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에는 다양한 아키타입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아키타입"(Archetype)이란 정신분석학자 칼 융(Carl Jung)이 즐겨 사용하던 개념으로,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요소들을 일컫는다. 일종의 "본능"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융은 아키타입과 본능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참조: 그가 말년에 다른 작가들과 함께 쓴 마지막 저서인 "Man and his Symbols"를 읽어보면 Archetype 관련 챕터에서 그러한 주장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본능이라는 것은 사냥본능, 번식본능과 같은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운동패턴인 데에 반해, 그가 말하는 아키타입이라는 것은 무의식적 사고의 뼈대를 이루는 문화/종교적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Owlcation: )https://owlcation.com/social-sciences/Inside-Modern-Archetypes-Dissecting-the-Advocate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신"이라는 일종의 아키타입이 모두의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고, 많은 이들이 항상 욕하고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인 공공의 적을 찾는 것도 "악당"이라는 아키타입이 모두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아키타입은 구체적인 형태를 가진 심볼이 아니다. 따라서 보통은 한가지 아키타입이 여러 문화권에서 제각기 다른 형태로 표현되곤 한다. 신이라는 존재가 종교에 따라 다른 이미지와 가치관으로 표현되듯이 말이다.
(이미지 출처: CEOsage: https://scottjeffrey.com/archetypes-list/)
그렇다면 게임 속에 아키타입이 등장한다는 건 무슨 말일까?
다른 대중매체들(소설, 희곡, 만화, 영화, 음악 등...)이 그렇듯, 게임도 하나의 매체로서 문화라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숙주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아키타입이라는 것은 바로 이 바이러스의 전염방식이라고 여기면 된다. 아키타입은 모든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공통적으로 호환되는 일종의 프로토콜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성격이나 취향에 상관없이 모두를 대상으로 전염되며 쉽게 퍼져나간다.
게임에 아키타입이 들어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키타입은 모두가 동감할 수 있는 무의식의 운영체제이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공통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더군다나 아키타입은 다양한 매체들 속에 숨어있는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이는 별다른 새로운 지식 없이도 게임 속 아키타입을 매개체 삼아 쉽게 게임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Lady Lazarus: https://jenniferlinton.com/2012/05/14/the-great-mother-vs-the-terrible-mother-the-dual-nature-of-the-jungian-archetype/)
게임 속 아키타입의 대표적인 예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보호자 - 플레이어를 보호하고 충고해 주는 일종의 가디언(Guardian) 아키타입. 튜토리얼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기도 한다.
(2) 절대악 - 플레이어가 대적해야 할 악의 집결체. 모든 "나쁜 것"의 상징이며, 제거해야 할 최종적 목표물이다.
(3) 절대선 - 플레이어가 지향해야 할 선의 집결체. 완벽한 세상에만 존재할 수 있는 완전무결한 이상적 존재이다 (예: 슈퍼마리오의 피치 공주).
(4) 트릭스터 - 플레이어가 처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며 여러가지 이익과 난제를 동시에 만드는 수수께끼같은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