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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경험

Author: Youngjin Kang

Date: Summer 2012

살다 보면 평소와는 아주 다른 경험이 필요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단조로운 생활만이 반복되다 보면 새로운 자극에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자주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 불행히도, 이 세상에는 다양한 경험을 마음껏 할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이 갖추어진 사람들이 별로 없다.

한 곳에서 평생을 사는 것은 비록 단조롭기는 해도 나름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확고한 정체성의 확립과 주변 환경에 대한 친숙함이 그것이다. 다만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두뇌를 게으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가지 생활방식만을 고수하다 보면 뇌는 별로 열심히 일할 생각을 안 한다. 평소의 습관대로만 살아가다 보니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없는 것이다. 한 장소에서만 살기 때문에 새로운 지형이나 길을 익힐 필요가 없어지고, 해당 장소에만 적합한 비슷비슷한 일들을 하기 때문에 새로운 행동을 익힐 필요가 없어진다 (예를 들어서, 물가가 없는 곳에서만 사는 사람은 수영을 배울 가능성이 거의 없다). 변화가 없으면 도전에 대한 의욕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착생활의 폐해를 극복할 해결책이 하나 있다. 바로 “인공경험”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컴퓨터 속의 가상현실이나 영상물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공경험은 그런 간접적인 자극들과는 다르다. 판타지나 동화같은 허황된 세계에서 현실도피를 가능케 해주는 마약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인공경험은 그야말로 “변형된 현실”이라고 말해야 옳다.

우리는 색안경을 끼면 똑같은 현실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인공경험이란 바로 그러한 왜곡적 요소를 극대화한 것으로,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등의 다른 감각들도 함께 색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그렇게 생생하게 왜곡된 현실을 “보관해두기” 위한 공간들이 따로 존재한다. 바로 인공경험들을 모아놓은 도서관이 있는 것이다.

도서관의 입구는 하나의 기다란 복도로, 마치 교도소와도 같은 인상을 풍긴다. 복도의 내부 디자인은 벽지나 페인트를 바르지도 않은 투박한 콘크리트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문에 방문객들은 인공경험 도서관이 대체로 차갑고 싸늘하다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곤 한다. 그러나 그런 첫인상은 도서관의 코너들 중 하나만 이용해 보아도 씻은 듯이 사라진다. 도서관의 복도를 따라서 수많은 문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는데, 각 문에는 다양한 묘사가 깃든 짤막한 설명이 팻말 형태로 붙어있다. 예컨대 “고온다습하며 장미향과 귀뚜라미 소리가 곁들여진 중세식 정원” 이라는 말이 붙은 문도 있고, “춥고 건조하며 나프탈렌 냄새와 메아리같은 헤비메탈이 곁들여진 한밤중의 모래사막” 이라는 말이 붙은 문도 있다. 문을 열면, 해당 문에 붙은 설명에 정확히 일치하는 환경이 조성된 작은 방으로 입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서늘한 바람이 불며 젖은 흙냄새와 뉴에이지풍 피아노곡이 곁들여진 안개 속 침엽수림” 이라는 말이 붙은 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문은 어느 작은 방 하나로 통하는데, 그 방의 벽지와 바닥재는 말 그대로 침엽수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방은 한 귀퉁이에 달린 가습기는 안개로 방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또다른 귀퉁이에 달린 방향제는 젖은 흙냄새와 나무냄새를 5분마다 뿌리고 있다. 또한 사방에 장착된 스테리오 스피커들에게서는 고요하고 신비스러운 피아노곡이 끊김없이 재생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인공경험 도서관에 배치된 각 방들은 방문객들에게 제각기 다른 분위기들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각 방은 하나의 책과도 같다. 비록 줄거리나 문장은 없지만, 오감을 이용해서 그것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독자”들에게는 책처럼 나름의 감명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도서관을 이루는 이 방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첫번째 방 안에서 한 것과 두번째 방 안에서 한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이다.

인공경험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환경에 몸과 마음을 적응시키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추운 방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추위에 적응하고, 더운 방 속에 머물러 있으면서 더위에 적응하는가 하면, 사방이 마치 초고층건물의 옥상처럼 꾸며진 방 속에 머물면서 고소공포증을 이겨낼 수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둠 속의 방 안에서는 어둠에 적응하는 방법을, 빛으로 가득 찬 방 안에서는 눈부심에 적응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이처럼 인공경험은 다양한 환경에 대한 친화력을 키우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