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 과학처럼 이론화된다면, 미술이라는 분야의 학문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왜냐하면 미술은 예로부터 감정과 불확실성에 바탕을 두어 왔지, 이성적 사고에 바탕을 두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술같은 분야도 산업디자인이나 그래픽디자인에서는 실용적인 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 또한 소비자의 사사로운 감정에 의지할 뿐, 미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미술도 과학처럼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공식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더이상 화가를 “예술가” 라고 부르는 대신에 “시각공학자(Visual Engineer)” 라고 부르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더이상 예술이 아닌 기술의 일부가 된다면, 미술작품을 보는 우리의 시각도 훨씬 냉철하고 명료하게 바뀔 것이다. 미술 전시회는 기술관련 박람회로 둔갑할 것이고, 미술관의 팜플릿에 적혀있는 작품설명은 더이상 애매모호한 인문학적/학구적 단어들을 포함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수학적/공학적 단어들과 논리정연한 문장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이처럼 미술이라는 학문이 ‘기술’이라는 꼬리표를 단다면 변하게 되는 것은 많다.
사실 말이 미술이지, 모든 예술활동은 미학이라는 학문을 주춧돌로 삼고 있다. 미학이 논리적인 학문이냐 아니냐에 따라, 예술이 과학의 영역에 속할지 안 속할지가 판가름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고가 장려되는 오늘날에도 미학은 비과학적인 분야로 남아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미학은 아름다움을 다루고 있고, 아름다움은 물리공식처럼 일련의 정해진 법칙들만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럴만도 한 것이, 아름다움에 점수를 매기는 것은 사람이고, 그러한 사람의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아직 현 과학으로도 미스터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아름다움을 인지하는지가 밝혀진다면 모르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행위는 불분명한 개인의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굳이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따지지는 않더라도, 아름다움의 법칙들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일단은 방대한 양의 설문조사와 피실험자들의 뇌파기록, 또는 인터넷상의 평점 등을 가지고 통계자료들을 만드는 것이다. 그 ‘통계’란 몇가지의 다른 색상을 지닌 기본적인 도형들을 보여준 다음, 각각의 도형들에 대하여 대체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호감도 관련 데이터를 모으다 보면 점차 인간이 어떤 색상, 그리고 어떤 도형의 조합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를 결론내릴 수 있고, 그러한 결론은 바탕으로 “아름다움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그림 속의 시각적 요소들 (색, 모양, 크기 등등…)이 무슨무슨 비율을 이룸에 따라 아름다움의 정도가 최고치, 혹은 최하치에 달하는지를 그래프를 그려보며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파란색 정삼각형의 채도변화에 따른 아름다움 수치, 검은색 정사각형의 크기변화에 따른 아름다움 수치 등등… 이 모든 패턴들을 하나하나 함수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방대한 양의 실험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말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여러가지 패턴들을 한데 모았을 때의 아름다움의 총량을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파란색 정삼각형과 검은색 정사각형이 나란히 있을 때의 정삼각형의 채도변화에 따른 아름다움의 총량은, 정삼각형이 혼자 있었을 때의 아름다움의 총량과는 전혀 다른 규칙을 가지고 변화할 것이다. 하나의 그림 위에는 수많은 도형들과 색상들이 있고, 따라서 각각의 시각적 요소가 가지는 규칙들이 혼합했을 때 만들어지는 최종적인 아름다움의 규칙을 파악하면 복잡한 회화에서도 아름다움의 총량을 계산해낼 수 있다.
미술작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평가하는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일단 미술작품을 색상별로 여러 부위로 나눈다. 각각의 부위는 그것이 가지는 색상과 모양, 그리고 위치를 변수로 가지는 5차원 함수이다 (변수들은 각각 c, s, x, y로 나타내며, 함수는 f(c,s,x,y)로 나타낸다). 예를 들어서 총 5개의 부위로 나누어지는 미술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은 총 5개의 함수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함수는 4개의 변수들을 받은 다음 하나의 값을 돌려주는데, 그 값은 해당 부위의 “잠재적 아름다움 에너지” (Potential Beauty Energy) 이다. 미술작품을 이루는 각각의 부위는 중심점을 가지는데, 중심점마다 그 중심점이 속한 부위의 잠재적 아름다움 에너지를 값으로 가진다. 예를 들어서 잠재적 아름다움 에너지가 57인 부위가 있다면, 그 부위의 중심점은 57이라는 값을 가지는 것이다.
이제는 각각 고유의 값을 가지는 중심점들만이 남아있다. 이 중심점들은 자신들의 에너지 값과 위치에 따라 서로에게 크고작은 양의 전자기적 힘들을 만들어 내는데, 이러한 힘의 관계 또한 아름다움의 절대법칙들 중 하나로 공식화되어 있다. 이 법칙은 꽤나 복잡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곤란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한 쌍의 점들이 각각 아주 다른 값을 지닐수록 두 점들 사이의 힘은 커진다. 이는 추함과 아름다움이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미학적 아이러니가 주는 신선한 정신적 충격 때문이다. 어쨌든 미술작품 위에 있는 모든 중심점들 사이의 모든 힘들의 절대값들을 다 합하면 최종적으로 하나의 숫자가 나오는데, 이 숫자가 바로 아름다움의 총량이다. 훌륭한 화가는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움의 총량을 최대치로 뽑는 그림을 그리는지를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