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과 인문학자들이 오늘날 너무 쉽게 그 영향을 간과해 버리는 분야가 있다. 그건 바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연구이다. 인터넷은 제 2의 지구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너무나도 광대한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이제 현대 인류의 역사나 문화를 논하는 데에 있어서 인터넷은 빠져서는 안되는 요소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역사를 공부할 때 국가들간의 역사, 지도자들간의 역사, 유명인사들간의 역사, 그리고 현실 속 사회체제에 대한 역사만을 배운다. 이러한 역사연구는 인터넷이 없었던 옛날만을 겨냥한 것이라면 물론 타당하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역사적 요소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역사” 또한 배워야 한다.
인터넷 기술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를 정리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역사의 가장 중요한 퍼즐조각들 중 하나는 바로 인터넷의 인간적인 면을 샅샅이 뜯어서 살펴보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인터넷도 현실세계의 국가나 개인처럼 수많은 크고작은 사회들을 형성하고 있고, 그 가상사회들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전적으로 오늘날의 인간의 문화나 정치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0년 이후의 역사를 논할 때 인터넷의 역사를 제외시키는 행위는, 고대역사를 논할 때 로마의 역사를 제외시키는 행위와도 같다. 그만큼 인터넷은 20세기 후반 이후의 역사의 심장과도 같은 위치에 있다.
정보화 시대가 개막한지 벌써 수십년이 되어가려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학계에는 “인터넷 역사학” 혹은 “인터넷 문화학” 같은 새로운 학문들이 생겨나고 있지 않다. 이는 오늘날 인터넷이 우리 모두의 삶에 끼치는 무지막지한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전혀 이해가 안 갈 노릇이다. 학자들은 인간문화의 깊은 이해를 위해 문학의 역사를 연구하고, 풍습의 역사를 연구하며, 예술의 역사를 연구한다. 그런데 왜 그들은 문학과 풍습과 예술을 모두 한꺼번에 담고 있는 드넓은 문화활동의 바다인 ‘인터넷’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가? 인터넷의 문화는 광범위하면서도 현실 문화와 전적으로 결합하지는 않는 특유의 독립성을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인터넷의 문화에 대한 연구는 다른 학문들과는 엄연히 다른 학문으로 인정될 가치가 있다.
“인터넷 역사학” 이라는 학문은 너무나도 배우는 범위가 방대해서, 그 자체도 여러가지의 하위 학문들로 세분화되어야 마땅하다. 예를 들자면 “동아시아의 인터넷 역사”, “유럽의 인터넷 역사”, “북아메리카의 인터넷 역사”, “남아메리카의 인터넷 역사” 등등으로 대륙별로 연구범위를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터넷을 조금이라도 구석구석 훑어본 자들은 알겠지만, 인터넷 속의 가상사회들도 그 종류가 여러가지이다. 포털사이트나 정부사이트, 기업중심의 커뮤니티 사이트들을 중심으로는 건전한 주류(mainstream) 인터넷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반면에, 개인이 운영하는 사이트들과 파일공유 사이트들을 중심으로는 다소 불량한 지하(underground) 인터넷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사이트들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인터넷 공간의 좀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면 일반인들은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들과 극소수 인간들만이 정보를 공유하는 소규모 모임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곳들은 그야말로 “지하의 지하”, 즉 지구로 따지면 화석들과 광물들이 대거 묻혀있는 깊숙한 지층에 해당한다. 이런 극소수의 비밀스러운 인터넷 문화들 또한 연구에서 제외되면 안된다. 어쨌든 그들도 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인터넷의 문화는 지리적으로 세분화 될 뿐만 아니라 “수준”으로도 세분화된다. 높은 수준의 인터넷 문화는 그야말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현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류문화이다. 낮은 수준의 인터넷 문화는 구성원들이 익명으로 활동하고,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주제를 다루며,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하문화이다. 이런 식의 기준으로 인터넷 문화를 하위문화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이 세분화된 학문들이 탄생한다: “남한의 통신사 중심의 주류 인터넷 역사”, “일본 동북부의 미디어산업 중심의 지하 인터넷 역사”, “콜롬비아의 지역정치 중심의 주류 인터넷 역사”, “러시아 서부와 동유럽 일대의 반사회적 지하 인터넷 역사” 등등…
각각의 세분화된 학문은 해당 영역의 인터넷에서 발생했던 모든 일들을 시간대별로 기록하며 정리한다. 예를 들어서 한국의 포털사이트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그는 1990년대 후반에 한국의 인터넷에 어떠어떠한 종류의 고대문명들 (야후코리아, 네이버, 다음, 심마니, 라이코스, 네이트, 미스다찾니, 알타비스타, 한미르, 컴내꺼, 네띠앙 등등…) 이 등장하여 각자 영토를 넓혀갔으며, 2000년 초에 그들이 얼마나 피터지는 혈전을 벌이며 서로를 잡아먹고 죽였는지를 기록할 것이다. 또한 이후에 다음과 네이버가 어떻게 해서 권력자들의 천재적 기량을 기반으로 온 천하를 평정하는 대제국들로 발전하게 되었는지도 분석하고 기록할 것이며, 네이버 제국이 어떻게 해서 한반도를 통일하고 북아메리카의 구글 제국에 맞서 쇄국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들도 샅샅이 기록할 것이다. 물론 네이버 제국에 살고 있었던 백성들의 삶에 대한 기록도 빼놓을 수는 없다. 역사학자의 의무들 중 하나는 최대한 네티즌들의 인터넷 속 활동을 샅샅이 모아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역사적 패턴을 파악하는 데에 있다 (개개인의 인터넷 이용기록들은 쉽게 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구하는 일은 정보 역추적 분야의 전문가인 “인터넷 고고학자”들이 도맡는다). 이는 고대의 주방기구나 생필품들을 바탕으로 고대인들의 생활방식을 추론해 내어서,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생활방식이 고대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를 조사하는 것과도 같다.
반면에 한국 인터넷의 지하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연구활동을 할 것이다. 그는 우선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몇몇 웹계정들을 중심으로 무슨무슨 종류의 개인 사이트들이 등장했는지를 기록할 것이고, 그들 중 누구누구가 살아남아서 점차 규모를 넓히며 기업화가 되어갔는지도 서술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도기가 지나가면서 어떻게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 일간베스트, 오늘의유머, 딴지일보, 괴물딴지 같은 비주류의 사이트들이 인터넷 지하문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도 설명할 것이며, 그 속에서 익명의 네티즌들 사이에 있었던 온갖 말다툼, 욕설, 헛소문, 사건사고들도 일일히 기록할 것이다. 물론 지하문화가 커뮤니티 그 자체보다는 그 속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만큼, 그는 개개인의 네티즌들이 어떤 종류의 인터넷 문화의 유행을 선도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도표화 할 것이다. 그는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인터넷 속 캐릭터들 (예컨대 졸라맨 등등…)이 어떤 식으로 그 종류가 다양화되면서 진화했는지도 하나의 거대한 도표로 만들어 정리할 것이며, 각각의 캐릭터에는 학명을 붙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인터넷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생태학적, 역사학적, 그리고 인문학적인 면으로 심층분석하는 것은 현대문명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인터넷은, 옛날로 따지면 광장이나 장터과도 같이 생활의 핵심을 차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