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라는 것들은 과거, 현재, 또는 미래라는 세가지의 카테고리들로 나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의 배치구도를 말한다. 가령 어떠한 세계에 A라는 하나의 사물만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A사물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위치들의 집합을 "그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어떠한 세계에 A와 B라는 두 개의 사물들만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건들의 종류는 훨씬 더 다양해진다. 아까는 A사물의 위치만을 기준으로 사건의 종류를 말했지만, 지금은 사물이 2개이기 때문에, A사물의 위치와 B사물의 위치를 둘 다 기준으로 하여 사건의 종류를 분류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A사물이 취할 수 있는 위치들의 집합이 {a,b}이고, B사물이 취할 수 있는 위치들의 집합이 {c,d}라고 가정해 보자.
자, 일단 문제를 단순화시켜 보자. 어떠한 사물 하나가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상황을,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사건"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제 아무리 다양한 사물들이 연류된 복잡한 사건이 있다 하더라도, 그 사건을 각각의 사물별로 쪼갬으로써 "가장 단순한 사건들"의 집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길을 가다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까마귀를 보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까마귀는 자기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공원 벤치에 내려앉았으며,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기 앞에 까마귀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은행나무 옆에 섰다.
지금 설명한 일을 하나의 사건이라고 가정해 보자. "까마귀"라는 사물은 "공원벤치"라는 위치에 도달했고, "사람"이라는 사물은 "은행나무"라는 위치에 도달했다. 여기서 혹자는, 본 사건을 두 개의 하위사건들로 쪼개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예컨대 "까마귀가 공원벤치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사람이 은행나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또다른 사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이 두 사건들을 합치게 되면, "까마귀는 공원벤치에 위치하며 사람은 은행나무에 위치한다"라는 묘사가 가능한 공통의 사건이 탄생한다. 문제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좀 더 기호화시켜 보자.
일단 아까 말했던 사건 속에 연루된 모든 사물들과 위치들에게 기호를 부여해 보도록 한다:
A = 까마귀
B = 사람
c = 공원벤치
d = 은행나무.
그러면 각각의 사건들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Ac} = "까마귀가 공원벤치에 위치해 있다"
{Bd} = "사람이 은행나무에 위치해 있다"
{Ac,Bd} = "까마귀는 공원벤치에 위치해 있고, 사람은 은행나무에 위치해 있다"
{Ac}와 {Bd}는 각각 하나의 사물만을 포함하는 사건들이지만, 이 두 사건들을 모두 원소로 가지는 집합인 {Ac, Bd}는 앞서 말한 두 사물들을 포괄하는 상위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누군가가 정의하는 세계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각각의 사건은 더 많은 원소들로 묘사되어야 한다. 예컨대 A,B,C,D,E,F 라는 6개의 사물들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은 {Aa,Bg,Ct,De,Ec,Fd} 이렇게 6개의 원소를 가지는 집합으로 나타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N개의 사물들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은 N개의 원소를 가지는 집합으로 표현된다.
이제 알아보아야 할 문제는 바로 "표현 가능한 사건의 종류"이다. 첫번째 단락에서 제시한 예를 살펴보자. 어떠한 세계가 하나 있고, 그 세계 안에는 {a,b}에 위치할 수 있는 A사물과, {c,d}에 위치할 수 있는 B사물이 있다. 즉, 이 세계에는 각각 2가지의 위치값들 중 하나를 지닐 수 있는 2개의 사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또는 각각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을 종류별로 모아보면 다음과 같은 간단한 목록이 만들어진다:
{Aa,Bc}
{Aa,Bd}
{Ab,Bc}
{Ab,Bd}
위와 같이 조합해 봄으로써, 우리는 방금 말했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의 종류가 총 4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세계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물들과 위치들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그러한 세계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도저히 일일히 나열할 수 없을 만큼 그 종류가 다양하다. 다만 하나의 세계 속에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몇가지 사물들만을 추려내고, 그것들만을 포함하는 임의의 하위세계를 만든 다음, 그 축소화된 세계를 기준으로 문제를 단순화시킬 수는 있다. 예컨대 까마귀와 사람이 연루되었던 아까의 사건을 생각해 보자. 만약에 "두더지"라는 사물이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고 친다 하더라도, 그것이 딱히 쓸모있는 발상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두더지의 존재가 까마귀 그리고 사람의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까마귀,사람,두더지" 이렇게 3개의 사물들을 포함하는 세계 하나를 제시한다면, 혹자는 그 세계 속에서 "까마귀,사람" 이라는 두 개의 사물들만을 포함하는 하위세계를 하나 지정해 놓은 채로, 아까 묘사했던 문제를 생각하면 된다. 물론 두더지 또한 나름의 이동경로와 그곳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사건들을 지니겠지만, 기본적으로 두더지는 까마귀와 사람의 이동경로를 바꾸지는 않는다. 따라서 두더지가 아예 없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까마귀와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형태는 거의 왜곡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