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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심즈에 관한 이야기 (심즈의 역사) - 5

Author: Youngjin Kang

Date: 2019.09

때는 바야흐로 2000년 2월. 맥시스가 EA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발한 심즈는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 인터넷의 각종 게임프리뷰/게임리뷰 사이트들은 이 게임을 회의적인 태도로 대했다. 당시 비평가들이 심즈에 보인 반응은 얼추 다음과 같았다고 보면 된다:

"아이디어는 나름 참신하지만, 과연 이 '인형의 집 시뮬레이터'가 진정 게임으로써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초창기 심즈에 관한 이야기 (심즈의 역사) - 5 (Figure 1)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GameSpot)

물론 맥시스도 심즈를 개발하면서 이러한 비평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고, 때문에 제작과정 속에서 많은 "게임적" 요소들을 집어넣었다. 예를 들어서 가끔씩 무작위로 복권에 당첨 되었다는 전화가 와서 보너스로 돈이 들어 온다든지, 아니면 직장에서 보너스를 받아 온다든지 하는 등의 슬롯머신스러운 이벤트들을 간간히 게임 속에 집어넣어 흥미유발을 하도록 했으며, 심이 한가지 직업군의 정상에 도달하면 얼마 지나서 다른 직업군의 어중간한 자리로 직장을 교체시킴으로써 지루하지 않은 플레이를 가능하게 했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즈를 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심즈가 게임치고 상당히 "지루하다"라고 평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게임이다 보니, 제 아무리 무작위 이벤트들을 중간중간에 등장시킨다 해도 일단 안정된 직장을 잡고 안정된 인간관계를 형성시킨 다음에는 플레이 방식이 너무 반복적으로 바뀌는 걸 막을 길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심즈는 어떻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명작 중의 명작이 될 수 있었을까?

우선 심즈의 성공비결에는 마케팅이 큰 역할을 했다. 처음 심즈가 출시됐을 때, 맥시스와 EA가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이 게임을 어떻게 홍보할지에 관한 것이었다. 액션게임이면 액션게임이라고, 육성게임이면 육성게임이라고 그냥 소비자들에게 광고하면 됐겠지만, 심즈는 너무 생소해서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애매한 장르의 게임이었다.

그러나 맥시스와 EA 측은 이러한 어려움을 "심시티"와 "시트콤"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들을 이용하여 극복하는 데에 성공했다.

초창기 심즈에 관한 이야기 (심즈의 역사) - 5 (Figure 2)

(이미지 출처: ThingsPool: https://place4me.github.io/web2)

2000년대 초반에 CD형태로 심즈를 구매해 본 사람들은 다들 알 것이다.
당시 심즈 오리지날의 한글판 CD 케이스에는 "The Sims"라는 타이틀 밑에 "심시티의 MAXIS가 개발한 버츄얼 시트콤 게임" 이라는 문구가 적혀져 있었는데, 이 문구 하나가 심즈의 초기 마케팅 전략을 한 눈에 보여준다.

우선 이 문구는 "심시티를 개발한 회사가 만든 게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한 게임인 심시티를 앞세움으로써, 심즈를 심시티의 명성에 편승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가 처음 나왔을 때 우리나라의 신문광고(예: 어린이동아)에서 부연설명으로 "토이스토리 제작진이 건져올린 푸른 감동" 이라는 문구를 넣은 것과 그 뜻을 같이 한다. 이미 친숙한 브랜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홍보함으로써, 사람들으로 하여금 새 것을 덜 생소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 문구는 "버츄얼 시트콤 게임" 이라는 수식어로 심즈를 지칭하고 있다. 가상으로 시트콤을 만들어 보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듯이, 심즈의 전반적인 문화적 코드는 "TV 속 미국문화"이다. 불행히도, 이는 당시 미국 프로라 하면 몇몇 외화(미드), 다큐멘터리, 또는 AFN 채널이 전부였던 우리나라의 공중파 방송을 고려했을 때 한국 정서에 그닥 맞지는 않았다 (이러한 이유가 초반 국내의 심즈의 판매량이 저조했던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본다).

초창기 심즈에 관한 이야기 (심즈의 역사) - 5 (Figure 3)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Friends)

그런데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의 수많은 소비자들에게는 이런 "TV 속 미국문화"가 꽤 친숙하게 다가왔고, 덕분에 이런 문화적 전략은 전세계를 다 따졌을 때 평균적으로는 잘 먹혀들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90년대 후반에 가장 인기 있었던 미국의 TV프로는 대부분이 "시트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프렌즈(Friends), 사인필드(Seinfeld), 심슨(The Simpsons) 등을 비롯한 시트콤 계열의 미국 프로들은 전세계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어마어마했다. 특히 그 중 심슨은 시즌 10에 이르러서 암흑기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미국 코미디계의 전설 중의 전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대세를 틈다 맥시스/EA의 마케팅 팀은 심즈를 일종의 "미국식 시트콤 시뮬레이터" 라는 컨셉으로 잘 포장하였고, 이 컨셉은 전세계적인 미국 시트콤 열풍에 편승하여 심즈의 인기몰이에 힘을 보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