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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심장

Author: Youngjin Kang

Date: Autumn 2012

만약에 이 세상의 어디로든 통하는 범국가적인 항구가 있다면 어떨까? 예를 들자면 세계지도에서 볼 수 있는 육지의 거의 대부분 지역을 단숨에 오고 갈 수 있는 최첨단 시설 말이다. 만약 그런 시설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구의 중심부, 즉 핵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곳은 비밀리에 운영되는 기관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은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들과 연결되어 있고, 만약에 일반인들이 어딘가를 이동함에 있어서 이런 식의 편법을 쓴다면 정부 측에서는 개개인의 위치를 추적, 혹은 예측하기가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어디로든 손쉽게 이동하는 기관이 있다는 사실이 들통난다면 항공사들과 선박회사들은 큰 문제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지구의 중심부에 위치한 그 비밀기관의 이름은 코어포트(Core Port) 이다. 핵심적인 항구라는 뜻이다. 이 항구는 거대한 하나의 구체 형태를 띄고 있는데, 건설 당시의 중력장 조작 덕분에 항상 안에서 바깥쪽으로 중력이 가해지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누구든지 이 거대한 구체의 내부를 바닥 삼아서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구체 내부에 벽들이 없었다면, 위를 올려다 보았을 때 구체의 반대쪽 바닥에 서 있는 사람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구공동설을 상상하면 된다. 지구의 내부가 텅 비어있어서 그 속에 외계인들이 발을 붙이고 산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 말이다. 어쨌든 이것이 대략적인 코어포트의 형태이다. 구체의 중심, 즉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컴퓨터를 비롯한 온갖 첨단장비들이 위치해 있다. 그 주변에는 코어포트를 관리하는 직원들의 사무실과 경비실들이 차지하고 있고, 더 변두리쪽으로 가면 레스토랑이나 스파 등을 비롯한 편의시설들이 있으며, 그 바깥에는 미로처럼 복잡한 형태의 복도 중간중간에 게이트들이 위치해 있다. 게이트는 입/출국심사와 소지품 검사 등의 감시가 행해지는 아주 중요한 곳으로, 방문객들은 이곳을 통과하면 해당 게이트에 속한 엘리베이터로 이동한다. 엘리베이터의 통로는 코어포트에서부터 지구의 지표면까지 수직으로 곧장 이어져 있는데, 그 통로를 지나가는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거의 시속 몇만 킬로미터에 달한다. 따라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승객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지표면과 코어포트 사이를 오고 갈 수 있으며, 이 덕분에 지구 어딘가의 다른 곳으로 빨리 이동해야 하는 정부요원들에게는 코어포트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지구의 다른 어딘가로 신속하게 이동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지상의 곳곳에 숨겨진 엘리베이터 입구를 찾아야 한다. 입구는 보통 건물의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코어포트의 존재는 완벽한 비밀에 붙여져 있어야 하므로 거기까지 도달하려면 몇몇 보안시설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입구가 위치한 방은 비밀번호나 신분인식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으며, 방 안에서도 입구를 보려면 또다른 절차를 거쳐서 칸막이를 통과해야 한다. 거기까지 성공하면 드디어 입구까지 도달하게 되는데, 사실 입구는 보통 이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달리 그냥 평범한 엘리베이터 문처럼 생겼다. 별다른 특징 없는 그냥 밋밋한 금속 자동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그 문이 열렸을 때 나타나는 엘리베이터의 모습은 굉장히 색다르다. 지구의 중심부를 오고 가는 엘리베이터답게 두껍고 단단하며, 흰색과 푸른색이 어우러진 알약 형태를 띄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30분에 한번씩 지표면에 도달하는데, 그때마다 지표면에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놓은 채 3분을 기다린다. 그런 다음에는 문을 닫고 쏜살같이 코어포트로 향한다. 물론 코어포트의 엘리베이터 입구도 구조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비밀을 은폐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으므로 입구 또한 엘리베이터처럼 세련된 형태를 띄고 있다.

우선 오후 4시 정각에 바레인의 한 지방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아무리 늦어도 4시 15분 전까지는 지구의 정 중앙인 코어포트까지 도달하게 되어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면 그 속의 모든 탑승객들은 내려서 출구쪽으로 걸어나간다. 그들의 발걸음은 기나긴 복도로 이어지는데, 복도의 중간중간에는 지구 곳곳의 위치가 적혀진 표지판들이 통로들과 함께 줄지어 있다. 각각의 표지판들은 지구의 위도와 경도에 따라 도서관처럼 순서대로 진열되어 있다.

만약에 시애틀로 가기를 희망한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미국 시애틀” 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찾으면 된다. 표지판이 가리키고 있는 통로를 지나면 신분확인과 소지품 검사 등을 비롯한 잠깐동안의 검사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끝나면 엘리베이터의 입구까지 갈 수 있게 된다. 매시 정각과 30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지상과 달리, 코어포트에서는 엘리베이터가 매시 15분과 45분에 도착한다. 오후 4시 45분이 되면 지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그걸 타면 15분 안, 즉 5시 전까지 시애틀의 한 건물 안의 어딘가로 이동한다. 즉 1시간만에 바레인에서 시애틀로 이동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