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완전히 멈춘 곳이 있다면 어떨까? 예컨대 방이 하나 있다고 해보자. 방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영원불멸하다. 그 어떤 세월의 힘도 쇠 한조각을 녹슬게 할 수 없고, 돌멩이 하나에도 흠집을 낼 수 없다. 그야말로 방 안의 모든 것이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냉동을 한 것처럼 말이다.
고대 왕실의 신하들은 황제의 무덤을 영원히 손상되지 않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조각상들을 가장 단단한 소재의 광물로 만들었고, 시신을 철저하게 방부처리 했으며, 영생을 부른다고 믿던 수은 등의 물질로 무덤 주변을 보호했다. 다만 그런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모든 무덤은 언젠가는 붕괴할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에 시간의 힘을 완전히 초월한 곳이 지구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어떨까? 절대로 붕괴되지 않는 물질로만 이루어진 곳 말이다. 그곳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아서, 바깥세상이 아무리 늙고 병들어도 항상 처음같은 젊음만을 유지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그곳은 푸른색의 꽃무늬들이 그려진 흰색 도자기 재질의 방이다. 마치 추운 겨울철 아침의 싸늘한 화장실과도 같은 그 방은 다른 방들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 그건 바로 그 방 안의 모든 물건들에 방부처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방을 이루는 매끈한 도자기 표면에는 반투명한 유리같은 물질이 코팅되어 있다. 이 물질이 바로 방부제로, 이것에 둘러싸인 물체는 시간의 흐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예컨대 우선 그 물체 자체가 전혀 노화하지 않으며, 외부의 아무리 강한 힘도 그것을 손상시키지 못한다. 예를 들어서 어느날 지구가 흔적도 없이 폭발해 버린다 하더라도, 방부제를 칠한 그 방은 멀쩡히 살아남아서 우주공간을 배회할 것이다.
이 기막힌 방부제를 처음 발명한 자들은 고대인들로, 당시의 그들은 자신들의 발명품이 그토록 대단한 것인줄 몰랐다. 어느날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그들은 자신의 방부제 제조비법을 다른 이들이게 전수할 방도가 없었고, 결국 그들이 처음에 시험삼아 방부제를 칠했던 도자기 방만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멈춘 곳"으로 남아 지하공간에 숨겨져 있다.
지금까지 현대의 그 어떤 과학자들도 그 고대인들이 우연찮게 제조한 방부제를 재발견하지는 못했다. 만약에 시간을 멈추는 방부처리법이 오늘날에 다시 발견된다면 아마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지구의 수많은 사물들이 손쉽게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은 채 영원 속에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방부처리가 되지 않은 다른 사물들은 생태계적 순환에 방해를 받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동물의 시체가 땅 속에 묻히지 않고 방부처리가 되어 영원한 불변의 존재가 된다면, 곤충과 미생물들은 그 시체를 뜯어먹지 못하기 때문에 굶어야 한다. 생태계가 기능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인간이 만약 이 엄청난 기술을 남용한다면 사태는 심각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물건들의 손상을 막기 위해 그것들을 방부처리 할 것이고, 그러면 그것들은 영원히 파괴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만약 그런 사태가 계속된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구 전체가 방부처리가 되어서 그대로 굳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몇천년 전 사람들이 우연히 발견한 방부처리 기술은, 특정한 물질을 시간으로부터 독립시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방부처리가 아직 되지 않은 물질들은 항상 시간에게 다스림을 당한다. 시간은 그들을 언제든지 파괴시킬 수도 있고, 변형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부제를 바른다는 것은 카멜레온의 가죽을 입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투명해져서 시간의 매서운 눈으로부터 벗어나면 더이상 다스림을 받지 않아도 된다.
아까 말했던 도자기 방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 방은 아직까지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방부처리가 된 곳으로, 2명의 고대인들에 의해 기원전 2200년 경에 방부처리 된 이후에 오랜 세월동안 그대로 지하에 묻혀 있었다. 그러던 중 서기 약 190년 쯤에 로마인들이 우연히 그 방을 발견했는데, 이후 약 1500년간 그곳은 종교적인 비밀결사의 집결지로 이용되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영국정부는 그 방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그곳의 존재 자체가 연구기관에 의해 은폐되고 있다.
푸른 무늬가 그려진 그 도자기 방은 수천년의 세월동안 털끝만치도 변하지 않은 채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 방에 대해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방이 자신들의 고향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곳은 인류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서 항상 변함없는 모습만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곳만큼은 고대와 중세와 근대와 현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대인들이 본 광경을 지금의 현대인들도 기록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대로 볼 수 있는 까닭에서이다. 푸른 빛의 그 도자기 방은 시간의 힘을 외면함과 동시에, 모든 시간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써 혹자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