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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들의 박물관

Author: Youngjin Kang

Date: Autumn 2012

문서를 잘 정돈해 모아놓는 것은 기록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서 도서관에 가 보면 한쪽 코너에 정부문서들이 빽빽이 모여있는 곳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 일부는 일반인에게 공개되면 안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입구에 보안장치가 있을 정도이다. 그 만큼 나라의 일들을 문서화하여 잘 보존하는 일은 중요하며, 훗날 후손들이 기록들을 샅샅이 뒤져서 과거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굳이 정부문서가 아니더라도 값진 기록이 될 만한 문서자료들은 많다. 전화번호부, 주소록, 신문 등과 같이 생활 속에서 대량생산되는 인쇄물들도 도서관에 차곡차곡 보관되며, 출판사에서 편집작용을 겨쳐 출판한, 시중에 판매되는 책들도 도서관에 보관된다. 이토록 우리가 살면서 만들어내는 문서들 중 중요한 것들은, 일련번호가 매겨져서 가지런히 도서관의 책장 속에 정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서만이 기록의 증표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을 가장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매체가 글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서관의 대다수 공간을 글로만 빽빽이 채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론 요즘 도서관에는 영상물과 음악을 위한 코너들도 있지만, 그런 종류의 미디어들도 결국은 살아 숨쉬는 물건이 아니라 형체 없는 정보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도서관들은 무형 기록들만을 보관할 뿐 유형 기록들은 보관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박물관에 가 보면, 고고학자들이 옛날 고대문명이 만들어낸 수천년 묵은 도구들을 발굴하여 보관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 만큼 옛날 사람들이 무슨 생활용품을 사용했는지를 아는 것은 과거를 아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소유했던 물품들을 종류별로 차례대로 정리해 하나의 장소에 모아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나마 왕의 무덤과 같이 온갖 귀중한 물건들을 모아놓은 곳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고고학자들은 드넓은 땅의 곳곳을 파헤치면서 고대인들이 쓰던 물건들을 찾아내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야 했을 것이다. 만약에 고대의 인류가 자신들의 생활 속 물품들을 하나의 장소에 대량으로 모아놓았다면 어땠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오늘날 쐐기문자로 쓰여진 그들의 점토판 문서자료들이 도서관 발굴과 함께 한꺼번에 발견되었듯이, 그들의 도구들 또한 도서관 발굴과 함께 한꺼번에 발견되었지 않았을까?

문서를 저장하는 도서관이 있듯이, 물질을 저장하는 도서관도 따로 있어야 한다. 형태가 있다는 뜻에서 “유형도서관” 이라고 불리는 이 도서관은 커다란 창고처럼 생겼는데, 이곳에는 책장들 대신에 크고 작은 금고들이 배열되어 있다. 각각의 금고들 중에는 몇 겹의 선반이 배치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어쨌든 금고의 모양을 불문하고, 각각의 금고 안에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물품들이 종류를 막론하고 보관되어 있다. 예컨대 촛대, 컵, 컴퓨터 마우스, 휴대폰, 음료수 캔, 칫솔 등의 아주 사소한 것들 뿐만 아니라 자동차, 제트엔진, 컴퓨터, 현금인출기, 잔디깎이 기계, 안테나 등과 같이 크거나 값진 것들도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그냥 무작위로 진열되지 않고, 종류별로 비슷한 것끼리 순서를 맞추어 정돈된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흔히 아는 도서관에서는 책을 보관할 때 그 책의 장르에 따라 일련번호를 매긴다. 이곳 유형도서관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에서는 새롭게 보관할 물건이 들어오면 그 물건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일련번호를 매긴다. 그런 다음 일련번호의 순서에 따라 그 물건을 적합한 장소에 보관한다. 예를 들어서 방석과 등받이가 딸린 식탁의자가 유형도서관에 보관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안락의자 코너와 야외용 목재의자 코너 사이에 진열될 가능성이 높다.

유형도서관에 보관되는 물품들은 무조건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것들을 무작위로 고른 게 아니다. 유형도서관의 보관품들은 모두 누군가 의뢰인이 보관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예컨대 평생동안 사용하면서 애지중지하던 도자기 컵을 가진 노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노인은 더이상 자신의 도자기 컵을 물려줄 자식이나 후손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땅 속에 묻어 버리기는 차마 못할 것이다. 평생 소유해서 정이 든 물건을 어떻게 쉽게 버려 버린단 말인가? 그러면 노인은 이렇게 결론 내릴 것이다. “유형도서관에 보관해서 영원히 추억을 보존해야 겠다” 고 말이다. 노인은 기꺼히 돈을 주고라도 자신의 도자기 컵을 유형도서관에 진열해 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이는 마치 자신의 평생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을 출판해서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과도 같다. 다만 이 경우에 노인은 자신의 과거 일들을 일일히 글로 기록하는 대신에, 손때 묻은 사물 하나에 투영한 셈이다.

이처럼 유형도서관은 각자 나름의 깊은 사연을 간직한 물품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위대한 과학자들이 사용하던 실험도구들도 있고, 유명인사들이 착용하던 액세서리들도 있으며, 작가들이 평생동안 서재에서 사용하던 책상과 만년필들도 있다. 특히 만년필들의 경우에는 손기름을 씻어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금고 안에 냉동 보관되기 때문에, 거기에는 작가들의 지문까지 남아있다. 훗날 미래의 고고학자들이 이 유형도서관을 발견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살아생전에 무슨 물건들을 이용했는지, 그리고 힘겨운 발굴작업 없이도 생생한 옛날의 도구들을 쉽게 금고 안에서 꺼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지 않을까? 만약에 고대 수메르 인들이 유형도서관을 운영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그곳에서 당시 그들이 사용하던 맥주잔을 완벽한 형태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공장에서는 그 형태를 본따, 시중에 판매되는 맥주잔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