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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호버!"(Hover!)를 통해 보는 물리적 전략시뮬레이션

Author: Youngjin Kang

Date: 2019.09

게임 "호버!"(Hover!)를 통해 보는 물리적 전략시뮬레이션 (Figure 1)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Hover!)

게임 "호버!"(Hover!)의 장르는 흔히 통상적으로 레이싱이라 부를 수 있지만, 이 게임은 다른 레이싱 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건 바로 범퍼카 효과이다.

물론 벽이나 장애물에 닿았을때 차체가 튕겨나가는 기능은, 물리엔진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튕겨나가는 성질을 게임의 주요 전략으로 활용한다면 어떨까?

많은 개발자들이 레이싱 게임을 만들면서 어려워하는 요소들 중 하나는 바로 게임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은 워낙에 다양한 변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플레이어가 승리를 거머쥘지 감을 잡기 힘든데, 레이싱 게임은 디자인을 섬세하게 하지 않는 한 승패의 불확실성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두 경주차들이 레이싱을 하고 있는데, 이들 중 하나가 너무 멀리 뒤쳐지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그 순간부터 뒤쳐진 차는 거의 진 게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고, 앞서서 달리는 차는 거의 이긴 게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이때부터는 앞서 달리는 차는 어차피 이길 게임을 지루하게 계속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고, 뒤쳐진 채 달리는 차는 어차피 질 게임을 꾸역꾸역 해줘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임 "호버!"(Hover!)를 통해 보는 물리적 전략시뮬레이션 (Figure 2)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uper_Mario_Kart)

이러한 정체된 게임플레이를 예방하기 위해, 레이싱게임 개발자들은 보통 다양한 아이템들이나 예상치 못한 장애물들, 지름길들, 무작위로 발생하는 이벤트들을 게임 속에 집어넣곤 한다. 예컨대 마리오 카트(Super Mario Kart)는 레이싱트랙 상에서 뒤쳐진 채 달리는 플레이어들에게 앞서 달리는 플레이어들보다 좀 더 높은 확률로 아이템을 제공함으로써,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벌어진 격차를 만회할 기회를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리오카트의 플레이어들은 항상 서로의 거리를 어느 정도 적당한 수준 이하로 유지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마리오카트 속 경주는 거의 게임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누가 이길지 확정할 수 없는 아무 흥미진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격차유지형 밸런싱 방식(영어로는 보통 rubber-banding이라고 지칭한다)은 디자인하기가 꽤나 힘들 뿐더러, 자칫하면 플레이어에 순전히 운빨(?)로 승패가 판가름나는 슬롯머신같은 게임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다.

게임 "호버!"는 레이싱카를 일종의 마찰력이 거의 없는 범퍼카로 만듦으로써 (게임 속 설정은 "호버크래프트"이다) 이 문제를 위트있게 해결했다.

게임 "호버!"(Hover!)를 통해 보는 물리적 전략시뮬레이션 (Figure 3)

(이미지 출처: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Hover!)

이 게임을 하면서 플레이어가 겪는 가장 큰 물리적 제약은 바로 마찰력의 부재이다. 아무리 범퍼카의 핸들을 꺾어도 이동방향이 바뀌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플레이어는 좋으나 싫으나 시시때때 범퍼카가 벽에 부딪치는 사태를 피할 수가 없다. 다만 벽에 부딪친 범퍼카는 높은 탄성 덕분에 쉽게 튕겨나가고, 이는 즉 플레이어가 충돌의 부작용을 역이용해 신속한 방향전환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당구공을 다루듯이 탄성을 전략적 요소로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하는 게 이 게임의 의도인 것이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신속한 방향전환과 속도조절을 이용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전부인 대다수의 레이싱게임들은 철저한 운동신경으로 승패가 판가름나기 쉬운 데에 반해, "호버!"는 충돌과 반사각도 등을 이용한 복잡한 기하학적 계산을 일종의 전략으로 사용해야 하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게임 속 범퍼카가 가진 마찰력의 부재는 관성, 탄성 등을 비롯한 미묘한 물리학적 현상들을 게임의 주요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인 셈이다.

또한, "호버!" 속 레이싱트랙이 일방통행로가 아니라는 점도 게임의 복잡성에 한 몫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 게임의 목적은 트랙의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을 도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은 맵 부터가 일종의 광장같이 탁 트인 (그러므로 특정한 방향이 없는) 공간이고, 이곳에서 플레이어가 수행해야 하는 목표는 범퍼카를 운전하며 맵 곳곳에 뿌려진 깃발들을 모으는 것이다.

이러한 비선형적인 이동경로는 게임 자체에 공간적 복잡성을 더해주며, 이는 앞서 말한 물리적 성질들을 좀 더 쉽게 전략적 요소들로 활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또한 여기에는 출발지점과 도착지점 사이의 거리를 잴 방법이 없기 때문에, 레이싱 도중 어느 플레이어가 앞서 달리는지, 또는 어느 플레이어가 뒤쳐진 채로 달리는지를 알 길이 없다. 승패의 가능성을 복잡한 비선형적 공간 속에 은닉시킴으로써, "호버!"는 별다른 아이템이나 이벤트를 사용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승패의 유무를 게임의 종료순간까지 은폐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