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풍선처럼 부풀릴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면 그건 그야말로 “전세계적인” 격변을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지구를 부풀린다면 지표면의 면적이 넓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서 새로운 바다와, 새로운 섬들과, 새로운 대륙들이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판 대항해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구는 어떻게 부풀리는가? 물론 지구 한가운데에 음질량을 가진 물체를 가져다 놓으면 된다. 음질량이란 질량이 음수, 즉 마이너스(-)인 것을 뜻하는데, 우리가 자연에서 접하는 모든 물체는 양질량(+)을 가지고 있다. 양질량과 양질량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게 중력이다. 음질량과 음질량도 서로를 끌어당기는데, 그것도 (발견된 적은 없지만) 중력이다. 그러나 만약에 양질량을 가진 물질과 음질량을 가진 물질이 만나면 그것들은 서로를 밀어낸다. 같은 극끼리만 밀어내는 전자기력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음질량을 이용해 지구를 확장시킨다는 허무맹랑한 계획은 약 1만년 전에 현실화되었다. 그 당시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역을 지배하기 시작한 오시리스 제국의 정복자들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이 지구라는 행성이 너무나도 작아서, 대륙 한두개만 차지해도 더이상 탐험할 땅이 없다는 것이었다. 자국의 전사들을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키는 계획안이 수없이 제시되었지만, 항상 자금문제 때문에 신탁자판기에게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신탁자판기는 오시리스 제국의 의회 한복판에 세워진 “지혜로운” 기계로, 오시리스 제국의 황제가 안드로메다에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 외계인들에게 받은 것이다. 다만 외계인들에게 신탁자판기는 플라스틱 장난감 수준의 가치를 지닌다). 그러던 중 신탁자판기는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새로 충전을 해야 했고, 그 틈을 타 의원들 중 누군가가 “거대한 음질량 덩어리를 지구 한가운데에 쑤셔넣어서 지구를 풍선처럼 부풀리자”는 계획안을 제출했고, 신탁자판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계획안은 통과되어 당장 실행되었다. 오시리스인들은 지구의 반지름만한 길이의 아주 단단한 빨대를 하나 만들어서, 그걸 지구의 한가운데까지 쑤셔넣었다. 그런 다음 빨대의 입구를 따라 음질량으로 이루어진 액체를 쏟아붇기 시작했다. 그 액체는 지구 한복판으로 흘러 들어가서 그곳을 차지하고 있던 양질량의 물질, 즉 내핵을 마구 밀어냈고, 그렇게 사방으로 밀려난 내핵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외핵을 사방으로 밀어냈다. 그러자 그렇게 밀려난 외핵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맨틀을 반죽처럼 조금씩 늘리면서 사방으로 팽창시켰고, 그 영향으로 지표면은 이리저리 뜯기면서 그 영역을 조금씩 넓히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동안 지표면의 상황은 마치 급격하게 살이 찐 사람의 살가죽과도 같은 상황이 되었다. 평화롭게 잠자고 있던 땅이 어느날 맨틀에 의해 “고무처럼 사방으로 늘어나라”고 강요받은 것이다. 그에 따라 지표면의 수많은 지역들은 지층이 끊어져서 아주 깊은 크레바스들이 나타났고, 대지진이 발생했으며, 화산은 시도때도 없이 폭발했고, 해수면은 오르락내리락 했고, 기타 등등, 완전한 아비규환의 상태가 지속되었다. 혹자는 이런 무리한 지구확장 프로젝트가 온 인류에게 대재앙을 불러 지구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의회 측에서는 “이미 실행한 프로젝트니까 되돌릴 수는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여하튼 이런 식으로 몇년에 걸쳐 한바탕의 재앙의 소나기가 휩쓸고 지나가자, 지표면은 다시 평화를 찾은 듯 싶었다. 다만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지구의 표면이 옛날보다 훨씬 더 넓어졌다는 점이었다. 지표면이 넓어지니까 해수면도 낮아져서 옛날보다 육지가 더 많아졌다. 오시리스인들의 예상대로 새로운 대륙들과 섬들이 갈라진 지층들 사이로 솟아 나왔다. 한마디로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으며, 지구는 그야말로 “팽창”되었다. 이 모든 성공의 결실은 지구 한복판에 음질량 물질을 삽입할 기술력을 가졌던 오시리스의 첨단기술 덕분이었고, 지구 한복판에 자리잡아 주변의 내핵을 계속해서 밀어내고 있는 음질량 덕분이었으며, 잠시 배터리가 고갈되어 준 신탁자판기 덕분이었다.
어쨌든 지표면이 예전보다 넓어지자 개척자들은 너무 바빠서 발에 불이 붙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전재산을 동원하여 선박과 비행기들, 그리고 군대를 거느린 채로 새롭게 지구에 나타난 신대륙들을 탐사했고, 아무 임자도 없는 이 땅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벌였으며, 결국 이러한 싸움들은 제국과 제국 사이의 대규모 전쟁으로 번져나갔다. 약 1000년 동안에는 크고 작은 세력다툼이 전부였지만, 그 후 또다른 1000년 동안에는 점차 전투가 격렬해졌고, 이후 1000년 동안에는 문명사회들이 서로를 파괴하면서 인류의 지적 수준은 퇴보하고 말았다. 훗날 나타난 현대의 인간이 아틀란티스 제국과 오시리스 제국 등을 비롯한 문명을 어느 정도 모방할 수준의 기술력을 기르기까지는 그 후 약 60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에 오늘날의 과학자들이 지구를 팽창시키는 기술을 다시 터득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내 생각에는 현재에는 지구확장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옛날 초고대문명들이 겪었던 대규모의 세력다툼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현 인류는 이미 수세기 전부터 인종과, 국경과, 기업을 뛰어넘은 “시스템 기반”의 사회체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대신에 새로운 종류의 문화들, 그리고 새로운 문명권들은 충분히 탄생할 것이리라 본다. 지표면에 새로운 대륙들과 섬들이 나타난다면 그것들은 문명의 스펙트럼을 넓혀 줄 것이고, 이는 인문학자들에게는 색다른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예컨대 태평양의 유럽, 남극의 극동아시아, 중동의 남아메리카 같은 새로운 종류의 문화권들이 탄생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존에 존재하던 문화들이 어떻게 결합, 그리고 분열하면서 새로운 문화들을 만들어 내는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