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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경로와 접촉 - 2

Author: Youngjin Kang

Date: Autumn 2013

그리고 예전에 언급했듯이, N차원 공간 안의 경로들 사이에는 "인과관계"라는 것이 있다. 예컨대 P라는 경로의 꼭지점이 있어야만 거기에 이어진 M이라는 경로의 꼭지점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기서 P경로는 M경로의 "원인"이고, M경로는 P경로의 "결과"이다. 만약에 C경로의 꼭지점이 있어야만 거기에 이어진 P경로의 꼭지점도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기서 C경로는 P경로의 "1차적 원인"(직접적 원인)임과 동시에 M경로의 "2차적 원인"(간접적 원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인과관계에서의 원인과 결과는 시간 상에서의 앞과 뒤를 말하는 게 아니라, N차원 공간 안에서의 "연결고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건 바로, 각각의 경로에는 "범위의 한계"라는 게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N차원 공간의 어느 한 지점인 A라는 위치가 있다고 치자. A라는 위치를 꼭지점으로 가지는 모든 형태의 경로들을 다 모아 놓았다고 했을 때, 이 경로들은 제 아무리 형태가 제각각이라 할지라도 N차원 공간의 모든 공간을 다 빽빽히 차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A라는 위치에서 시작하는 경로에게는, 그 위치에 의한 공간적 구속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현재 지구의 지하 깊숙히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돌멩이는 절대로 1년 안에 안드로메다 은하로 날아갈 수 없다. 이는 즉, [현재 지구의 지하 깊숙히에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돌멩이]를 N차원 공간의 한 위치로 지정했을 때, 그 위치를 한쪽 꼭지점으로 삼고 있는 경로들 중에는 그 어떤 것도 [1년 뒤의 안드로메다 은하]를 나타내는 N차원 공간의 위치를 가로지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존재할 수 있는 경로들의 형태나 위치에는 제한이 있다.

그렇다면 이 "범위의 한계"라는 개념을, "장소"라는 개념과 연관시켜 보면 어떨까?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장소라는 것은 "어느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게 인과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역을 의미한다. 이를 다르게 풀어 이야기해 본다면, 이는 곧 "하나의 경로가 다른 경로와 접촉할 수 있는 영역"을 뜻한다. 왜나하면 일단 경로끼리 접촉을 해야만 인과적으로 연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나의 당구공이 또다른 당구공과 아예 접촉조차 하지 않으면, 이 두 당구공들은 절대로 서로에게 "원인"이나 "결과"와 같은 성질을 부여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경로"라는 것은 종류에 개의치 않는다. 무엇이 되었던간에 경로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N차원 공간은 무한히 작은 경로들로부터 무한히 큰 경로들까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 종류가 제각각인 경로들로 가득 차 있다. 공간이란 사실상 경로들의 집합 또는 경로장(Path Field)과도 같으며, 따라서 이 N차원 공간 속의 그 어떤 지점을 선택하더라도, 그 지점은 어떠한 불특정 경로의 일부일 것이다. 빈 공간이라는 것은 없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알게 되면 "장소"에 대한 정의가 훨씬 더 간단해지기 때문이다. 장소에 대한 기존의 정의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경로가 다른 경로와 접촉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어떠한 경로가 하나 있고, 그 경로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다른 경로"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바로 그 경로 자체가 "장소"로 규정될 수 있지 않겠는가?

다만 다른 경로와 "접촉"한다는 뜻에는 직접적인 접촉 뿐만 아니라 간접적인 접촉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서 경로 A가 경로 B랑 접촉을 하고, 그 여파로 경로 B가 경로 C랑 접촉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말하는 접촉이라는 것은 즉 "원인 또는 결과"의 관계가 경로 사이에 성립했다는 뜻으로, 만약에 B가 A의 1차적(직접적) 결과였다면, C는 A의 2차적(간접적) 원인이 된다. 이를 다르게 풀어 말하자면, 경로 A는 경로 B랑 "직접적인 접촉"을 했지만, 경로 C와는 "간접적인 접촉"에서 그쳤다는 뜻이다. 다만 A가 만들어낸 결과들에는 B와 C가 모두 포함되므로, 만약에 누군가가 "경로 A가 속한 장소의 범위는 무엇이죠?"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A+B+C] 입니다" 라고 답할 수 있다. 비록 A가 다른 경로와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범위는 A 자신 뿐이지만, 다른 경로와 "간접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범위는 B와 C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만약에 갑자기 D라는 경로가 새롭게 나타나서 A를 건드렸다면, 이 경로는 A와 직접적인 접촉을 한 것이다. 반면에, 만약에 D가 B 또는 C경로를 건드렸다면, 여기서 D는 A와 간접적인 접촉을 한 것이다. 즉, A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장소가 하나 있고, 그 장소의 울타리는 바로 "A랑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접촉을 할 수 있는 범위"와 그렇지 않은 범위를 나누는 벽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