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양한 문자가 있지만, 그 문자들의 상당수는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발명한 사람들의 언어가 내는 소리만을 담고 있다. 상형문자들도 워낙에 추상적인 형태로 간추려진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문자언어에 담긴 뜻을 알아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다. 여기엔 한가지 모순이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니라 문자의 기원이 그림이었다는 사실이고, 그림이란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상징적 표시라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점 두 개와 곡선 하나가 그려진 원이 ‘미소’로 통용되고, 양쪽의 끝이 맞닿으면서 서로 비슷한 방향으로 휘어진 두 개의 곡선들은 ‘초승달’로 통용된다. 이처럼 그림은 태초부터 모두가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발명된 “만인의 언어”인 것이다. 따라서 그림을 기반으로 탄생한 상형문자가 일부 지역에서만 이해된다는 점은, 그림언어 특유의 호환성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상형문자가 그림문자의 축약판이라는 사실에 있다. 처음에는 문자의 존재를 모르던 상대방을 이해시키기 위해 최대한 사실적인 그림으로 표현했겠지만, 나중에는 모두들 쉽게 문자를 판독하게 되니까 그림체가 점차 추상적인 기호들로 뒤바뀐 것이다. 문자의 기호화는 편의성을 고려했을때 불가피하다.
전세계의 어느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들은 몇가지 존재한다. 그 중 2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음악과 그림이다. 음악은 감성적인 면에서, 그리고 그림은 시각적인 면에서 문화적 차이를 불문하고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언어”라고 부르는 것은 논리적인 명제와 육하원칙이 담긴 사건의 진술, 그리고 각종 명령이나 설명, 묘사 등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적 요소들을 전부 다 담을 수 있는 매체는 딱 두가지, 음성과 문자밖에 없다. 애석한 점은 바로 이 두가지 매체는 종류가 매우 많으며, 각각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모든 인류가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문자언어가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질까? 예를 들어서, 딱히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한눈에 딱 보고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일련의 기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기호들은 거의 수백년에 걸쳐 전세계에서 행해진 수많은 실험들을 통해 발견되었으며, 이것들은 이제 새로운 세계 공용어로 각광받고 있다. 이들은 정말 모두에게 이해되는 신기한 문양들이기 때문에 “무의식적 원형의 문자”라고도 불리운다. 인간의 뇌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능적인 언어능력에 이 기호들이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인데, 그들 말에 의하면 이것들은 컴퓨터로 치면 기계어와도 같다고 한다. 해석이 필요없는 “인간언어의 본질” 그 자체라는 것이다.
처음 이 신기한 기호들이 발견되었을 당시, 과학자들은 그것들을 ‘원형기호’라고 이름붙였다.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이 전세계의 모든 인류의 공통적 상징물을 ‘원형’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원형기호들은 그 종류가 20가지에 육박하는데, 그 중에서 몇가지를 예로 들자면 각각 “밝음, 어두움, 포용, 배출, 상승, 하강”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각각의 의미는 기존에 인류가 사용하던 지역언어의 여러가지 다양한 의미들과 호환되는데, 예를 들자면 “상승”을 뜻하는 원형기호는 그래프의 곡선이 상승한다거나, 다른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선다던가 (지배한다던가), 새로운 것을 습득한다던가 (지식의 층이 상승한다던가), 아니면 정말로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간다던가 하는 식의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원형기호들로 쓰여진 문장은 구체적으로 해석하면 그 의미가 모호할 수 있으나, 그 문장을 읽는 모든 이들을 무의식적으로 완벽히 이해시키기 때문에 기존의 언어보다 훨씬 의미전달이 명료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원형기호들은 해석이 필요없는 인간 본연의 “무의식적 언어”이다. 보통 우리가 배워서 습득하는 (예컨대 영어나 중국어같은) 언어들은 해석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뇌는 언어를 읽거나 듣는다. 그런 다음에 뇌의 어딘가에 있는 언어영역에서는 수집한 언어적 정보들을 “무의식적 언어”로 번역함으로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본능적 언어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무의식적 언어”를 사용한다면 더이상 이런 식의 번거로운 번역작업은 필요없게 된다. 모두가 원형문자만을 사용한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에서는 잘못된 이해나 오해가 자취를 감출 것이다. 왜냐하면 원형문자는 무의식적 언어이고, 무의식적 언어는 의식의 개입 없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뇌 속에 파고들어 영혼을 이해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굳이 배우지 않아도 이미 언어 하나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제 그 인류공통의 언어는 학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체계화되어 약 20개에 달하는 원형문자들로 탈바꿈해, 실생활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로 거듭나게 되었다. 물론 아직 세계 공용어로 완벽히 거듭나기에는 부족함이 있긴 하다. 고유명사를 표현할 원형문자들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자들과 언어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원형문자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으며, 조만간 인간이 원형문자만으로도 필요한 모든 대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