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저기도 아닌 “아무데도 아닌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비상구를 따라가야 한다. 만약에 건물 안에 불이 나서 대피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혹자는 물론 비상구를 따라갈 것이다. 이 행동은 건물 안의 그 어떤 공간에도 존재하지 않기 위한 것으로, 건물의 “Nowhere” (아무데도 아닌 곳), 즉 바깥세상으로 이동하는 데에 목적을 둔다.
만약에 지구를 하나의 건물로 가정하고, 그 건물의 바깥으로 빠져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전에 말했듯이 건물의 바깥은 “Nowhere”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건물의 안쪽 공간은 “아무데도 아닌 곳”이 아닌 곳이기 때문에, Nowhere라는 단어의 상반되는 개념인 “Somewhere”라고 부를 수 있겠다. 정리하지면, 건물의 안쪽은 Somewhere, 그리고 건물의 바깥쪽은 Nowhere이다. 왜 Nowhere라고 부르냐 하면, 건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와도 같고, 세상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 까닭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아무데도 아닌 곳”으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여하튼 건물의 내부에서 외부로 탈출하려면 비상구를 따라가야 하듯이, 지구의 내부에서 외부로 탈출할 때에도 비상구를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 지구를 탈출하게 해주는 비상구가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밝혀지지 않은 비상구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Somewhere에서, 지구 바깥에 위치한 “아무데도 아닌 곳”, 즉 Nowhere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지구의 Somewhere에 살고 있고, 그곳에서 비상구를 따라 탈출하면 도달하는 곳이 바로 지구의 Nowhere이다.
사실 Nowhere라는 공간은 지구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 밖으로 나가면 그냥 우주공간이 있을 뿐이다. 지구만을 위한 비상탈출구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Nowhere의 개념은 추상적인 사고를 좋아하는 몇몇 이들에게 흥미감을 불러 일으켰고, 그들은 이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Nowhere라고 이름붙은 새로운 종류의 가게를 오픈하는 것이다. 이 가게의 앞에는 간판 대신에 ‘비상구’라고 적힌 라이트박스 신호가 부착되어 있다. 세상에서 대피하는 비상구라는 뜻이다. 가게의 외관 벽은 그냥 지극히 평범하고 현대적인 콘크리트 무늬로 이루어져 있고, 손잡이를 당겨서 여는 여닫이식 회색 문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언뜻 보면 마치 사무빌딩의 뒷골목 쓰레기장에 인접한 뒷문같은 인상을 풍긴다. 한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 문 손잡이 위에 지폐 또는 동전을 넣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문으로 하여금 자판기같은 인상을 풍기도록 만든다. 이 문은 일정 금액의 돈을 넣어야만 열리는데, 한번 열리면 “윙” 소리가 몇초동안 지속되면서 그 시간동안 문고리가 열려 있는다. “윙” 소리가 멈추면 문은 다시 잠기고, 그러면 손님은 또 한번 돈을 넣어야 한다.
문을 열어 가게 안으로 입장하면 처음에는 놀랄지도 모른다. 사방이 컴컴한 암흑이니까 말이다. 왜 온통 암흑이냐고 묻는다면, 아까도 말했듯이 이 가게의 이름이 Nowhere라는 것을 상기해 보면 된다. Nowhere란 무엇인가? 그 뜻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냥 “아무데도 아닌 곳” 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Nowhere라고 불리는 이 가게는 이름상 “아무데도 아닌 곳” 이어야만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만이 진짜 Nowhere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현실의 모든 곳과 단절된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그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Nowhere라는 공간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 다른 모든 공간들에게서 완벽하게 분리된 곳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 가게의 벽면은 몇 겹이나 되는 방음벽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완벽한 정숙을 유지한다. 입구 주변에는 잘 휘어지는 유연한 방음벽과 빛을 가로막는 검은 천막이 자리잡고 있어서, 누군가가 가게에 들어와도 가게 내부의 다른 손님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야말로 이 가게는 아무런 빛도,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곳으로 항상 유지된다.
가게의 내부는 하나의 구불구불한 컨베이어 벨트로, 이 벨트는 보통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달리 푹신푹신하고 두꺼운 고무로 이루어져 있다. 손님은 가게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이 말랑말랑한 벨트 위에 떨어져 서서히 운반되는데, 말랑말랑하기 때문에 손님의 발이 바닥에 부딪힐 때 둔탁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아서 좋다. 어쨌든 기다란 고무벨트 위에 누워서 한참을 기다리다 보면 그 상태로 약 15분이 흐르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드디어 손님이 탄 벨트는 가게의 출구까지 도달한다. 출구는 가게의 구석 깊숙히에 위치해 있는데, 그곳은 여러 겹의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왜냐하면 출구 주변에는 흰 조명이 밝혀져 있기 때문이다). 벨트에 탄 손님이 검은 천막을 뚫고 지나가면, 출구 쪽에서 기다리던 직원은 누워있던 손님을 일으켜 세워서 출구로 내보낸다. 이로써 총 15분 가량이 소요된 Nowhere에서의 여행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