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게임은 아름답다. 게임 속에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장소들이 등장 하지만, 그 중 유한한 존재들은 특히 게이머의 심금을 울린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영원한 작별의 순간이 필연적으로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언젠가는 사라져 버리며, 이는 그것이 아직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게이머에게 일깨워 준다.
짤막한 이야기와 함께 끝을 맺는 하프라이프(Half Life)와 같은 게임은 비록 영원히 진행되는 샌드박스 게임처럼 무궁무진한 자유도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플레이를 마친 이로 하여금 지나간 순간들을 하나 하나 다시금 곱씹으며 깊은 여운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게임 속의 유한한 사건들은 특유의 시간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애뜻하고 신비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며, 이는 불로불사의 존재들이 감히 가질 수 없는 필멸자들만의 아름다움이다.
(스포일러 주의! - 아래에는 '그래비티 본'이라는 게임의 결말이 언급 됩니다)
(이미지 출처: TV Tropes: https://tvtropes.org/pmwiki/pmwiki.php/VideoGame/GravityBone)
(이미지 출처: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j46bfo1GRCA)
유한성의 미를 가장 잘 표현한 게임 중에는 '그래비티 본'(Gravity Bone)이 있다. 그래비티 본은 아주 짤막한 단편 영화처럼 진행되는 게임인데, 총 플레이 시간이 고작 20분 남짓 하다는 것과 아무런 예고도 없이 게임이 갑자기 끝나 버린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할 수 있다.
보통 비디오 게임 속 주인공은 흔히 말하는 "주인공 버프"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제 아무리 총알이 빚발치는 전쟁터 속에 있다 할지라도 쉽게 죽지 않으며, 만약에 죽더라도 몇 번이고 다시 부활 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그래비티 본'의 주인공은 다르다. 초반에는 뭔가 대단한 일을 완수해 나가는 것 처럼 미션을 하나 하나 클리어 해 나가지만, 어느 순간 누군가가 쏜 총알 한 발에 죽고 만다. 그리고 게임은 끝난다.
이러한 허무주의적인 엔딩은 어찌 보면 인디게임 특유의 싸구려 신비주의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급작스러운 죽음이 주는 충격이 '그래비티 본'의 핵심 포인트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게임 속 주인공의 죽음은 다른 게임 캐릭터들의 죽음과는 판이하게 다른 충격을 게이머에게 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선 (1) 주인공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고, (2) 죽음을 예방할 방법이 없으며 (무조건 주인공이 죽어야 게임이 끝난다), (3) 단 한 번의 죽음과 함께 게임이 완전히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래비티 본'을 끝까지 플레이 한 사람은 마치 이것이 본인의 필연적인 현실 속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래비티 본'의 작품성이 관객의 얼굴을 한 대 치고 도망가는 식의 충격요법식 전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비티 본'이 보여주는 죽음은 나중에 와서 되돌아 보면 결코 비극적이거나 충격적인 것이 아니다. 아마 게임을 직접 해 본 사람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