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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제약이 만들어낸 개성

Author: Youngjin Kang

Date: 2019.09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에는 개발자들에게 있어서 컴퓨터의 성능이 게임의 디자인을 제약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특히 90년대 초반의 게임용 3D 그래픽은 수없이 많은 기술적 제약을 극복해야 했다. 당시에는 DirectX(Direct3D)나 OpenGL같은 보편적인 3D 그래픽 라이브러리가 미완성 또는 걸음마 단계였거니와, 실시간으로 삼차원 다각형들을 렌더링해 주는 현대적인 그래픽카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까지의 가정용 컴퓨터는 GPU의 도움 없이 오로지 CPU의 힘만으로 모든 그래픽을 렌더링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에는 흔하게 사용되는 폴리곤 기법을 당시에는 게임 속에서 별 부담 없이 구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별로 좋지도 못한 성능의 CPU를 사용하여 삼차원 그래픽을 만들어 내기 위한 방편으로 다음과 같은 해결책들이 이용되었다:

기술의 제약이 만들어낸 개성 (Figure 1)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Wolfenstein_3D)

(1) 2차원 평면상에서 광선투사(Raycasting, 레이캐스팅) 기법을 사용해 복셀(Voxel) 하나하나와 관찰자 사아의 거리측정을 함으로써, 2차원적인 공간 속 관찰자의 위치와 방향을 마치 3차원 속의 일인칭 시점인 것처럼 그려낸다. 이 방식을 사용한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울펜슈타인 3D(Wolfenstein 3D)와 호버탱크 3D(Hover Tank 3D), 그리고 카타콤 3D(Catacomb 3D)가 있다.

기술의 제약이 만들어낸 개성 (Figure 2)

(이미지 출처: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fj2E-8W_4G0)

(2) 화면상에 위치한 소실점(Vanishing Point)을 기점으로 하여, 이 점에 가까이 있는 이미지(Sprite)는 작게 표현하고 멀리 있는 이미지는 크게 표현하여 원근감을 만들어낸다. 이 기법은 "우주공간 속 포스트카드"(Postcards in Space)라는 명칭으로도 일컬어지며, 게임 "레고아일랜드 2 : 브릭스터의 복수"(Lego Island 2 : The Brickster's Revenge) 안에 등장하는 우주 소행성 피하기 미션에서 2차원 소행성들의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묘사할 때 사용된 바가 있다.

기술의 제약이 만들어낸 개성 (Figure 3)

(이미지 출처: Old PC Gaming: https://www.oldpcgaming.net/streets-of-simcity/)

(3) 폴리곤 기법을 사용하여 삼차원 다각형의 꼭지점/면 하나하나를 화면에 그리긴 하되, 절두체 컬링(Frustum Culling)에 사용되는 원평면(Far Plane)과 카메라 사이의 거리를 아주 짧게 만듦으로써 한 프레임당 화면상에 그려야 하는 꼭지점/면의 갯수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이러한 방법은 90년대 후반까지 아주 흔하게 사용되었고, 지금도 저사양 게임에서 즐겨 사용된다. 다만 원평면이 카메라에 가깝다는 것은 게임 속 사물들이 특정 거리 이상 관찰자로부터 멀어졌을때 순간적으로 화면상에서 사라져 버림을 의미하는데, 이런 순간적인 소멸을 플레이어가 인식하지 못하도록 보통은 사물이 멀어질수록 서서히 희미해지게 만드는 안개효과를 주곤 한다. 안개효과를 사용한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매직 카페트(Magic Carpet), 스트리트 오브 심시티(Streets of Simcity) 등이 있다.

이 세가지 방법들은 어찌 보면 컴퓨터 스펙의 제약으로 할 수 없이 그래픽의 수준을 하향시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하향조정된 그래픽 기법들을 해당 게임 특유의 매력으로 칭송하기도 한다.

예컨대 울펜슈타인 3D은 분명 1인칭 시점의 입체화면임에도 불구하고 2D 레이캐스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상승/하강의 개념이 없다 (예를 들어서 계단이나 사다리를 오르내린다거나 점프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 게임 속 맵은 그저 건물 속 하나의 평평한 층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공간적 단순함은 이 게임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상하좌우를 모두 살펴보며 행동해야 하는 풀 3D보다 훨씬 움직임이 단순하기 때문에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별로 높지 않은 것이다.

안개효과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기술적 제약으로 할 수 없이 사용되긴 했지만, 안개가 가진 특유의 미적 가치가 게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좋은 부작용(?)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점 때문에 높은 성능의 그래픽카드가 지원되는 요즘까지도 안개효과가 즐겨 사용되곤 한다. 안개가 시각적 도구로 잘 사용된 예로는 압주(ABZU),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The Elder Scrolls IV: Oblivion)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