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모든 게임들이 가진, 현실과는 차별화되는 특징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게임은 실패를 용서한다는 것이다.
현실은 실패하는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단 한번의 실패는 그 사람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박살낼 수 있으며, 만약에 그렇지 않더라도 영원히 인생을 따라다닐 불이익을 줄 수 있다. 게임 속에서는 수천 발의 총알에 맞아서 벌집이 되어도 멀쩡히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단 한 발의 총알에만 잘못 맞아도 사선을 헤매곤 한다. 그토록 현실은 냉혹하며, 이런 현실 속에서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Heavy_cavalry)
게임은 다르다. 게임은 사용자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도전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만약에 처절하게 무너지고 실패한다 할지라도,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없던 일로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 비행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실수로 비행기를 추락시킨다 해도 괜찮고, 철도시뮬레이션을 하다가 실수로 기차를 탈선시켜도 괜찮다. 어차피 가상이니까 모든 불찰이 용서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게임을 한다. 실패했을 때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에 선뜻 도전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전한 실패"를 맛보다 보면 어느덧 현실 속에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가르침이며, 게임을 게임답게 해주는 필수요소인 것이다.
그러나 몇년 전부터 게임계에는 "방치형 게임"이라 불리우는 이단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1) 가만히 있어도 점수가 오른다.
(2) 실패라는 것이 없다 (그나마 실패와 유사한 이벤트라고 해봐야 점수 오르는 속도가 한동안 주춤하는 수준이다).
(3) 실력이 그닥 중요하지 않다.
(이미지 출처: Scratch (MIT): https://scratch.mit.edu/discuss/topic/14965/?page=20#post-3465492)
방치형 게임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쿠키 클리커'(Cookie Clicker)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게임은 처음에는 화면의 한 귀퉁이에 있는 쿠키를 반복적으로 클릭하며 총 쿠키의 갯수를 늘려 가다가, 나중에는 자동클릭 업그레이드, 할머니 업그레이드와 같은 다양한 업그레이드를 해가며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쿠키 수가 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서 쿠키는 게임의 전반적인 진행수준을 알려주는 일종의 점수이다). 다른 게임들도 얼추 비슷한 매커니즘으로 작동한다.
방치형 게임 속에는 오로지 성공, 성공, 또 성공만이 있다. 극복해야 할 두려움도 없고, 남과 함께 협동해서 풀어나가야 할 만큼의 어려운 장애물도 없으며, 머리를 써서 헤쳐나가야 할 퍼즐같은 난관도 없다. 그저 무엇이든지 다 주는 무료 자판기 앞에 서서, 출석부에 도장을 찍듯이 '클릭'이라는 가장 나태한 형태의 움직임으로 성공이란 이름의 화려한 버튼을 누르는 게 전부일 뿐이다.
방치형 게임은 지금까지 인류가 즐겨 하던 대부분의 다른 게임들과는 그 근본 정신 자체가 다르다.
처음에 출석도장만 좀 찍다가 나중에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뭐라도 될 거라는 망상. 그 망상을 가장 처절하게 게임의 형태로 구워낸 것이 바로 방치형 게임인 것이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Pachinko)
사실 이러한 장르를 처음 만들었다고 해도 무방한 초창기 클리커 게임인 '카우 클리커'(Cow Clicker)는, 2010년대 초반 당시 페이스북에 난무하던 양산형 캐주얼 게임들을 풍자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블랙코미디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냉소적 컨텐츠가 2013년 쿠키 클리커의 출시 이후에 오히려 하나의 유행이 되어 버려서, 이제는 풍자가 아닌 하나의 진지한 게임장르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