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생물에게도 권리란 게 있어야 한다. 이는 무생물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용하는 인류 모두를 위한 것이다. 만약에 인간이 무생물들을 아무런 권리 없는 천한 존재로 여기고, 그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무생물들을 무분별하게 마구 버리거나 부수면 어떻게 될까? 그로 인해 초래되는 온갖 오염과 부작용은 결국 사람들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될 문제가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서라도 우리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 “법”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금전적인 가치를 지닌 모든 무생물 (예: 가방, 노트북, 촛대, 머그컵, 의자 등…)에게는, 그것의 소유자에게 보호받을 권리와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만약에 소유자가 이를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무생물의 권리를 박탈한 죄로 벌금형에 처해지며, 그가 소유했던 모든 무생물들은 심리적인 치료와 새로운 신원을 발급받은 뒤 슈퍼마켓의 세일코너에 보내진다. 둘째, 모든 무생물에게는 그들의 보험 적용기간 (제품보증기간) 이전까지 소비자 혹은 마켓의 소유로 남아있을 권리가 있으며, 적용기간 이후에는 공인된 정부기관의 쓰레기 수거함으로 은퇴할 권리가 생긴다. 만약에 소유자가 자신의 무생물을 공인된 쓰레기통이 아닌 다른 곳에 소속시키거나 그것을 파괴한다면 그는 살해죄로 2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셋째, 모든 무생물들은 플라스틱 신원팔지의 끈이 끊어지거나 바코드가 손상되는 시점부터, 신원손상을 초래한 인간의 소유가 된다. 만약에 소유자가 정신이상자 혹은 전과자라면, 선택된 무생물은 소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만약에 소유자가 자신 소유의 무생물을 한계치 이상으로 손상시킨다면 (예: 고의적 파손) 그는 100달러 이하의 벌금형과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부여받는다. 또한 그에 의해 손상된 무생물에게는 정부의 특별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앞서 보았듯이, 무생물들의 권리에 대한 법률은 상당히 복잡하지만 그만큼 존재가치가 있다. 산업화가 진행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예전에는, 대량생산되는 소비품들의 가치가 무시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편리한 일회용 제품들이 각광받았으며, 이러한 사회풍조 때문에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이제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에게도 인권이라는 것이 생겼다. 혹자는 생물도 아닌 것들이 어째서 권리를 가지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문화에 큰 문제가 있음은 분명하다. 만약에 자신이 소유한 무생물들을 함부로 파괴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그런 짓을 진짜 생물들에게도 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은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들도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지니고 있어서 생물과 큰 분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무생물과 생물에게서 큰 차이가 안 느껴지는 상황에서, 무생물들에게 매일 행해지는 범죄가 생물에게도 모방범죄로 번지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사물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싼 것이든, 비싼 것이든간에 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 안에 놓여진 모든 것들, 예컨대 의자, 탁자, 식기건조대, 전자레인지, 컵, 숟가락, 책상, 책장, 컴퓨터, 프린터, 시계, 열쇠, 전선, 체중계, 소파, 액자 등의 모든 소유물들에게 정성과 사랑을 주고, 그것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 만약에 모든 이들이 자신의 소유물들을 잘 보살펴 주는 습관을 기른다면,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에는 모든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도덕적인 구성원들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법률만으로 이 모든 것을 실현할 수는 없다. 그렇게 때문에 최근 발명된 것이 바로 카르마 측정 시스템이다. 요새 새롭게 생산되기 시작한 모든 소비품들에게는 주변 환경에 대한 수많은 변수를 기록하는 칩이 탑재되어 있다. 원래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범죄에 대한 증거확보를 위한 일종의 블랙박스였는데, 최근에는 소비자의 윤리적 능력향상을 위한 행복측정기로도 활용되고 있다. 예컨대 이 칩이 설치된 무생물은 소유자의 따스한 손길과 부드러운 목소리, 그리고 소유자가 자신을 다루는 방식을 감지하고, 이 모든 변수들을 자신의 행복감 측정에 사용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중앙 전산망에다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한 정보를 보낸다. 예컨대, 어느 한 커피잔의 만족지수가 그것을 사용하는 소유자의 도덕적 평판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집 안의 모든 사물들이 마치 생물들처럼 살아 숨쉬는 존재가 되었다. 그것들은 이제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주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그의 관심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식구들로 거듭났다. 만약에 그들에게 자기복제능력을 부여한다면 그들은 번식을 할 것이고, 그때쯤이면 정말로 생물과 동급으로 취급되기에 손색이 없어질 것이다. 훗날 드넓은 초원에서 머그컵들이 풀을 뜯고 젖을 만들며 뛰노는 날이 오기를 기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