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공상과학 소설이라 하면, 놀랍도록 발전된 기술을 지닌 미래의 인류가 우주공간을 배회하면서 외계인들과 조우하는 광경이 쉽게 떠오른다.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현존하지 않는 기술들, 예컨대 시간여행이나 공간이동이나 뇌 스캐닝같은 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첨단장비들을 떠오르게 마련이다. 사실 이런 비슷비슷한 소재들은 지난 백몇십년간 비슷비슷한 과학적 배경지식을 기반으로 반복해 쓰여져 왔다. 왜냐하면 19세기 후반의 과학과 21세기의 공상과학은 둘 다 현대과학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 둘에게는 근본적인 세계관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달 탐사가 은하계 탐사로 바뀌었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로봇으로 바뀌었으며, 시간여행이 평행우주나 상대성이론같은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대체되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주는 개척해 나가야 할 미지의 지평선이고, 자아와 인격은 정의 불가능한 철학적 난제이며, 시공간에 대한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전자기술, 컴퓨터기술같은 몇몇 혁신만 빼면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만약에 중세시대에 공상과학 소설이 쓰여졌다면 어떨까? 중세인들은 현대과학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없었고, 종교적인 세계관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으며, 온갖 미신들을 진짜라고 믿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과학”이라는 단어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과학”에 짙은 미신적, 신화적 색채를 불어넣었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공상과학”은 오늘날의 공상과학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현대에 이르러서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규명된 것들, 예컨대 천둥, 번개, 기린, 코끼리, 미생물, 태양, 달, 후광, 무지개 등과 같은 것들은 중세에만 해도 밝혀지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이었으며, 따라서 그것들에 대한 공상과학적인 해석이 있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중세시대에 쓰여졌던 공상과학 소설들의 대부분은 악마의 책이라고 매도되어 죄다 불태워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바로 2년 전, 고고학자들은 옛 성벽의 해자 주변의 공터에서 대리석 상자를 발굴해 내는 데 성공했으며, 그 상자 속에서 중세 최초의 공상과학 소설이라 추정되는 책의 원고를 새긴 목재 판들을 발견해 내었다. 공상과학이라는 문학장르가 산업혁명 이후에 탄생한 것이라고 여기던 학계에는 가히 이변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소설은 14세기 중반에 쓰여진 것으로, 오늘날의 공상과학 문학들과 구조는 비슷하지만 세계관은 엄연히 다른 신기한 양상을 띄고 있다. 예컨대 이 소설 속에는 지구 곳곳의 수많은 다른 인종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다가 ‘범지구적 연합’을 결성해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오늘날의 우리가 상상하는 ‘은하연합’, 또는 ‘우주연맹’을 떠오르게 한다. 우주 곳곳에 뿔뿔이 흩어진 다양한 종류의 외계인들이 서로 합심하여 하나의 정부체제를 가지고 사는 것이다. 또한 이 소설은 바다 한복판에서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을 굉장히 미학적으로, 그리고 위험천만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소설의 첫 장에서는 주인공과 그의 일행들이 바다를 항해하다가 실수로 지구의 끝부분에 다다라서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고, 거기서 악마들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위로 역류하는 신비의 계곡을 타고 올라감으로써 천국에 도달한다. 거기서 주인공과 일행들은 범지구적 연합의 대통령이 실행하는 비밀 프로젝트를 엿보게 되고, 그들은 지빨리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서 대통령의 음모를 모든 인종들에게 고발한다.
이런 드라마틱한 설정은 마치 오늘날의 공상과학 소설들이 묘사하는 ‘우주 표류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몇몇 지구인들이 조그만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누비다가 갑자기 웜홀에 빠져서 평행우주로 이동해 버리고, 그곳에서 적대적인 외계인들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순간이동 장치를 이용해 우주의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는 식으로 그 배경만이 다를 뿐이다. 중세인들에게는 우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쓴 공상과학 소설의 배경도 지구와 그걸 둘러싸고 있는 영적인 세계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천국과 지옥이 무슨 공상과학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시 중세인들은 대기권과 지층을 면밀히 조사할 기술력이 없었기 때문에, 천국이나 지옥이 진짜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믿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중세인들 입장에서 그들은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소설로 꾸며서 구현했을 뿐이고, 따라서 이 소설은 완전한 허구적 세계에 바탕을 둔 판타지 소설과는 다르다.
이 소설이 묘사하는 지구는 구체가 아니라 원반의 형태를 띄고 있으며, 지구 위에 사는 각각의 인종들은 서로가 완전히 다른 종들로 묘사되고 있다. 예컨대 슬라브 인종은 마치 요정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며 (심지어 그들은 파닥거리는 은빛 날개로 하늘을 누비는 항공기술자들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아프리카 인들은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가진 파충류로, 서아시아인들은 지구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특수복을 입고 지상으로 기어나온 악마들로, 극동아시아인들은 지구의 경계선 주변에서 헤엄치는 인어들로, 그리고 게르만족은 “평균적인” 인간들로 묘사되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중세인의 시점으로 바라본 미래의 인류이다. 1350년 경에 상상한 2000년대의 세상을 하나하나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 소설속에 구현한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중세인의 우주관과 도덕관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미래지향적이며, 그 때문에 오늘날의 공상과학 소설들과 놀라운 유사점들을 가진다. 물론 이 중세인들이 바라본 미래는 지금의 이 세상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적어도 미래를 바라보려고 했던 그의 시도는 훌륭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그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과정을 최대한 “과학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로 그는 태양을 지구의 동쪽 경계선에 사는 한 거대한 괴물이 입으로 뱉어내는 배설물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극동아시아의 인어들은 태양을 만드는 그 괴물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들은 스스로를 “태양의 수호자들”이라고 부른다. 지구의 서쪽 경계선에는 또다른 괴물이 살고 있는데, 그 괴물은 매일 밤마다 경계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을 번개로 낚아채어 삼키는 대형 천둥새이다. 그 괴물을 수호하는 자들은 화려한 깃털모자를 쓴 채 창을 휘두르는 또다른 무리의 인어들이다.
이처럼 밝혀지지 않았던 자연현상들을 이 중세의 작가는 나름 합리화해 설명하려고 했고, 이처럼 스스로의 세계관을 합리화시키는 과정이 공상과학이라는 소설장르의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