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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천장

Author: Youngjin Kang

Date: Winter 2012

옛날부터 천장이라는 것은 벽과 바닥 위해 설치되어 비바람을 막아주는 “덮개” 용도로만 사용되었을 뿐, 딱히 뭐라 할만한 기능적 요소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장에 설치할만한 가구는 조명이나 분무기, 다락방 입구를 제외하고는 없기 때문이다. 실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요소들은 바닥과 벽에 설치되어 있고, 천장은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텅 빈 공간”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몇달 전부터 새로운 건축양식이 주택건설에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제 2의 천장” 이라고 불리는 이 양식은 우리들의 생활에 급진적인 혁명을 가져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 이유는 바로 제2의 천장이 우리의 공간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천장이라는 곳을 완전히 막혀있는 하나의 밋밋한 덮개 대신에, 반쯤 막혀있는 새로운 기능적 공간으로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건축양식을 대강 설명하자면 이렇다. 바닥, 벽, 그리고 천장은 온전하게 남아있고, 여기에는 기존의 집들과 아무 차이가 없다. 그러나 천장 밑의 약 2센티미터 되는 공간에는 투명한 유리로 된 “제 2의 천장”, 즉 투명천장이 진짜 천장과 평행하게 자리잡고 있다. 한마디로 두 겹의 천장들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겹의 천장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는 2센티 높이의 빈 공간은 조그만 원격조종 로봇들의 이동행로로 사용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무선으로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는 폭신폭신한 구슬모양의 로봇들이 불투명한 천장과 투명한 천장 사이의 틈새 속을 돌아다니게 함으로써, 언뜻 보면 (아래쪽 천장이 투명하기 때문에) 마치 그 로봇들이 천장에 달라붙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 로봇들의 역할은 다양하다. 집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감시하는 카메라 기능을 가진 로봇도 있고, 스스로 발광함으로써 조명기능을 하는 원반형 로봇도 있으며, 특정 이미지나 텍스트를 모니터에 띄어서 천장 밑의 사람에게 보여주는 사각형 로봇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로봇들이 두 천장 사이의 틈새공간을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천장의 조명은 언제든지 위치를 바꿔서 집 안의 원하는 부위에 빛을 비출 수 있으며, 따라서 방마다 천장조명 스위치를 달 필요가 없다. TV도 더이상 앉아서 볼 필요가 없다. 침대에 누운 채로 위를 올려다 봐도, 천장형 TV로봇을 해당 위치로 이동시키면 천장에서 나오는 영상으로 TV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디스코 조명같은 요란한 조명효과를 집 안에 내고 싶다면 이 “제 2의 천장” 기술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내뿜는 여러 대의 구슬모양 로봇들을 투명천장 위에서 자유자재로 굴러다니게 만듬으로써, 집 안을 온통 다양한 색깔들로 가득 채우면 되는 것이다.

불투명한 천장과 투명천장 사이의 공간은 그야말로 로봇들의 잔치판이다. 이 공간은 방과 방 사이의 경계를 불문하고 집 안 전체로 퍼져 있으며, 따라서 로봇들은 방 문을 열지 않고도 자유롭게 집 안의 모든 공간을 드나들 수 있다 (물론 벽의 윗부분 전체를 빈 공간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면 벽이 천장을 지탱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벽의 반 정도 되는 부분은 불투명한 윗천장을 지탱하고 있어야 한다). 집 안의 모든 방들이 투명천장을 통해 뚫려있으니, 이 공간은 활발한 산소공급을 위한 환기구로도 이용된다.

천장 밑에 또다른 천장을 만든다는 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다른 비스무리한 건축양식의 개발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집 안의 벽을 다른 한 겹의 투명한 유리벽으로 둘러쌈으로써, 진짜 벽과 “제 2의 벽” 사이의 빈 틈새공간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틈새공간을 액체로 채운다면, 벽면 전체를 하나의 형광색 네온조명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벽면 전체를 수족관 (또는 가짜 수족관)으로 꾸밀 수도 있을 것이며, 만약에 곤충 애호가라면 그 틈새공간을 흙으로 채워서 거대한 개미집을 조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닥도 마찬가지다. 진짜 바닥 위에 투명한 “제 2의 바닥”을 설치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마치 오락실의 DDR 댄스플로어를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설치한 투명바닥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된다. 진짜 바닥과 투명바닥 사이에는 틈새공간이 생기는데, 이 공간은 수족관으로 꾸밀 수도 있고, 온갖 식물들이 자라나는 정원으로 꾸밀 수도 있을 것이며, 승화된 드라이아이스나 아로마 연기로 채워서 안개와 같은 몽롱한 현상을 조명과 함께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장면을 연출하던지간에, 그 집 안에서 걸어다닌다는 것은 그 장면 위를 걸어다니는 것과 같다. 예컨대 투명바닥 밑의 공간을 물로 가득 채운다면, 집 안을 걸어다닐 때마다 마치 물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든다는 말이다.

만약에 위에서 말한 세가지를 모두 적용한다면, 집 전체는 불투명한 겉껍질과 투명한 속껍질로 이분화될 것이다. 겉껍질과 속껍질 사이의 공간은 유기체에 비유하면 마치 혈관과도 같은 곳이다. 모든 것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