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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임의 미학

Author: Youngjin Kang

Date: 2019.10

게임은 하나의 마술쇼 와도 같다. 실제로는 별 게 없어도 겉으로는 마치 무언가 대단한 게 숨겨져 있는 양 허세를 부릴 줄 아는 마술같은 게임이 성공적인 게임이다. 특히 수많은 게임 속 디테일을 구현할 만한 인력과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인디 개발자들은, 게임 속에 마술 같은 눈속임을 넣는 게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알 것이다.

눈속임의 미학 (Figure 1)

(이미지 출처: Abracadabra MAGIC SHOW (facebook profile))

굳이 인디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디자인, 메모리, 연산을 비롯한 다방면의 효율성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게임 속 눈속임 들을 즐겨 사용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여줘야 할 것만 보여주기" 이다.

마인드스케이프 사와 레고 사가 만든 '레고아일랜드'(Lego Island)라는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이 게임은 플레이어가 '레고아일랜드'라는 이름의 섬 안에서 1인칭 시점으로 탐험을 하는 게 주요 내용인데, 섬 안의 길거리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주변의 행인들이 지나가다가 말을 걸기도 하고, 서로간에 대화를 하기도 하며, 갑자기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거나 희한한 쇼를 하기도 한다. 중요한 건 이러한 이벤트들이 섬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플레이어가 지나가는 길목에서만 무작위로 보여지는 1회성 각본들이라는 사실에 있다.

눈속임의 미학 (Figure 2)

(이미지 출처: MyAbandonware: https://www.myabandonware.com/game/lego-island-401)

레고아일랜드 안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건사고 들은 그저 한번 재생 되었다가 사라지는 단편적 애니메이션 클립들 이기 때문에, 이 게임의 개발자들은 사건들 사이의 전후관계 같은 복잡한 시스템적 요소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도 다양한 게임 속 컨텐츠를 창조할 수 있었다.

눈속임의 또다른 예로는 "단순화 시키기" 가 있다. 어차피 플레이어가 신경쓰지 않을 디테일 들은 굳이 게임 속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게 해당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눈속임의 미학 (Figure 3)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Generalization)

예컨대 컵 속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표현할 때, 게임 개발자는 원한다면 하나하나의 작은 물방울들을 입자 형태로 만든 다음 물리법칙을 적용시켜 '컵' 이라는 3차원 모형 속 에다가 자유낙하 시키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플레이어 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쓸데없는 디테일이 아니며, 따라서 보통은 그냥 '컵'을 상징하는 흰 사각형 속 에다가 '물'을 상징하는 푸른 사각형을 넣은 뒤, 푸른 사각형의 길이를 서서히 늘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플레이어 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보만을 아주 단순한 형태로 전달함으로써, 프로그램의 효율과 정보의 전달을 둘 다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게임 개발자는 마술사로서 효과적인 눈속임들을 유능하게 구현할 줄 알아야 한다. 일부러 엉터리 마술사 행세를 하며 웃음을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예: 염소 시뮬레이터(Goat Simul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