 이루는 화살은 지구를 회전시키는 힘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이 바로 지구를 회전시키는 힘의 방향이다. 지구는 화살의 방향을 따라 아일랜드 쪽에서 일본 쪽으로 회전하고,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태양은 일본 쪽에서 아일랜드 쪽으로 움직인다. 해가 항상 동쪽에서 뜨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있다. 지구를 회전시키는 화살표가 하나밖에 없다면, 지구는 회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한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 지구는 태양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리거나, 태양에 너무 가까워져 버릴 것이다. 이는 힘이 지구의 한쪽 귀퉁이에서만 가해졌을 때의 문제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지구를 이루는 화살들은 총 2개라는 점이다. 하나의 화살은 아까도 말했듯이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들을 이루고 있고, 또 하나의 화살은 바로 아메리카 대륙들을 이루고 있다. 이 또 하나의 화살은 처음 말했던 화살과 정확히 똑같은 길이와 힘을 가지고 있고, 지구상에서 정 반대에 위치해 있으며, 따라서 정 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 두가지의 힘들은 서로 힘을 합쳐서 매일 지구를 회전시킨다. 그러면서도 그 두 화살들은 서로 같은 양의 힘을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가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힘의 최종값은 0이 되고, 따라서 지구 그 자체는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괘도만을 따라가며 얌전히 회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