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우리는 지구의 대기를 이루고 있는 기체, 즉 다량의 질소와 산소, 소량의 이산화탄소, 그리고 몇몇 다른 분자들이 섞인 공기를 흡입하며 살아가고 있다. 워낙에 오래 전부터 공기를 마셔버릇 했으니, 공기야말로 우리가 유일무이하게 아무 거리낌 없이 들이마실 수 있는 물질임에 틀림없다. 아니, 틀림없었다. 새로운 발견이 있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인간이 지구의 대기가 아닌 다른 혼합물을 자연스레 흡입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몇몇 연구기관들은 전에는 없던 학설을 내놓았다. 그건 바로 인간이 호흡기관을 통해 흡입할 수 있는 혼합물이 총 1가지가 아닌 2가지라는 이다. 첫번째는 공기, 즉 지표면을 뒤덮고 있는 기체이고, 두번째는 충격적이게도 액체이다. 이 액체는 자연상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몇가지의 인공적인 화학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있으며, 현존하는 모든 인간은 아무 통증이나 부작용 없이 폐로 이 액체를 들이 마셨다가 내뱉을 수 있다. 이 액체는 산소의 농도가 매우 높았고, 외관상으로는 반투명한 연두색을 띄었기 때문에 ‘연두액’이라고 이름붙여졌다. 몇차례의 실험을 통하여, 사람은 공기를 전혀 마시지 않고 연두액만 흡입하며 살아도 충분히 생명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람이 공기가 아닌 다른 물질로 호흡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러한 발견은 마치 “실리콘을 씹어먹으면 물을 전혀 안 마셔도 살 수 있다”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공기를 마시지 않고 살 수 있다니? 그리고 액체를 폐로 들이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니? 이 모든 점들은 그동안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일반적인 상식의 틀을 깨 버렸고, 공기를 인간의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치부하던 기존의 지식을 전면으로 부정해 버렸다. 여하튼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연구가 한창 진행중이던 초창기에 과학자들은 인간이 연두액만을 흡입하며 살 때도 전과 같은 방식의 세포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마디로 산소가 풍부한 연두액을 들이마신 다음 내뱉으면, 그 내뱉은 연두액은 약간 덜 풍부한 산소와 약간 더 많아진 이산화탄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은 연두액 속에서의 산소/이산화탄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연두액으로 채워진 수족관 속에 지상의 식물을 재배하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행하게도 물 속에서의 식물의 부패 때문에 제대로 된 재배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지나친 수분에도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새로운 개량종을 만들어냈고, 이 새로운 종류의 수초들은 연두액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라났고, 산소를 만들어냈으며, 번식했다. 한마디로 이제는 사람이 아무리 연두액을 흡입하더라도, 그 속의 최소 산소량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쯤 되자 모두들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연두액 속에 들어가서 평생동안 사는 것도 가능할까?” 한마디로 연두액과 수초들로 가득 찬 커다란 수족관을 하나 마련해 놓고, 수영복을 입은 채 그 속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이다. 공기는 전혀 호흡하지 않고 말이다. 이같은 도발적인 실험에 참가하겠다는 자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수많은 실험기관들은 거대한 연두액 수조를 마련했고, 곧 그들은 손쉽게 피실험자를 모집해 실험을 실시했다. 관찰결과는 초반부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피실험자들은 수영복 차림으로 연두액 속에서 헤엄을 치며 여유롭게 숨을 쉬었고, 얼마나 편안했던지 종종 꾸벅꾸벅 졸거나 코를 골며 자기도 했다. 오히려 지상에서 공기를 호흡하며 살 때보다 수조 안에서 연두액을 호흡할 때 더 안락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피실험자들과 연구원들 모두 실험과정 속에서 아무런 부작용이나 돌발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했는데,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실험을 다소 의심했다. 뭔가 외부적인 요소나 속임수가 개입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술사나 무대설치가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실험장치들을 둘러보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자, 연구원들은 더이상 피실험자의 적응력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피실험자들은 연두액 속에서 몇가지 지능테스트를 행했고, 모두 다 가뿐히 통과했다. 아이큐 검사결과는 오히려 지상에서 행했을 때보다 수치가 높게 나왔고, 몇차례의 운동신경 테스트 결과 신체적인 능력에도 아무런 손실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온갖 영양분이 듬뿍 함유된 알약들을 삼키며 신체를 위한 영양분을 충당했고, 그들의 건강상태는 최상이었다. 오히려 지상에 있었을 때보다 건강이 좋아진 것 같았다 (물론 이 점은 알약을 통한 균형잡힌 영양섭취에 의한 것이라라는 게 연구원들의 결론이다). 피실험자들은 지상에서 하던 모든 일상 속 업무, 여가, 잡무들을 연두액 속에서도 완벽하게 수행했으며, 그들의 생활방식과 수면패턴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이제는 연두액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으로 호흡해야 할 물질이 되었고, 지상의 공기는 오히려 그들에게 이질적이고 불쾌한 물질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실험결과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실험에 참가한 연두액 속 사람들의 노화작용이 평소보다 18배 가량 느리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연두액 속에서 생활하는 피실험자들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나이를 먹었으며, 이 놀라운 현상을 계속 관찰하기 위해서 실험은 몇십년이 넘는 기 세월동안 지속되었다. 몇몇 피실험자들은 그 오랜 세월동안에도 끝까지 연두액 속에 남아서 연두액만을 흡입하며 살아갔고, 곧 그들은 미디어의 화제,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
실험은 거의 한세기 반동안이나 지속되었지만, 그때까지도 연두액 속의 피실험자들은 아주 조금 늙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건강했고, 그들의 피부는 탄력이 있었으며, 그들의 두뇌 또한 몸과 마찬가지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오히려 실험의 초창기 때보다 훨씬 더 방대한 양의 지식과 사유력을 보여 주곤 했다 (150년 동안이나 수조 속에서 책을 보거나 영상을 관람하고 있었으니 온갖 잡지식이 안 쌓일수가 있겠는가?) 과학자들은 피실험자들의 노화과정을 정밀하게 분석했고, 곧 그들은 피실험자들이 자연사 할 때까지 앞으로 900년은 족히 남았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서 연두액 속에서는 사람의 수명이 그 정도까지 늘어난다는 충격적인 결론이었다. 실험의 성과가 이 정도까지 진전되자 이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연두액 속에서 생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몇몇 사업가들은 드넓은 땅에 넓다란 연두액 수조를 건설했으며, 거액을 받고 그 속에 사람들을 입주시켰다. 물론 처음에는 돈 많은 재벌들과 부유층들이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여 개인용 거대 연두액 수족관을 마련해 그 안에서 살기 시작했지만, 곧 일정금액을 지불하여 일부 공간을 임대할 수 있는 공동 연두액 수조들이 중산층에게 보급화되기 시작했다. 연두액 속에서의 생활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은 연두액 속에서의 삶을 계속해서 연장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 돈을 벌었고, 그 돈은 연두액의 수조 안 공간을 계속해서 임대하는 데에 투자하였다. 이제 사람들은 기회만 된다면 1초라도 더 연두액 속에서 살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연두액 속에서는 수명이 18배나 더 늘어났으니 그럴만도 했다.
물론 연두액 속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그냥 지상에 남은 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깊은 신앙심을 가진 종교인이거나, 사는 것에 흥미를 못 느꼈거나,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수명이 남들보다 18배나 짧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연두액 속의 주민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겼다. 왜냐하면 지상에서 두 발로 걷는 그들은 항상 연두액 속에 남아있기 위해 노예생활을 해야 하는 신인류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로운 생활을 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