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라디오에 다른 채널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도 다른 채널들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다르게 말하자면, 물질에도 주파수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채널의 세계들이 똑같은 공간상에서 겹쳐진 상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즉 아메리카와 유럽과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가 있고, 이 모든 대륙에 급속도로 발전한 산업기반의 문명을 건설한 인류가 살고 있는 세상은 채널 3이다. 물론 우리가 채널 3의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지만, 예전부터 몇몇 부류의 인간들은 직감적으로 숫자 ‘3’에 친밀감을 표함으로서 사실을 직감적으로 감지했다 (삼위일체론, 피라미드의 한쪽 면, 다비드의 별을 이루는 삼각형들 등의 상징들을 보라!). 여하튼 우리는 지금 채널 3에 살고 있으며, 몇몇 사람들은 이 이외에 다른 채널의 세계를 탐사한 적이 가끔씩 있었지만 항상 그들의 괴상한 경험담은 미신 또는 미친소리로 치부되었다. UFO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은 채널이 일시적으로 불안정해지면서 다른 채널에 있는 존재들이 실수로 잠시 출현하는 “기술적 오류”일 뿐이다. 라디오의 채널을 돌릴 때 중간에 “치지직” 소리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채널 3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곧 우리가 채널 2의 세계와 채널 4의 세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유포한다. 실제로 이 채널들은 현존하는 인간세상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끼쳤던지, 각각 판타지와 공상과학이라는 독립적인 소설책의 장르로 이야기화 될 정도이다. 혹자는, 소설이란 글쓴이의 순전한 상상에 근거한 허구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소설을 쓰는 작가는 다른 채널의 세상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에 대한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상상을 해 문학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증거를 대 보라면, 좋다. 지금 당장 채널 2와 채널 4가 구체적으로 어떤 세계들인지 살펴보자.
채널 2의 지구는 중세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건축물들과 침엽수림이 어우러진 곳으로, 그곳에는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을 비롯해 호빗, 엘프, 드워프, 오크 등의 수많은 고등 유인원들이 공생하고 있다. 이는 마치 먼 옛날의 채널 3 세계를 연상케 한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인간류의 종들이 서로를 죽이고 약탈하는 과정은 채널 3에서도 오랜 세월동안 있었던 일인 것이다. 다만 현재 채널 3의 인류는 단 하나의 종으로만 존재하고 있고, 따라서 이들은 생태계의 왕좌를 독단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반면에 채널 2의 인류는 아직도 선사시대처럼 몇몇 다른 부류의 인간류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며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채널 4의 지구에는 단 한 종류의 인류만이 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에는 약 10여 종이 넘는 수많은 외계인들이 같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은하연합의 소속이다. 채널 4의 세계는 범우주적인 규율과 사회체제에 속해 있는데, 이 때문에 이곳의 인류는 벌써부터 반중력, 반관성, 초공간, 시간여행, 양자컴퓨터, 그리고 오색찬란한 빛깔을 보이며 뿅뿅 소리를 내는 레이저 총 등등, 수많은 우주적 첨단기술들을 사용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곳 세계의 인류는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 양복을 비롯한 거무칙칙한 패션을 선호하는데, 이는 이들이 어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채널 3에 사는 우리는 이들 세계들을 문학의 형태로 잘 묘사하고 있다. 채널 2는 판타지라는 장르로, 그리고 채널 4는 공상과학이라는 장르로 기막히게 구현된 것이다. 이유는 이들 채널들이 우리 세계에 근접해 있다는 데에 있다. 예컨대 채널 7의 인류는 채널 6과 채널 8의 세계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고, 채널 15의 인류는 채널 14와 채널 16의 세계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서로 가까운 채널들일수록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근접한 채널들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속한 환경이 비슷하란 법은 없다. 사실 채널 2,3,4가 속한 우주들은 전혀 다른 물리법칙들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서, 채널 2의 세계를 이루는 원자들은 전자 대신에 마나(Mana)라는 입자들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 세계에는 전기가 없는 대신에 “마법”이라는 물리적 힘이 존재한다. 채널 4의 세계는 또 다르다. 이곳 세계에는 존재하는 모든 힘들이 그것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상반되는 힘들과 함께 쌍으로 공존하는데, 이 덕분에 채널 4의 인류에게는 자연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물리적 행동이 가능하다.
채널과 채널 사이의 교류는 대부분 무의식적인 것이다. 이론적으로, 현존하는 모든 생물들의 두뇌회로는 외부 채널들을 미미하게 감지할 줄 안다. 물론 가끔씩은 물질이 채널과 채널 사이를 직접적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194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로즈웰 사건은 사실 채널 4 지구의 상공에서 날고 있던 자가용 외계인 차량이 일종의 벼락 비슷한 것을 맞아 채널 3로 이동되어 버림으로써 발생한 것이다. 고백하자면, 이런 식의 채널이동 사고는 확률적으로 몇천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다. 채널 3의 인류가 마지막으로 채널 2의 인류와 직접적인 교류를 한 것은 중세 초기로, 그 당시의 중세인들은 채널 2에서 온 미지의 생물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이 받은 충격은 훗날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신화와 전설이 되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판타지라는 세계관이 탄생했다.
채널 3와 채널 4 사이의 직접적 교류는 희한하게도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거의 몇십년에 한번씩 빈번히 일어났는데, 그 이유는 당시 채널 4의 인류가 한 외계인 무리와 대규모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계인들은 막강한 플라즈마 무기로 채널 4의 지구를 공격했고, 그 여파로 그곳에 있던 첨단장비들이 우리가 사는 지구로 이동하여 버리곤 한 것이다. 최근 몇백년동안 채널 3의 인류가 급진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