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List

유물론

Author: Youngjin Kang

Date: Winter 2012

물질주의도 종교가 될 수 있다. 종교라는 것이 무조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물질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깊은 산골짜기의 광산 근처에 마을을 이루고 사는 그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자기들 고유의 민간신앙을 고수해 왔는데, 이 신앙이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라는 것이 관심을 자아내고 있다. 보통 물질주의라 하면 세속적인 활동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산골짜기 마을의 사람들에게 물질주의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물질은 숭배의 대상이고, 수호자이며, 마을의 신이다.

이들의 종교가 얼마나 물질주의적인지는, 이들 신전에 들어가 보면 안다. 신전은 전체적인 구조가 고대 그리스의 제우스 신전과 비슷하게 생겼다. 양 옆에는 높다란 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고, 맨 건너편의 한가운데에는 신의 형상을 한 조각상이 자리잡고 있다. 다만 산골짜기 마을의 신전을 차지하고 있는 성상은 그 어떤 미신 속의 인간이나 동물도 아니다. 그냥 하나의 커다란 정육면체일 뿐이다. 어떻게 조각상이 완벽한 정육면체의 형상만을 띈단 말인가? 라고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거룩한 존재의 겉모습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그것을 이루는 물질에만 신경을 쓰고, 거기에 가치를 매길 뿐이다. 예를 들어서 산골짜기 마을 신전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가장 크고 웅장한 조각상은 바로 각 모서리의 길이가 2m에 달하는 백금 덩어리이다. 물론 이 백금 덩어리는 값이 어마어마하게 나가고, 그것이 바로 이 마을 사람들이 이 정육면체를 수호신으로 섬기는 이유이다. 혹자는 마을 사람들을 속물이라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보호해 줄 확실하고도 완벽한 힘, 즉 물질적 풍요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이다.

신전 안에는 여러 개의 정육면체 모양의 금속 덩어리들이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황금도 있고, 구리도 있고, 은도 있고, 티타늄도 있으며, 카드뮴도 있다. 수은도 있는데, 수은은 액체이기 때문에 정육면체 모양의 돌 상자에 담겨져 있다. 이렇게 신전 안의 모든 신들은 하나같이 정육면체 모양을 한 채 기둥들 사이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들의 형태가 정육면체인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누구보다도 열렬히 지향하는 자들로, 그들은 외부인들이 쉽게 믿곤 하는 온갖 비과학, 마법, 음모론, 미신, 예술과 같은 비이성적인 것들을 너무나도 경멸한다. 그들의 극도로 합리주의적인 사고는 신전 안의 조각상들이 정육면체인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정육면체라는 형태는 칼같은 이성의 힘의 상징이기도 하고, 어떻게든 복잡하고 부드러운 형태로 아름다움을 과시하려는 속물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이성적 사고로 무장한 이 마을의 사람들은 말 그대로 물질을 숭배한다. 그들은 독실한 물질주의자들로,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백성들에게 영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혼자서 모든 물질적 부를 독차지하려는 지도자의 잔악한 음모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모든 힘의 본질은 결국은 물질이고, 영적인 힘을 믿는 자들은 세상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도록 지도층에 의해 철저히 세뇌당한 존재들일 뿐이다.

마을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번씩 신전에 모여서 정육면체 모양의 금속덩어리들을 향해 기도문을 읊는다. 기도문의 내용은 대체로 해당 금속이 어떠한 곳에 어떤 용도로 쓸모가 있는지를 일일히 서술하는 식으로 진행되며, 각 단락의 마지막은 감사의 말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