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란 무엇인가? 우린 직감적으로, 장소라는 것에는 특정한 범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에 그 범위를 벗어난다면 혹자는 "장소 밖에" 있는 것이고, 범위 안으로 들어온다면 혹자는 "장소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장소"는 어떠한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부터 구분시켜 주는 개념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가령 아무것도 없는 잔디밭이 있다 할지라도, 누군가가 그 잔디밭 위에다가 동그랗게 울타리를 두른다면, 울타리 내부의 공간은 바깥으로부터 분리된 "장소"로 거듭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눈여겨 볼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특정 장소에 속하는 사물들과 그렇지 않은 사물들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예컨대 잔디밭 위에다가 동그란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울타리 안의 모든 잔디들을 뽑은 다음 보도블럭을 깔았다고 생각해 보자. 이제부터 울타리로 둘러싸인 그 공간은 더이상 잔디밭이 아니라 "광장"이 된 것이다. 이 광장이라는 장소의 경계는 충분히 뚜렷하다. 우리는 어떠한 사물이 울타리 안쪽의 보도블럭 위에 있으면 그것이 "광장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만약에 울타리 바깥쪽의 잔디밭 위에 있으면 그것이 "광장 밖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특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정확히 그 시간에 사물이 어떠한 장소에 속해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 풀지 못한 과제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모든 시간을 통틀어서" 어떠한 사물이 무슨 장소에 속해 있는지를 어떻게 알아내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유롭게 허공을 날아다니는 나비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나비는 다양한 방향과 속도로 시시때때 날아다니며, 울타리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만약에 혹자가 "이 나비는 광장과 잔디밭 중 어느 장소에 속해 있소?"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물론 시간대별로 나비의 행방을 나누어서 생각하면 문제는 간단하다. 예컨대 오전 11시 5분에 나비가 울타리 안에 있었다면, 당신은 정확히 그 시간에만큼은 나비가 광장에 속해 있었다고 자신있게 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나아가다 보면 거의 1초 단위로 매 시간대들을 기록해 놓고, 해당 시간대 별로 나비의 위치를 기록해가며 방대한 양의 표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로는 결코 나비가 "절대적으로" 속한 장소를 파악할 수 없다.
나비가 시간대에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속해 있는 장소를 알아내려면, 우선 나비의 이동경로를 지도 위에다가 그려야 한다. 만약에 나비가 아무런 순환고리 없이 항상 불규칙적으로만 움직인다면, 아마도 나비가 절대적으로 속한 장소를 파악하는 일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나비가 일정한 주기마다 항상 똑같은 경로들만을 따라 날아다닌다면, 그것은 바로 나비가 "순환하는 사물"이라는 증거이며, 이러한 경우에는 나비가 시간을 불문하고 절대적으로 속해 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나비가 절대적으로 속한 장소를 알아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건 바로 나비의 "평균위치"를 구해놓고, 그 위치가 어느 장소에 속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나비의 평균위치란, 나비가 한번의 이동주기(처음 거쳤던 경로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동안 지나갔었던 모든 위치들의 평균값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A,B,C라는 3개의 위치들이 순서대로 나란히 있고, 나비가 B를 중심으로 A와 C사이를 10초에 한번씩 왕복한다고 생각해 보자. 여기서 나비의 이동주기는 10초이며, 나비의 평균위치는 B이다.
나는 수학적으로 "평균위치"를 어떻게 구하는지에 대한 확신은 못하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사물의 위치를 나타내는 함수를 사물의 이동주기만큼 적분한 다음 그것을 다시 사물의 이동주기로 나눈 값이 아닐까 생각하다. 물론 이는 확실한 해답이 아니므로, 너무 믿지는 말길 바란다. 방법이야 어찌됬던, 나비를 평균위치를 구할 수만 있다면 그 다음으로 할 일은 그것이 어떤 장소에 속해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만약에 나비의 평균위치가 울타리 안에 있다면, 우리는 그 나비가 시간에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광장에 속해 있으며, 이따금씩 나비가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임시로 외출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광장이라는 장소의 존재를 구분짓는 "울타리"라는 것이 광장의 존재유무를 결정해 주는 확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울타리를 하나의 사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고리 형태를 띈 덩어리일 뿐이다. 그 커다란 고리의 중심은 바로 광장의 중심과도 같으며, 이는 "광장이라는 장소"의 종류가 "울타리라는 사물"의 종류에 의해 정의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일단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바로 울타리가 정지된 사물이라는 것이다. 울타리는 한 위치에만 고정된 채로 절대 움직이지 않으며, 따라서 울타리라는 사물의 위치는 항상 그것의 평균위치인 "광장의 중심"과 동일하다. 시간을 불문하고 울타리의 위치는 항상 그 어떤 다른 사물보다도 더 "광장이라는 장소"의 중심에 근접하기 때문에, 우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울타리라는 사물이 광장이라는 장소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물론 광장을 상징하는 조각상 하나가 정확히 광장의 중심에 세워져 있다면, 울타리 대신에 그 조각상이 광장의 상징물로 거듭날 것이다. 왜냐하면 조각상과 울타리의 평균위치는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조각상의 질량은 울타리보다 훨씬 더 광장의 중심 쪽으로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은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장소를 하나씩 형성시키고 있다. 예컨대 나무의자가 하나 있다면, 그 의자는 항상 자신을 상징물로 삼는 "나무의자의 공간"이라는 장소의 중심에 속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장소란, "해당 장소의 상징물이 또다른 사물의 이동경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의 범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서 나무의자가 반경 1m 이내의 사물들에게만 물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 의자가 형성시키고 있는 장소의 범위는 "반지름이 1m인 동그라미"라고 정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