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놀라운 발견 하나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지구 어디에선가부터 정체불명의 돌연변이 연꽃들이 출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연꽃들은 처음에 중국 남서부의 어느 한 작은 연못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이후로 세계 곳곳의 호수 위에, 네스 호의 괴물도 동네 개 수준으로 둔갑시킬 정도로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돌연변이 연꽃들의 특징은 바로 그들의 덩치였다. 조그만 크기의 오리지날 연꽃들과는 달리 그들은 90년대의 흔한 데스크탑 모니터보다도 컸다. 정말로 신기한 점은, 이 연꽃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유롭게 하늘로 승천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는 아직 자세하게 규명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육안으로 과정을 살펴보자면, 우선 문제의 연꽃은 기존의 연꽃들과 마찬가지로 연못 속에 뿌리를 내린 줄기에 매달려 있다. 그러다가 꽃을 피우면 줄기에서 떨어져 나와 연못의 수면 위를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고, 수정을 하여 몸 속에 씨앗이 생기면 어느날 갑자기 공중으로 붕 떠오른다. 관찰에 의하면 완성된 씨앗이 바로 연꽃의 느닷없는 비행을 유발한다고 볼 수 있다. 씨앗이 미숙하거나 결함이 있다면 연꽃은 절대로 수면 위로 1 밀리미터도 안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덩치 큰 돌연변이 연꽃들 중 하나가 하늘로 떠오른다면, 그것은 바로 그 연꽃이 새싹을 틔울 씨앗을 품고 있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씨앗을 다른 지역으로 곱게 운반함으로써, 다른 개체나 자연적 요소에 의한 씨앗의 훼손을 막으려는 것이 이 새로운 종의 목표이리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씨앗이 연꽃으로 하여금 하늘을 날게 만드냐는 것이다. 날개도 없고, 제트엔진도 없는데!
혹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이 새로운 연꽃의 씨앗은 자석 비슷한 성질을 지녀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물질의 자기장을 조작해 중력의 영향을 무력화시킨다고 한다. 방식이야 어찌됐던, 이런 신기한 씨앗을 하나씩 탑재한 연꽃들은 점차 세계 곳곳의 하늘에 줄줄이 출몰했고, 사람들은 연꽃들이 비행을 하는 진귀한 광경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기 시작했다. 몇몇 종교인들은 이 충격적인 자연의 장난 덕분에 주변 인물들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고, 특히 종교적 미술에서 연꽃을 자주 묘사했던 불교인들은 그들이 현재 벌어지는 이 괴현상을 예전부터 줄곧 예언해 왔다는 루머에 휩싸여 뜻밖의 유명세를 누렸다. 공중부양을 하는 연꽃사건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나머지, 지극히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도 비과학을 조금은 신봉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인간사회에는 제 2의 포스트모더니즘 세대가 찾아온 것이다. 공산권의 몰락과, 인터넷의 등장과, 유럽의 연합이 대두되었던 90년대 초에도 이 정도의 사회적 격변은 없었다.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 하늘을 나는 연꽃들이 발견되었을 당시 몇몇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들은 연꽃들이 어떻게 허공을 누비는지를 알아내기만 하면 인간들도 손쉽게 공중부양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연꽃들이 출몰한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세계 곳곳의 연구원들은 문제의 연꽃을 샘플로 채집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며칠도 안 되서 그것들의 씨앗이 어떻게 연꽃을 비행접시처럼 떠오르게 하는지를 이해했다. 그들이 이해한 내용을 나는 이해 못 했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여기서는 설명을 못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냐에 상관없이, 그들의 연구결과는 삽시간에 반중력장치의 개발과 특허로 이어졌다 (물론 과학자들 이외에도 수많은 아마추어 연꽃 연구가들이 새로운 기술들을 선보였다. 티베트의 한 승려는 연꽃 위에 올라서서 두 손을 모은 채 하늘을 누비는 새로운 공중 스포츠를 발명했다).
반중력장치의 사용법은 간단했다. 그것은 조그만 자석같이 생긴 것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은 물건에다가 부착한 뒤 전원을 키면 된다. 그러면 장치가 부착된 물건은 더이상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떠 있게 된다. 예컨대 바닥에 있으면 그냥 그대로 바닥에 있고, 공중에 떠 있으면 그냥 그대로 공중에 계속 떠 있는 것이다. 반중력장치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넓은 반경의 물체들이 무중력화 되었다. 물론 부작용도 없지는 않았다. 반중력장치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마치 번지점프를 하는 듯한 극심한 현기증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났을 때의 자연스러운 결과였으므로, 대부분은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대기업들은 앞다투어서 개인용 반중력장치의 생산을 위한 공장들을 세웠고, 곧 대중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반중력 장치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반중력장치의 종류는 수없이 많았다. 공영 (공중에서 하는 수영, 또는 공중무용) 을 위한 반중력 조끼, 반중력장치로 이루어진 자가용 비행기, 반중력장치로 이루어진 위그선, 아무 데나 스티커처럼 붙이는 일회용 반중력 스티커 등등, 온갖 발명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반중력장치의 발견은 길거리 풍경의 감쪽같은 변신으로 이어졌다. 이제 도시의 모습은 예전에 우리가 보던 것처럼 고층빌딩 몇 개와 차도로 이루어진 한가한 모습이 아니었다. 반중력의 비밀이 밝혀진 이후로는 모든 공간이 3D화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늘을 나는 행위가 길거리를 걷는 행위로 둔갑하고 말았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도 위를 걷는 대신에 수직, 수평으로 이루어진 행인용 투명파이프 안에서 반중력 조끼만을 입은 채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수평이동을 위해서는 따로 동력이 필요했으므로, 그때는 등짝에 부착된 조그만 제트엔진을 이용했다). 차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지상에서 바퀴를 굴리며 움직이는 차들은 스포츠에나 등장하는 몬스터트럭같은 존재로 치부되었다. 대신에 도심에서는 하늘을 나는 반중력 자동차들이 수직,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입체 파이프 차도 속에서 줄을 지어 날아다녔다.
초고층건물을 건설하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었다. 문방구에서 파는 반중력장치들을 건축자재에 하나씩 붙이기만 하면, 벌레먹은 싸구려 나무막대들로도 1000층에 육박하는 높이의 탑을 쌓는 것이 가능해졌다. 중력의 제약에서 벗어난 건축은 정말이지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며 도심 속을 빽빽이 채웠으며, 이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 때문에 지상 사람들은 낮동안에도 가로등을 켜야 할 지경이었다. 어떤 건물들은 부위별로 분리되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다시 재조립하는 기능도 있었는데, 예를 들자면 회사 건물의 개인용 사무실은 이따금씩 건물에서 떨어져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의 다른 곳을 저공비행으로 누비기도 했다 (건물의 일부를 주차시키기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되었다). 중력의 손아귀를 벗어났으니 이 정도의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공상과학 영화의 미래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을 이런 광경들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는 20세기 초에 포드의 초창기 자동차 모델들이 길거리를 매운 사건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인 변화였기 때문에 수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주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은 곧 이 새로운 광경에 쉽게 적응했고, 딱 1년이 지나자 중력을 벗어난 삶은 그저 고리타분한 일상이 되고 말았다 (혹자는 반중력장치의 발명이 인구의 광적인 증가만 도왔다고 불평했으며, 전보다 신경써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만 늘어났다며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