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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심즈 커뮤니티의 역사 - 12 (에필로그)

Author: Youngjin Kang

Date: 2019.09

타 게임 커뮤니티들은 가지지 못한 심즈 커뮤니티만의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보편성"이다.

제 아무리 자유도가 높고 개조가 쉬운 게임이라 할지라도, 그 게임 고유의 장르 자체를 완전히 지우는 것은 쉽지가 않다. 예컨대 스타는 제 아무리 창의적인 유즈맵을 만들어도 결국 전략게임이라는 구조적 틀을 깨는 건 힘들고, GTA는 제 아무리 게임의 진행방식을 바꾸더라도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법자 행세를 하는 기본 컨셉을 지우기는 힘들다.

심즈는 우리 자신의 일상생활을 게임의 주제로 차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게임들과는 매우 달랐다.

대한민국 심즈 커뮤니티의 역사 - 12 (에필로그) (Figure 1)

(이미지 출처: IGN: https://www.ign.com/wikis/the-sims-4/Sharing_and_Finding_Created_Sims)

수많은 심즈 팬들은 심즈라는 게임 자체를 즐기기 보다는, 오히려 심즈를 활용한 다양한 활동에 몰입함으로써 방대한 커뮤니티와 친목관계를 형성시켜 나갔다. 어떤 이는 심즈 속 집을 만든 다음 하우스파일을 공유했고, 어떤 이는 심즈를 하며 찍은 스크린샷들을 이용해 심즈만화를 만들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전문 제작 툴을 이용해 아이템을 만들어 공유했다. 물론 그렇게 인터넷에 올라온 아이템들을 마치 온라인샵에서 쇼핑 하듯이 이것저것 다운받는 데에 재미를 붙인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심즈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심즈가 특정 주제에 얽매이지 않은 보편적인 매체라는 점에 있다. "생활시뮬레이션"이라는 거대한 정서적 범주 속에서 플레이어는 손쉽게 사진작가가 될 수 있고, 건축가가 될 수 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될 수 있고, 영화감독이 될 수도 있으며, 가구 디자이너가 될 수도 있다. 또한 확장팩의 도움을 받으면 농부, 스타, 마법사, 반려동물 조련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심즈의 이러한 장르적 보편성을 뛰어넘는 게임이 지금까지 없지는 않았다. 마인크래프트는 2009년 정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스스로가 심즈보다 더 보편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만능게임"임을 증명하며 지금은 그 어떤 게임도 범접할 수 없는 전세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서점, 심지어 편의점에서도 그냥 마인크래프트 속 이야기만을 다룬 책이 판매될 정도이다).

로블록스(Roblox)도 마인크래프트 못지 않게 넓은 스케일의 샌드박스/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으로서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전세계의 수많은 게이머들을 사이에 커뮤니티를 형성시켜 나갔다.

대한민국 심즈 커뮤니티의 역사 - 12 (에필로그) (Figure 2)

(이미지 출처: IDN Times: https://www.idntimes.com/hype/throwback/ranggana/nostalgia-7-game-pc-yang-pernah-berjaya-di-tahun-2000-an-c1c2)

그러나 이러한 괴물적인 인기를 누리는 게임들이 나오기 전이었던 2000년대 초/중반에 심즈라는 게임은 장르적 보편성에 있어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1인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프로게이머를 배출해 내는 하드코어 게임은 아니었지만, 당시 비디오게임이 별로 안 팔리던 유럽에서도 이례적으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 심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심즈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잔잔히 다가올 수 있었던 쌀밥같은 게임이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