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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의 공간

Author: Youngjin Kang

Date: 2019.12

게임 디자이너들은 종종 "가능성의 공간"(Possibility Space)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가능성의 공간이란 말 그대로 가능성의 영역을 표현한 일종의 이론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능성이란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가 시도할 수 있는 행동들의 총 범위를 뜻한다. 예컨대 드넓은 맵을 가진 오픈월드 게임은 플레이어의 이동적 자유에 있어서 만큼은 넓은 영역의 가능성의 공간을 가지고, 다양한 블록을 조립해 이것저것 온갖 종류의 기계들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게임은 조합의 개념에 있어서 만큼은 넓은 영역의 가능성의 공간을 가진다.

가능성의 공간 (Figure 1)

(이미지 출처: Stack Exchange: https://tex.stackexchange.com/questions/197375/how-i-draw-the-tree-of-possibility)

물론 가능성의 공간이 가진 절대적인 부피가 게임의 전반적인 품질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머지의 다른 요소들이 엇비슷한 두 게임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가능성의 공간의 부피가 큰 게 그렇지 않은 것보다 좀 더 재밌을 거라고 예상하는 건 무리한 분석이 아니다.

따라서 되도록이면 가능성의 공간의 부피를 최대한으로 늘림으로써, 유저가 행할 수 있는 액션의 범위를 최대치로 끌어 올리도록 노력하는 게 게임 디자인에 있어서는 하나의 정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의 공간이 단순히 부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가능성의 공간에게는 특유의 모양이란 게 있는데, 이것은 마치 산처럼 여기저기의 높낮이가 다른 곡면의 형태를 띄고 있다. 플레이어가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라고 가정한다면, 곡면 위의 경사는 일종의 "진입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경사가 높을 수록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낀다.

가능성의 공간 (Figure 2)

(이미지 출처: Research Gate: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An-example-of-a-fairly-simple-three-dimensional-fitness-landscape-including-two-local_fig2_323772899)

포토샵이나 김프같은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가능성의 공간의 총 영역만 따졌을 때는 그 수준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과연 포토샵이나 김프를 사용해서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저의 수가 얼마나 될까?

가능성의 공간이 제 아무리 넓어도, 그 넓은 영역을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으려면 유저의 진입장벽이 낮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플레이 방법이 너무 어려웠던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는 처음에만 반짝 하다가 곧 잊혀져 버리고 말았고, 플레이 방법이 단순했던 마인크래프트(Minecraft)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작이 되어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가능성의 공간의 크기 자체만 따진다면 세컨드라이프가 마인크래프트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는 않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능성의 공간 (Figure 3)

(이미지 출처: diy network: https://www.diynetwork.com/made-and-remade/learn-it/ideas-for-garden-steps)

가장 이상적인 모양은 아마도 페루의 마추픽추같은 계단식일 것이라 생각한다. 경사가 때때로 높아지다가도 다시 낮아질 줄을 알아야 플레이어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속 난이도의 주기적인 상승과 하락 패턴을 이용해 구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