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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Author: Youngjin Kang

Date: Autumn 2013

지평이란 무엇인가? 지평은 사물이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길을 의미한다. 다만 우리가 부르는 "길"이라는 것과 지평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건 바로, 길과는 다르게 지평은 교차로에서의 사물의 방향전환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도록 한다.

만약에 2개의 길들이 X자로 겹쳐져 있었다면, 우리는 한쪽 길을 따라가던 사물이 이 두 길들의 교차점에서 방향을 틀어 또다른 길로 진입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길들을 교차하는 부분에서 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평은 다르다. 지평은 언뜻 보면 길처럼 직선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설사 2개의 지평들이 X자로 겹쳐져서 교차점을 형성한다 하더라도 이들은 서로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물을 내어줄 수 없다. 예컨대 A라는 지평과 B라는 지평이 서로 X자로 겹쳐져 있는 상황이라고 치자. A지평에 있던 사물은 교차점에서도 오로지 A지평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으며, B지평에 있던 사물은 교차점에서도 오로지 B지평에만 머물러 있을 수 있다.

이는 즉, A지평에 있던 사물과 B지평에 있던 사물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순간은 단 하나, 바로 이 두 사물들이 A지평과 B지평의 교차점에서 동시에 만났을 때 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평은 쉽게 말하면, 사물이 속한 개별적인 1차원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평과 지평 사이의 교차점은 두 개의 1차원 공간들이 겹쳐진 곳과도 같으니, 이곳은 마치 2차원과도 같으나 실제로는 4개의 방향들만이 존재하는 "가짜 2차원" 공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공간은 하나의 점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크기가 무한히 작다.

물론 서로 다른 지평에 속해 있는 두 사물들은 서로를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B지평에 속한 사물이 A지평과 B지평 사이의 교차점에 도달한 순간에는, A지평에 속한 사물이 B지평에 속한 사물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후자는 전자를 보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A지평에 속한 사물이 A지평과 B지평 사이의 교차점에 도달한 순간에는, B지평에 속한 사물이 A지평에 속한 사물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서도 물론, 후자는 전자를 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