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것은 항상 우리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접근이 가능하지만, 그와 동시에 잊혀진 기억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기억이라는 것은 몇차례에 걸쳐서 상기되지 않으면 뇌의 아주 깊숙한 곳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거나, 반복해서 기억을 가다듬으며 외우거나, 아니면 최소한 기억을 연상시키기 위한 실마리라도 남겨놓는다. 기억은 완전히 사라져버리지는 않아도, 다른 기억들의 산 속에 파묻혀 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도 모든 기억들을 하나하나 다 회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일매일 엄청난 양의 정보가 감각기관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고, 그렇게 불어난 정보의 바다가 기존의 기억들의 언덕을 휩쓸어 버리는데 어떻게 과거의 기억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정말로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그때 그 모습으로 보존하고 싶다면 한가지 편법을 써야 한다. 그건 바로 잠수함을 타고 현재의 뇌를 채우고 있는 정보의 바다 속을 가로질러서, 바닷속의 깊은 바닥에 잠들어 있는 과거의 기억들, 즉 단단히 굳어버린 지층을 캐내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기억들이 담긴 공간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정보의 바다속에 잠수를 함으로써 잊혀졌던 기억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판타지적인 발상은 바로 작년에 기술의 힘으로 실현되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기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새로운 최면요법인데, 여기에는 몇가지 마취/환각성분의 투여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기억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평소 살면서 자신이 버린 쓰레기들의 더미를 보는 게 가능하듯이, 자신이 까마득한 과거부터 떠올렸던 기억들의 더미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처음 이 신기술의 실험대상이 된 피실험자들은 다들 비슷비슷한 경험을 진술했다. 다들 처음에는 아주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를 했다고 말했고, 어둠을 향해 한참을 내려가다가 손전등을 비춰보니까 사방에 들쑥날쑥한 바위의 협곡들, 그리고 험한 지층으로 이루어진 돌멩이들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들이 진술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바로 그런 바위들 사이에 자신의 기억들이 꽃혀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기억”들이란 바로 유리조각같은 투명한 수정 돌들을 말했는데, 각각의 수정 덩어리를 바라보면 그것의 투명한 표면에서 자신의 옛날 기억을 상세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수정을 계속해서 바라보면 그때 당시에 자기가 하던 말들, 듣던 말들, 그리고 생각들마저 일일히 생생하게 기억난다고도 말했다.
이런 식으로 상상 속의 바다 속 깊숙히에 본인의 옛 기억들이 묻혀 있다는 진술은 모든 피실험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인간의 뇌 속에 기억들을 보관하는 가상의 공간이 따로 할당되어 있고, 그 공간 속에서는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누구든 최면을 통해 스쿠버다이빙을 하면 자신의 잊혀진 기억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물론 기술적인 문제는 아직 남아있었다. 최면요법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그 누구도 기억의 바닷속에서 옆으로 헤엄쳐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바닷속으로 헤엄칠 때마다 심연 속으로 깊숙히 들어가거나 다시 위로 올라갈 수만 있었을 뿐, 아무리 노력해도 왼쪽, 오른쪽, 앞, 또는 뒤, 즉 수평방향으로는 전혀 못 움직였던 것이다. 이런 1차원적인 잠수는 피실험자로 하여금 아주 좁은 공간 속에 파묻힌 기억들만을 열람할 수 있게 만들었을 뿐, 방대한 너비의 심해 속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면서 다양한 종류의 기억을 캐낼 수는 없게 만들었다. 이는 인간의 뇌 속에 기억들이 어떤 형태로 퍼져 있는지 알아내고 싶어했던 학자들에게는 큰 실망감을 줄 뿐이었으며, 그들은 수많은 연구 끝에 드디어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에 이르렀다. 그건 바로 “x+, x-, y+, y-“ 라고 불리는 네가지 종류의 약물들로, 이것들은 최면에 걸려서 기억의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는 피실험자로 하여금 바닷속에서 옆으로 움직이게 해주는 약품이다. 예를 들어서 x+용액을 투여하면 피실험자는 동쪽으로 이동하고, x-용액을 투여하면 서쪽으로 이동하며, y+용액을 투여하면 북쪽으로, y-용액을 투여하면 남쪽으로 움직인다. 투여량에 따라서 이동속도나 이동거리는 바뀐다.
이제 학자들은 과거의 인간 유전자 해독 프로젝트보다도 훨씬 더 규모가 큰 실험을 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실행하기 시작한 야심찬 프로젝트는 바로 “기억의 지도”를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이는 수많은 피실험자들에게 각기 다른 x,y 용액들을 투여함으로써 그들을 기억의 바다의 각 부위에 다다르게 한 뒤, 각 부위에서 그들이 본 본인들의 기억이 주로 어떤 종류였는지를 파악하게 한다. 이런 식의 실험을 반복하다 보면 학자들은 대략적으로 바다의 어떤 부위에 어떤 종류의 기억들이 저장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훗날 피실험자에게 특정한 조합의 x,y용액들을 투여했을 때 그 사람이 정확히 기억의 바다의 어느 부위에 있는 기억들을 맞딱뜨리게 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체계적으로 적립된 기억이론들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바로 “기억 회상센터”를 만든 다음, 그곳에 최면요법에 적합한 조용한 방을 만드는 것이다. 의뢰인이 와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정확히 언제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면, 기억지리학자 (뇌 속의 기억들의 위치를 연구하는 사람)는 잃어버린 지갑의 행방을 찾기 위해 의뢰인이 떠올려야 할 기억의 종류를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그러한 종류의 기억이 위치해 있는 바닷속의 공간으로 의뢰인의 의식을 이동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합의 x,y 용액을 만든다. 제대로 조합된 용액을 최면에 걸린 의뢰인에게 투여하면, 의뢰인은 지갑을 찾기 위해 필요한 기억들이 파묻힌 바닷속의 공간으로 저절로 이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의뢰인이 할 일은 단순히 밑으로 헤엄쳐 내려가, 그곳을 이루는 수정 돌멩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며 지갑의 행방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