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우리 사회의 기술들이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전수된 것들이라면 어떨까? 예컨대 불이나, 증기기관이나, 전기나, 컴퓨터같이 역사를 송두리째 바꾼 주요기술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 중 한 명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것은 잘 믿겨지지가 않는다. 마치 신이나 외계인처럼 바깥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는 어떤 존재가, 적당히 시기를 맞춰서 인류에게 핵심적인 기술을 전달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새로운 종류의 역사를 자라나도록 하기 위해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 현존하는 지구의 기술들이 “진짜” 씨앗의 형태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아닐까? 예컨대 1~2만년 전 쯤에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우주를 배회하는 누군가가 불을 만들기 위한 부싯돌, 그리고 그림으로 이루어진 불 사용설명서가 담긴 캡슐을 지구 한복판에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류가 퍼져나간 경로로 봐서, 그 씨앗이 투척된 위치는 북아프리카 혹은 메소포타미아일 것이다. 당시에 인간은 불을 발견할 만한 지식이 없었고, 그들의 재료공학과 기계공학은 죄다 “돌멩이 쪼개기”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물론 나뭇가지도 도구로 활용했을 테지만, 만약에 그랬다면 원시인들 중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는 환경보호론자들의 기습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무를 첨단기술에 이용할 기회를 못 가졌으니 자연스레 원시인들의 기술적 발전은 부진할 수밖에 없었고, 그들은 부싯돌을 마찰시키다가 우연히 불꽃을 일으키는 수준으로만 불의 존재를 육감적으로 느끼곤 했다. 물론 가끔씩 번개에 맞은 나무가 불에 타는 광경도 보았겠지만, 그것을 그들 손으로 재현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을까?
그랬던 초창기 인류는 어느날 갑자기 노련한 불 조련사가 되어서 나무에 불을 붙였고, 그때부터 삶에는 구운 고기와, 뜨거운 물과, 금속과, 빛의 보호막과, 그 외에도 현대 기술의 시초가 되는 온갖 것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바로 불의 발견 이후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불을 발견한다는 것은 수만년의 역사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꿀 정도로 큰 혁명이었고, 누군가가 순전히, 그리고 우연히 어느날 불을 처음 발견했다는 사실은 (가능성은 있어도) 그닥 믿기지 않는다. 만약에 지구 밖의 또다른 존재가 이 모든 기술의 발전을 애초부터 감독하고 있었다면, 불의 발견 또한 그의 감독 하에 실행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어느날 그는 하늘 위에 둥둥 떠서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충분히 두 손으로 도구를 조작할 수 있을 정도로 발달했구나. 지금쯤 불을 전수해 줘야 겠다”. 그리고 나서 그는 조그만 캡슐을 마련하고는, 그 안에 부싯돌, 성냥, 라이터 등과 같이 불을 쉽게 일으키게 해주는 도구들을 넣은 채로 지구의 어딘가에다 던진 것이다. 캡슐이 떨어지자 주변에 있던 인간 무리는 그 신기한 광경을 몰려와서 보았고, 떨어진 캡슐 속에서 나온 진귀한 발명품들로 불의 창조와 사용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류의 기술발전을 감독하는 그 작은 신은, 자신이 뿌린 그 작은 씨앗이 인류의 생활방식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에 자뭇 흡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는 절대 서두르는 타입이 아니었다. 새로운 기술을 전수해 주기 전에는, 인간이 이전에 발견한 기술에 충분히 적응할 과도기를 허락해 주어야 한다. 예컨대 불의 발견 이후에도 인간은 불 기반의 기술사회에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몇백세기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 그는 산업화를 시험하기 위해 어느날 영국의 한 마을에 두번째 씨앗을 뿌렸다. 그 씨앗도 이전의 것처럼 하나의 작은 캡슐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안에 불 대신 간단한 기계장치들과 증기기관, 그리고 이 모든 장비들의 활용법이 적힌 사용설명서가 들어있었다. 그의 두번째 씨앗은 이번에도 대기권을 뚫고 한 한적한 공터에 착지했고, 그 뜨겁게 달궈진 “신의 계시”를 처음 발견한 자는 깨달음을 얻어 훗날 발명가로 추앙받았다.
인류가 손쉽게 산업화된 사회에 적응하자, 그동안 기술을 가뭄에 콩 나듯 전수해 주던 신은 조바심이 났다. 그는 스스로에게 “오로지 몇만년에 한 번 꼴로만 씨앗을 뿌리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300년도 채 안 되어서 세번째 씨앗을 뿌려버리고 말았다. 그 씨앗은 이전의 것들처럼 하나의 작은 캡슐이었는데, 그 속에는 우주진출을 위한 최첨단 로켓 모형들과 몇몇 첨단 항공장비들이 5개국어 메뉴얼과 함께 비닐백에 잘 포장되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씨앗은 독일에 떨어졌고, 그 여파로 급속도로 무장을 한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신은 자신의 성급한 씨앗 투척에 의해 일어난 불을 끄기 위해서 성급히 네번째 씨앗을 북아메리카에 뿌렸다. 그 씨앗도 조그만 캡슐이었는데, 그 속에는 컴퓨터의 설계도와, 몇몇 성능 좋은 통신기기와, 그것들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 (미국식 철자법으로 쓰여진) 영문 설명서가 들어있었다. 네번째 씨앗 덕분에 다행히도 전쟁은 종결되었고, 신은 다시금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절대로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자들에게 성급히 씨앗을 던지지 않겠노라고.
그리하여 역사를 뒤흔들만한 획기적인 기술은 21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나타날 소식을 보이지 않는다. 20세기에 인간에게 일어났던 수많은 기술적 혁명들은 갑작스러운 진화의 신호탄이 아니라, 순전히 신의 실수였을 뿐이다. 앞으로 다섯번째 기술의 씨앗이 우리에게 뿌려지려면 적어도 만년 정도는 기다려야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기술들에 우리 자신이 완벽히 적응하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약 만년 정도가 지났다고 가정해 보자. 신은 이미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의 수많은 기술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이미 그 중 인간에게 유용할지도 모를 기술들은 캡슐화한 상태로 보관하고 있다. 그 중에 무슨 캡슐을 지구로 투척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다섯번째 씨앗을 열어보면, 그 안에는 무슨 내용물이 들어있을까?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도록 만들어 줄 반중력 장치일까, 아니면 공간의 왜곡을 가능케 해줄 워프엔진일까? 어느날 무슨 씨앗이 지구를 강타할지는 때가 되어봐야 아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