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사물들이 특정한 장소에 모여있는 그 찰나를 "사건"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서 A라는 장소가 있고, 어느 순간 그곳에 각각 a,b,c라고 불리우는 사물들이 한꺼번에 모였다고 가정해 보자. 3개의 사물들이 A장소에 모이는 그 순간, 우리는 A장소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A = {a,b,c} 라는 집합으로 정의할 수 있다. A라는 장소에 a,b,c,라는 사물들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건"의 정의를 토대로, 우리가 통상적으로 "분위기"라고 부르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보통 우리는 어떠한 공간 안에 머물러 있을 때, 그 공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그곳의 분위기를 판가름한다.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떠한 방 안에 있는데, 방 안의 사람들이 서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분명히 그 방의 분위기가 "험악하다"고 말할 것이다. 다만 굳이 사람을 예로 들지 않고 사물에 빗대어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일단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이 있다고 치자. 하얗지도 않고, 그렇다고 칠흙같이 어둡지도 않은 단조로운 회색 방이다. 쉽게 말해서 사방이 갓 건설을 끝낸 콘크리트 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조명은 딱 적당한 강도의 형광등 불빛이 전부이며, 방 안에는 그 어떤 가구나 장식물도 없다. 그야말로 이 방은 공간이라는 것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분위기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갑자기 몇몇 종류의 사물들을 바깥에서 끌어들이며, 방 안을 꾸미기 시작했다. 우선 그는 아이보리색 벽지라는 "사물"을 콘크리트 벽에다가 도배한 다음, 베이지색 카페트라는 "사물"을 바닥에다가 깔았다. 그런 다음 그는 북쪽 벽면에 갈색의 목재 책장을 하나 설치하고, 서쪽 벽면에는 짙은 녹색의 소파를 설치했으며, 동쪽 벽면에는 초록빛이 도는 자갈돌들을 이어붙인 듯한 표면의 벽난로를 설치했다. 그가 꾸민 이 방의 "분위기"를 측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분위기라는 것을 결정하는 요소들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소위 말하는 "분위기"라는 것은, 어떠한 공간을 관찰하고 있을 때 그곳에서 전반적으로 비쳐오는 느낌을 이야기한다. 그 느낌이라는 것을 결정지어 주는 요소들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상상 등의 수많은 심리적인 것들이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공간의 구조 그 자체가 분위기 결정의 초석이 된다. 왜냐하면 관찰자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정보가 회상되는 과정 또한, 궁극적으로는 공간의 물질적인 구조를 촉매로 하여 작동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벽지가 하얀색인 방 보다는 붉은색인 방이 관찰자로 하여금 "장미꽃"을 떠올리는 과정을 더 쉽게 만들어준다.
분위기의 종류를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관찰자의 정신세계까지 이해하려 드는 것은 너무나도 복잡한 일이므로, 지금은 오로지 관찰자의 개인적인 개입이 배제된 "객관적인 분위기"의 측정방법만을 분석해 보도록 한다. 지금부터 말하는 "분위기"란, 관찰자가 아무런 기억이나 상상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에게 오로지 미적 감각과 공간지각적 능력만이 남아있다는 가정 하에 판가름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위기"에 대한 모든 주관적인 정의는 철저히 제외시키도록 한다. 예를 들어서 방 안을 뒤덮고 있는 초록색 벽지를 보면서 "푸른 초원"이나 "정글숲"같은 풍경을 연상하는 것은 너무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이러한 은유적 발상은 분위기 결정의 요소에서 완벽하게 제외시키도록 하며, 공간의 구성은 오로지 질 대신에 양적인 면으로만 판단하도록 하겠다.
아까 말했던 방을 양적으로 분석해 보자. 일단 이 방 안에는 총 5개의 사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콘크리트 벽을 방의 영역에서 제외시켰을 때의 이야기이다). 사물들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벽지 (위치: 방의 중심)
(2) 카페트 (위치: 방의 중심)
(3) 책장 (위치: 방의 북쪽 면)
(4) 소파 (위치: 방의 서쪽 면)
(5) 벽난로 (위치: 방의 동쪽 면)
벽지의 위치가 방의 중심인 이유는, 벽지가 방 전체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벽지의 모든 부분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위치들을 합산한 "평균위치"는 방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하튼 이렇게 5개의 사물들을 나열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으리라 본다. 하나는 각 사물의 "종류"이고, 또 하나는 각 사물의 "위치"이다. 여기서 말하는 종류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 아닌, 오로지 물질적 특성만을 기준으로 하여 정해진다. 예를 들어서 45와 46사이의 수는 소파라는 종류를 나타내고, 그 중 45.4에서 45.7 사이의 수는 2인용 소파를 나타내며, 또 그중에서 45.53에서 45.54 사이의 수는 초록색의 2인용 소파를 나타내는 식으로 말이다. 소수점의 깊은 곳으로 나아갈수록, 사물의 종류에 대한 더 디테일한 묘사가 추가된다. 비슷한 종류일수록 그것들을 나타내는 수의 양적인 차이도 적어지게 된다. 사물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종류들을 상징하는 숫자들의 집합은 "종류 스펙트럼"이라고 부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