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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구슬

Author: Youngjin Kang

Date: Autumn 2012

물질이 정보화 될 수 있듯이, 정보도 물질화 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정보를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안개같은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일단 우리가 어떠한 사물을 하나 보면, 우린 그 사물에 대한 정보를 나름 만들어낸다. 그 “정보”란 다름아닌 그 사물의 명칭이나 모양, 그 밖에 기타등등의 신원을 담고 있다. 이제 해당 사물에 대한 정보는 관찰자에 의해 운반되고, 이후부터 그것은 그 사람의 대화나, 행동이나, 몸짓과 같은 수많은 표현방식들에 의해 표출된다. 처음에는 뇌 속에 혼자 웅크리고 있던 정보가, 나중에는 연기처럼 서서히 바람을 타고 흩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정보를 물질로 생각하지 않는 우리에게는 시각화하기 힘들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떠올리는 모든 정보가 즉각적으로 물질로 만들어져 우리의 몸에서 나온다면 예기는 달라진다. 정보를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닌, 바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질임을 알게 된다면,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더이상 이해와 배움이 아니라 물질적인 소유관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주 어딘가에는 인간과 유사하게 생겼지만, 인간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외계 종이 하나 있다. 그들은 우리처럼 소리나 문자나 몸짓으로 소통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의사소통은 오해만을 불러 일으킨다고 다들 믿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들의 뒷통수에는 기이한 기관이 하나 달려있다. 마치 반은 콧구멍, 반은 아가미처럼 생긴 조그만 구멍인데, 그 구멍을 통해서 종종 말랑말랑한 구슬이 떨어진다. 언뜻 보면 코딱지처럼 보이지만, 이들 외계인들에게 있어서 이 구슬은 아주 중요한 대화수단이다. 그들 모두는 악세사리처럼 항상 자기들 뒷통수에 구슬받이를 장착하고 다닌다. 종종 만들어지는 구슬들을 바닥에 떨어지게 내버려 두지 않고 하나도 남김없이 모으려는 것이다. 구슬들은 약 6시간에 한번씩 만들어지는데, 스트레스를 받거나 생각할 일이 많으면 3시간에 한번씩 만들어지기도 한다. 여하튼 그들은 항상 구슬받이를 탑재하고 다니면서 자신들의 뇌가 만들어내는 구슬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은다.

저녁이 되면 이들 중 몇몇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데, 그 모임은 약 8명 가량이 조그만 후카를 가운데에 놓고 둥글게 원을 형성해 앉으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각자 방석을 깔고 정좌 자세로 앉아서, 후카에 연결된 고무 호스들 중 하나를 집어서 자기 입에 문다. 그런 다음 한명씩 돌아가면서 자기가 그 날 모았던 구슬들 중 하나를 후카 속에 집어넣어 태운다. 구슬은 타오르면서 연기가 되고, 고무 호스를 입에 물고 있던 다른 이들은 그 연기를 들이마신다. 이는 아주 중요한 대화방식인데, 그 이유는 누군가의 뇌가 만든 구슬을 태워서 그 연기를 들이마시면, 그가 지난 약 6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구슬은 평소에 뇌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서, 그 구슬을 흡입하는 행위는 정말이지 직접적인 생각의 교류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로의 구슬을 태워서 호스로 마시는 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가족이나, 친적이나, 아니면 아주 친한 이들끼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후카 말고도 구슬을 이용해 의사소통을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우리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모두에게 말을 하는 대신에, 그들은 자신이 만든 구슬을 공공장소의 한복판에서 화약을 이용해 폭발시킴으로서 순식간에 주변 인물들이 자신의 생각을 흡입하게 만든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하는 대신에,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전달하고 싶은 이에게 자신의 구슬을 몰래 먹인다. 우리가 글을 쓰는 대신에, 그들은 기계를 이용하여 그들이 만든 구슬의 복제품을 여러 개 만든다 (물론 복제품은 왜곡된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것과는 일치하지 않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마구 복제해 뿌리는 행동을 꺼린다). 이처럼 우리가 뇌 속에 들어있는 정보를 소리나 문자로 직접 전달하는 반면, 이들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뇌가 만든 “물질화된 정보”를 교류하며 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있어서 ‘정보’라는 단어는 추상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으며, 냄새도 맡을 수 있는 실질적인 형체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에게 있어서 교육이란 다양하고 적절한 조합의 구슬들을 섭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교육기관에서 대량으로 복제해 제공하는 몇몇 교육용 구슬들 (이것들은 교육자들의 뇌에서 만들어졌다)을 파이프에 담아 불을 붙여 피운다. 그러면 그들은 앉아서 교육자들이 했던 생각을 송두리채 읽을 수 있다. 물론 교육자들처럼 값진 지성인들이 만든 구슬은 나름 값이 있어서, 좋은 교육자들의 생각을 담은 구슬일수록 더 많은 값을 지불해야만 살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세계에도 발전된 정보통신 기술이 존재한다. 다만 정보의 교류방식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리의 휴대폰이 무선으로 우리의 목소리와 문자를 전송하는 대신에, 이들 외계인들의 휴대폰은 구슬을 넣는 구멍과 구슬이 나오는 구멍, 이렇게 2개의 구멍이 있다. 첫번째 구멍에 구슬을 넣으면, 그 구슬 속의 정보는 휴대폰의 전자회로에 의해 기계어로 바뀌어서 무선으로 반대편의 휴대폰에 전송된다. 그러면 반대편의 휴대폰은 전달받은 기계어를 토대로 자신이 가진 화학물질들을 적당한 비율로 조합해 구슬을 만들어낸다. 그 새롭게 만들어진 구슬은 기존의 구슬보다는 다소 왜곡된 정보를 담고 있지만, 그래도 이것만이 외계인들에게는 장거리 통신의 유일한 방법이다. 그 새로운 구슬은 두번째 구멍을 통해 휴대폰에서 나오고, 당사자는 그 구슬을 먹음으로써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다.

이렇듯 모든 정보를 작은 구슬 단위로 교류하는 이들의 대화방식은 우리에게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 자신도 알고 보면 최대한 정보를 하나의 물질적인 형태로 간추려서 주고 받으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포스터, 광고지, 표지판, 이 모든 것들은 하나의 물질적 틀 안에 많은 정보를 담으려는 시도의 일부분인 것이다. 다만 아까 언급한 외계인들은 이러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정보를 물질로 표현하는 생물학적인 선물을 받고 자라왔기 때문이다.