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D 드림 에뮬레이터(LSD Dream Emulator)라는 게임에 관해 아는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꿈 속 세계를 가상으로 구현해 낸 게임이다.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SD:_Dream_Emulator)
플레이어는 드림 에뮬레이터를 하면서 자유롭게 꿈 속을 누비는데, 이곳에서 펼쳐지는 가상의 꿈도 실제 사람이 꾸는 꿈과 마찬가지로 거의 논리적인 연계성이 전혀 없는 시나리오로 전개된다. 없던 사물이 갑자기 생기기도 하고, 사물에 부딪히면 다른 공간으로 순간이동 되기도 하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이한 물체가 플레이어를 쫓아오기도 한다. 게임의 이름이 말해 주듯이, 이는 마치 'LSD' 같은 마약을 복용한 사람이 겪는 환각증상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실 어찌 보면 이런 장르의 게임은 아주 약아 빠졌다고 할 수 있다. 별다른 개연성 없이 게임을 진행시켜도 상관이 없으니까,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아주 만들기 편한 것이다. 다만 디자인 과정이 얼마나 쉬웠는지는 게이머 입장에서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게임이 꽤 옛날에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튜브(YouTube), 레딧(Reddit)을 비롯한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솔직히 따지고 보면 스토리도 거의 없고, 내용전개도 그냥 뱀주사위놀이 수준인데?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LSD:_Dream_Emulator)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 생각에 드림 에뮬레이터가 지금까지도 수많은 팬을 거닐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신비주의'라고 본다. '돈 허그 미 아임 스케어드'(Don't Hug Me I'm Scared, DHMIS)같은 신비주의적 애니메이션이 두터운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고, 신비주의적 색채가 깃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가 대표적인 고전문학작품 중 하나이듯이, 오랜 새월동안 사랑받는 명작 게임들 중 상당수는 신비주의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신비주의는 심리적인 떡밥 그 자체이고, 이는 게임이라는 매체에서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비주의적 요소는, 마치 영화로 치면 맨 끝에 'The End'라는 문구를 보여주고 나서 홀랑 그 옆에다가 물음표를 붙이는 행위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끝없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백일몽 제조기이다.
신비스러운 것은 그것의 절대적인 가치와는 무관하게 상대방에게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자세히 까보면 별 거 없는 것도 뭔가 있어보이게 포장을 하는 것. 한마디로 '브랜드가치'를 만들어 내는 모든 행위는 일종의 신비주의로 정의할 수 있다.
신비주의가 특히 빛을 발하는 매체 중 하나는 단연 게임이다. 왜냐하면 게임 속에서는 신비주의적 요소들을 만드는 게 굉장히 쉽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만 하더라도, 관객/독자로 하여금 묘하게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무언가를 이야기 속에 집어넣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게임 속에서는 (물론 하프라이프(Half Life)를 비롯한 몇몇 게임들은 스토리 상에도 그런 요소들을 집어 넣었지만) 굳이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고려해가며 숨겨진 요소들을 넣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게임은 구조적으로 그러한 연출이 매우 쉽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gosunoob: https://www.gosunoob.com/destiny-2/annex-secret-room-location-black-armory/)
예를 들어서 FPS 게임을 하나 만들더라도 울펜슈타인 3D 처럼 벽 곳곳에 비밀 통로들을 숨겨 놓음으로써, 게이머로 하여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상을 쉽게 줄 수 있다. 레고레이서 1을 비롯한 수많은 레이싱 게임들은 이곳 저곳에 지름길을 숨겨 놓음으로써 레이싱 트랙 자체를 일종의 신비한 이스터에그의 밭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레고아일랜드 1은 맵의 한 귀퉁이에 절대 열리지 않는 동굴 문을 하나 만들어 놓음으로써 게임으로 하여금 신비한 수수께끼를 하나 가지게 디자인되었다 (p.s. 내가 이 동굴 문을 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