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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감각

Author: Youngjin Kang

Date: Autumn 2012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감각을 “느낀다”. 고로 그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규명하는 데에는 감각이 기반이 될 수밖에 없으며, 감각 외의 것들 또한 감각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 추론으로만 탐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이 양의 영역에만 속하고, 나머지 음의 영역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감각으로만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다른 말로 하자면, 지금까지 우리가 느낀 모든 감각의 반대되는 개념인 “반감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평소 알려진 5가지의 감각들로는 시각, 후각, 청각, 미각, 그리고 촉각이 있다. 그러나 만약에 이들과 정확히 상반되는 감각들, 즉 반시각, 반후각, 반청각, 반미각, 그리고 반촉각이 있다면 우리의 세계관이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 볼 수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감각과 반감각은 서로를 상쇄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똑같은 양의 시각정보와 반시각정보가 동시에 인간의 눈에 포착된다면, 이 둘은 서로를 상쇄시켜 버려서 그 사람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라고 착각한다. 시각정보가 반시각정보보다 양이 많다면 그의 눈에는 무언가가 축소된 형태로 보일 것이고, 반시각정보가 시각정보보다 양이 많다면 그의 눈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눈에는 반시각정보를 포착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감각을 인간이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반감각의 존재를 실험상으로 규명할 수는 있다). 반감각이 처음 발견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24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봉건시대의 어느 따스한 봄날, 페루의 한 위대한 발명가는 나른한 오후의 낮잠을 깨우는 주변 소음에 너무나 신물이 난 나머지, 주변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음을 상쇄시키는 ‘방음기’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른다. 이 새로운 발명품의 작동방식은 간단했다. 이것은 이어폰처럼 생겨서 귀에 꽃아놓을 수 있는데, 주위에서 공기의 파동이 감지될 때마다 그 파동을 무력화시키는 또다른 종류의 파동을 발생시킨다. 그러면 때마침 귀를 거슬리게 하려던 소리는 힘을 잃고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다.

소리를 “제거하는” 이 신기술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몇몇 과학자들은 방음기가 주변 소리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파동을 ‘반대파’라고 정의했다. 어떠한 파동이 그것과 완벽하게 반대되는 파동, 즉 ‘반대파’를 만나면 상쇄되어서 소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커니즘은 곧 연구를 거듭해 다른 분야로도 퍼져나가 연구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학자들은 시각정보를 무력화시키는 ‘반상 발생기’를 개발했고, 화학자들은 냄새를 무력화시키는 ‘반향 발생기’와 맛을 무력화시키는 ‘반미 발생기’를 개발했으며, 최근에 신경학자들은 촉감을 무력화시키는 ‘반촉 발생기’를 개발했다.

이 새로운 발명품들은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지만, 그것들의 근본적인 의의는 동일했다. 예컨대 반상 발생기는 멀쩡하고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을 장님으로 만들었고, 반향 발생기는 악취가 코를 찌르는 쓰레기 매립지에서도 아무것도 못 맡게 만들었으며, 반미 발생기는 그 어떤 미식가도 음식의 짠맛을 전혀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무엇보다도 대중에게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것은 반촉 발생기로,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취된 것처럼 아무것도 못 느끼게 만들었다.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은 기존의 감각을 상쇄시키는 ‘반감각’을 인간에게 유발함으로서 가능해진 것으로, 이때부터 사람들은 반감각의 존재에 대한 추상적인 사색에 잠겼다. 철학자들은 “이 세계에는 반감각적인 정보만을 전달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반감각적인 정보에만 반응하는 ‘반생물’들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과는 상반되는 종류의 감각만을 느끼는 우리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게 정말인지는 아직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

반감각 발생기술은 우리의 생활에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우선 사람들은 자신의 입천장에 조그만 사이즈의 반향 발생기를 장착하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하면 아무리 입이 썩어 문드러져도 모든 입냄새가 그 기기에 의해 소멸되었기 때문에 대인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몇몇 이들은 체취를 없애기 위해 자기 몸의 몇몇 부위에 반향 발생기를 추가적으로 부착했고, 이는 페로몬 발생을 차단시킨다는 단점만 빼면 굉장히 큰 효과를 보았다. 반상 발생기는 비록 범죄에 자주 애용되기는 했지만, 대신에 햇빛의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이 가능했기 때문에 피부암과 잡티 예방에 이바지했다. 반음 발생기는 귀에다 꽃고 있으면 소음을 완벽하게 방지했으므로, 이제 건설업자들은 고속도로 주변의 주거구역에 소음 차단벽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이웃집이 시끄러울까봐 집 안에서 소리를 죽일 일도 없어졌고, 도서관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것도 가능해졌다. 반촉 발생기는 마취제 대신에 쓰일 수 있었기 때문에 의학 분야에서 빛을 보았고, 또한 굳이 지금 이 자리에서 설명하기엔 좀 거시기한 것들에도 애용되었다.

이러한 발명품들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악취 때문에 남들을 대면하는 것을 꺼릴 필요가 없었고, 공공장소에서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조심할 필요가 없었으며, 남들이 보지 말았으면 하는 신체부위는 반상 발생기를 이용해서 안 보이게 만들 수 있었다. 이 모든 기능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자신있고 거리낌없이 행동하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