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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심즈에 관한 이야기 (심즈의 역사) - 3

Author: Youngjin Kang

Date: 2019.09

심즈의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당시 윌라이트가 오로지 심즈에만 매진했던 것은 아니었다.

90년대 초중반부터 그는 3가지의 프로젝트들을 차기작으로 염두해 두고 있었다. 하나는 인형의 집 프로젝트(심즈)였고, 또 하나는 몇년 뒤 심콥터(SimCopter)로 출시된 헬기 시뮬레이터 였으며, 나머지 하나는 30/40년대에 실험적으로 운영하다 결국은 상용화되지 못한 경식 열기구 비행선인 '체펠린 비행선'(Zeppelin)을 다루는 시뮬레이터 게임이었다.

초창기 심즈에 관한 이야기 (심즈의 역사) - 3 (Figure 1)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imCopter)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헬리콥터와 경식 비행선 둘 다 매우 물리적으로 불안정한 운송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륙만 제대로 하고 나면 기류가 너무 불안정하지 않는 한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날 수 있는 글라이더형 비행체와는 달리, 헬리콥터와 경식 비행선은 약간의 외부적 힘에 의한 연쇄작용으로도 균형을 잃어버리거나 부서져 버리기 쉽다 (힌덴부르크 사고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시스템 공학적 관점으로 보면 굉장히 '다이나믹'하다던가 카오스 이론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 대상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심즈는 헬기나 비행풍선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이러한 다이나믹 시스템(Dynamic System)을 이루는 핵심 요소들을 월등히 많이 갖추고 있는 게임이고, 그 덕분에 출시된 직후부터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초창기 심즈에 관한 이야기 (심즈의 역사) - 3 (Figure 2)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Zeppelin)

왜냐하면 심즈는 사람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인생시뮬레이션'(Life Simulation) 게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야말로 그 어떤 물리적 시스템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불안정한 존재이다. 더군다나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가상의 생활상은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심즈를 하는 플레이어는 90년대/00년대 당시 그 어떤 건설/경영시뮬레이션 게임도 범접하지 못하는 수준의 역동적인 시뮬레이션을 쉽게 컴퓨터 화면 안에 구현할 수 있었다.

물론 심즈의 초반 제작과정 속에서는 '일상생활'이라는 요소의 비중이 그닥 크지 않았다. 왜냐하면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윌라이트에게 있어서 심즈는 일종의 '집짓기 시뮬레이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까지 윌라이트는 사람의 행동양식을 관장하는 간단한 AI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건축학적 분석 알고리즘의 설계에 투자했다.

이때 윌라이트에게 많은 영감을 준 책으로는 대표적으로 '패턴언어'(A Pattern Language)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에게 영감을 준 책들 중에 나 또한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책으로는 '집이라는 관념에 대한 짧은 역사'(Home: A Short History of an Idea)가 있다. 또한 그 외에도 '사용자 환상: 의식을 잘게 쪼개어'(The User Illusion: Cutting Consciousness Down to Size, 유저 일루션) 등의 몇가지 대표 도서들이 있는데, 앞서 말한 이 책들은 심즈 오리지날의 사용자 설명서의 추천도서란에 쓰여져 있다.

심즈가 단순한 건출시뮬레이션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인생시뮬레이션을 탈바꿈하게 된 건, 97년경 심즈가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밍되기 시작했을 때 부터였다. 당시 윌라이트는 (비록 그는 전문적인 컴퓨터 엔지니어는 아니었지만) C언어로 심들의 심리적인 현상을 관장하는 다양한 스크립트들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곧 그는 C언어 같은 낮은 단계의 프로그래밍 언어만을 가지고 심즈의 모든 다이나믹한 요소들을 구현해 내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윌라이트와 주변 팀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심앤틱(SimAntic)이라는 시각적 스크립팅 툴이었다. 이 툴은 마치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UDK)의 블루프린트 툴이나 스크래치(Scratch)의 스크립팅 방식처럼 박스들을 서로 화살표로 연결하는 방식의 디자인 프레임워크를 제공했는데, 이 덕분에 당시 심즈 프로젝트에 참여한 맥시스사의 직원들은 시시때때 C/C++ 소스코드를 뜯어고치지 않고도 쉽게 심들의 행동양식을 프로그래밍할 수 있었다.

초창기 심즈에 관한 이야기 (심즈의 역사) - 3 (Figure 3)

(이미지 출처: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zC52jE60KjY&t=1885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