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매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게임에서도 감정이입이 중요하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속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마치 자신이 겪는 상황인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다면, 일단 그 게임은 감정적인 면에서는 충분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밸런스나 레벨 디자인같은 건 둘째 치고, 일단은 플레이어에게 게임에 대한 애착심을 유발시키는 무언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게임이 가장 효과적으로 플레이어의 감정을 따스하게 주무를까? 물론 게임마다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감정이입에 능숙한 게임들이 대표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현실에 있을 법한 일을 다룬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qEzLLnB7p3c)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영화 '스크림'(Scream)이 공포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명작인 이유는 영화 속 공포의 대상이 다른 공포물에 비해 무시무시 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귀신이니, 좀비니, 움직이는 인형이니, 아니면 의식을 가진 기계니 하는 등의 어마무시한 악당들이 넘쳐나는 다른 공포영화들에 비하면 스크림은 상당히 설정이 소소하다. 그냥 복면을 쓴 채 칼을 가지고 사람을 급습하는 1명의 연쇄살인마가 거의 유일무이한 악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관객들은 더더욱 영화 스크림을 보고 난 뒤 꺼럼칙한 느낌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미지 출처: Slash Film: https://www.slashfilm.com/new-scream-movie-gearing-up-to-reference-more-scary-movies/)
왜냐하면 스크림의 연쇄살인마가 저지르는 유형의 범죄는 충분히 관객 본인이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귀신은 안 믿으면 그만이고, 사람을 밀실에 감금시킨 상태로 고문하는 걸 즐기는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한테 납치될 가능성은 거의 천문학적으로 희박하며,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괴생명체에게 공격당하는 시나리오는 우선 그런 괴생명체를 만들 정도로 과학기술이 진보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스크림에 등장하는 범죄는 다르다. 복면을 쓴 채 칼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누구나 쉽게 모방 가능한 범죄이며 (실제로 이 영화를 모방한 살인사건이 꽤 있었다), 따라서 당장에 나 자신이 당할지도 모른다. "당장에 내가 길을 가다 어떤 또라이가 휘두른 칼에 죽을지도 모른다" 라는 확신은 관객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불안감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며, 그 어떤 끔찍한 장면이나 연출도 주지 못하는 특유의 싸한 느낌을 준다.
(이미지 출처: IMDb: https://www.imdb.com/title/tt0117571/)
게임도 이러한 점에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을 만한 사건을 게임 속에서 보여줄 때, 게이머는 쉽사리 자기 자신을 그 사건의 주인공의 입장에 투영하며 감정을 대입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게임을 향한 감정적 몰입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심즈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끈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평범한 일상을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게이머는 본인 스스로와 본인의 가족, 그리고 본인 주변의 이웃을 쉽게 게임 속 심들(가상의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입하며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